사건

아니 에르노 | 옮김 윤석헌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9년 11월 1일 | ISBN 978-89-374-2958-3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3x188 · 84쪽 | 가격 10,800원

시리즈 쏜살문고 | 분야 쏜살문고

수상/추천: 노벨문학상

책소개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
삶의 빛과 그림자를 이야기하는 다른 목소리

이 작품을 보라!
쏜살 문고로 만나는 여성 문학의 멋진 신세계

여성이 마주한 세상,
여성이 기록한 경험,
여성이 분투한 운명,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만나다

지난 2016년 7월 민음사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쏜살 문고’의 첫 책을 펴낸 이래, 이번 「여성 문학 컬렉션」을 출간하며 총 50권을 돌파하였다.(「동네 서점 에디션」 및 「워터프루프북」 등 특별판 제외.) 새로운 출판 플랫폼을 구현하겠다는 기치 아래, 과거 ‘문고판’ 도서의 틀을 쇄신하며 작품 선정과 편집,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도전을 이어 온 ‘쏜살 문고’가, 2019년 마침내 ‘동서고금의 여성 문학’과 함께 다시 독자들 곁을 찾았다.
지난 삼여 년의 시간 동안 면밀히 기획해 온 이번 「여성 문학 컬렉션」은, 2016년과 2017년 사이에 출간한 「세계문학전집 속 거장 컬렉션」 그리고 작년에 펴낸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과 마찬가지로 ‘문고 속 작은 우주’를 표방하며, 하나의 독자적인 큐레이션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2019년 11월, 「여성 문학 컬렉션」 1차분으로서 세상에 내놓은 이번 여섯 권의 책을 디딤돌로 삼아, 우리 출판계가 마땅히 주목하고 기억해야 할 여성 문학의 ‘멋진 신세계’를 차례로 펼쳐 보이도록 하겠다.
2016년 「세계문학전집 속 거장 컬렉션」의 첫 권으로 출간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2017년 21세기 페미니즘 문학을 선도하는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화제작 『엄마는 페미니스트』, 2018년 ‘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의 정수를 보여 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에 이르기까지, ‘쏜살 문고’ 속에서 매년 커다란 궤적을 그려 온 여성 문학이 이번 「여성 문학 컬렉션」을 통해 거대한 성좌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왜 지금 ‘여성 문학’인가?
문학은 작가 개인의 기록인 동시에, 작가의 육체와 내면을 가로지는 모든 시공간의 집적(集積)이자 독자와 역사가 선택하는 시대적 증거물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살아남은 작품에는 저마다 가치가 있고, 우리들은 그것을 ‘고전’이라 부르며 매 순간 새로이 읽고 또 기억한다.
오늘날 여성 작가와 여성 독자, ‘책’을 둘러싼 문화와 산업 전반에 걸쳐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다.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라면 그만큼의 ‘고전’이 우리 곁에 있기 마련이고, 더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거둘 수 없었다. 여성의 육체를 둘러싼 내밀한 경험, 여성의 성장과 자아실현을 위한 이야기들, 여성 억압의 역사 속에서 수난당해야만 했던 고통의 서사, 여성이 여성으로서 털어놓을 수 있는 ‘자기만의 목소리’ 등 우리 세계의 지평을 확장하기 위하여, 매서운 분투 속에서 생존한 ‘여성 문학’을 새로이 기념하기 위하여 「여성 문학 컬렉션」을 펴내기로 하였다.
‘법이 금지한’ 임신 중절 경험을 극도로 정제된 문체로 용기 있게 서술한 아니 에르노의 『사건』을 필두로, ‘무민 시리즈’의 작가이자 북유럽 현대 문화·예술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토베 얀손의 작가적 재능과 인생을 관조하는 시선이 오롯이 녹아 있는 『여름의 책』과 『두 손 가벼운 여행』 그리고 한국 문학계의 거목이자 현대 우리말로 쓰인 여성 문학의 결정적인 작품들, 강경애의 『소금』, 박완서의 『이별의 김포공항』, 강신재의 『해방촌 가는 길』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이후 버지니아 울프, 마르그리트 뒤라스, 히구치 이치요, 캐서린 맨스필드와 거트루드 스타인 등 전 세계의 중요한 여성 작가와 여성 문학을 지속적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더불어 「여성 문학 컬렉션」의 표지 디자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민음사에서 눈부시게 활약해 온 최정은, 최지은, 유진아 디자이너를 비롯하여 김린 디자이너, 박연미 디자이너 등 국내의 여성 디자이너들이 각각 표지를 맡아 주었다. 쏜살 문고 「여성 문학 컬렉션」의 첫 독자로서 하나하나의 작품들과 깊이 교감한 이들 디자이너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함께 주목해 보자.

「여성 문학 컬렉션」 출간 및 예정 리스트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 이미애 옮김
엄마는 페미니스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황가한 옮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마르그리트 뒤라스 | 윤진 옮김
사건 아니 에르노 | 윤석헌 옮김
여름의 책 토베 얀손 | 안미란 옮김
두 손 가벼운 여행 토베 얀손 | 안미란 옮김
이별의 김포공항 박완서
해방촌 가는 길 강신재
소금 강경애 | 심진경 엮고 옮김
서재에서의 시간(근간) 버지니아 울프 | 이미애 옮김
지난날의 스케치(근간) 버지니아 울프 | 이미애 옮김
물질적 삶(근간) 마르그리트 뒤라스 | 윤진 옮김
뭔가 유치하지만 매우 자연스러운(근간) 캐서린 맨스필드 | 박소현 옮김
엄마 실격(근간) 샬럿 퍼킨스 길먼 | 이은숙 옮김
제복의 소녀(근간) 크리스타 빈슬로 | 박광자 옮김
세 가지 인생(근간) 거트루드 스타인 | 이은숙 옮김

편집자 리뷰

1963년 10월, 루앙에서 생리가 시작되기를 일주일 이상 기다렸다. 쾌청하고 온화한 날들이었다. 팬티에 비친 피를 볼 수 있기를 내내 바랐다. 매일 저녁마다 수첩에 또박또박 ‘아무것도 없음’이라고 쓰고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자다가 깨었던 밤에도 곧바로 ‘아무것도 없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생리가 시작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가야 할 길도, 따라야 할 표지도 아무것도 없었다.

많은 소설들이 임신 중절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 일이 정확하게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방식에 대해서까지는 세부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여자가 스스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과 이제 더는 임신하지 않은 상태 사이는 생략되었다. -본문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엄청난 울림을 지닌 작품. -《퍼블리셔스 위클리》
아니 에르노의 『사건』은 파괴적일 정도로 선명하고, 철두철미하게 제어된 정확한 글쓰기로 작가 자신에게 일어난 계급, 권력, 가부장제와 뒤얽힌 고통스러운 경험과 사회적 낙인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가디언》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
‘칼 같은 글쓰기’의 작가 아니 에르노의 용기 있는 고백록

자전적 탐구와 사회 과학적 방법론을 결합한, 자신의 민낯을 명징하게 낱낱이 보여 주는 독보적인 글쓰기로 프랑스 문단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서 군림하고 있는 아니 에르노의 용기 있는 고백록 『사건』이 ‘민음사 쏜살 문고’로 출간되었다. 격렬한 성적 체험과 무분별한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이며 전 세계 문단에 적잖은 충격을 안겨 준 『단순한 열정』, 『탐닉』을 비롯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냉철하게 회고한 『남자의 자리』와 『한 여자』, 프롤레타리아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의 운명과 거기서 벗어나고자 분투하는 부끄러운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 낸 『부끄러움』, 이미 한 편의 작품을 넘어 하나의 문학적 사건으로 기록된 『세월』로 프랑스 유수의 문학상은 물론, 2019년 맨부커 국제상 최종심에도 오른 ‘아니 에르노’의 이름은 우리 독자들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문단에 등장한 이래 끊임없이 자신을 고백해 온 아니 에르노이지만 유독 『사건』만큼은 끝끝내 이야기하기가 고통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사건』의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어떤 경험’, 즉 임신 중절 체험을 모조리, 일말의 과장이나 오류 없이 샅샅이 고백하기란 아무래도 불가능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법이 금지하고 범죄로 낙인찍은 임신 중절이 ‘여성의 선택’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의 시간이 흘러, 그저 일상적으로 성병 검사를 받던 바로 그 순간에, 불현듯이 벼락처럼, 임신 중절을 해야만 하는 임신 상태에 내몰려 있던 이십 대의 자신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결국 에르노는 과거의 일기를 다시 끄집어냈고, 그때 방황했던 장소들, 무심하게 흐르던 음악을 맹렬하게 다시 마주하며 “생리가 시작되기만을” 간절하게 소망하던 절망적인 시간 속으로 거칠게 휩쓸려 들어간다. 섹스는 자신과 보르도 출신 남학생 모두의 몫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처럼 찾아든 ‘임신’은 오로지 여성만의 굴레였다. 작가는, 섹스를 할 때는 자신도 남자와 다를 바 없다고 느꼈지만 임신을 하고 나서야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보수적이고 신앙심 깊은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화자는 절박한 마음에 평소 자유연애를 지지하고 여성 인권에 민감한 친구들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들조차도 ‘임신 중절’을 예외적인 사건이라 치부하며 내심 깔보는 태도를 내보인다. 심지어 도움을 청한 한 남성으로부터는 (이미 임신을 했으니) ‘어차피 임신할 걱정이 없는 여자’라는 취급까지 받아 가며 성추행을 당한다. 모두가 이 일(임신 중절)을 알고 있음에도 절대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는다. 같은 섹스, 같은 임신에 대해서도 남성과 여성을 가르는 이중 잣대가 존재하고, 법은 불가피하게 임신 중절을 해야만 하는 여성들을 죽음으로 내몰며 타락한 여자로 낙인을 찍는다. 마침내 아니 에르노는 제도가 보호하지 않는 ‘임신’과 ‘중절’이 신분 추락, 학업 실패 따위를 명백하게 암시하는 기호임을 깨닫고, 목숨을 저당 잡힌 채 뜨개질바늘을, 불법 시술사의 탐침관을 자신의 성기 속으로 밀어 넣는다. “늘 그래 왔듯 임신 중절이 나쁘기 때문에 금지되었는지, 금지되었기 때문에 나쁜지를 규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법에 비추어 판단했고, 법을 판단하지는 않았다.”라는 저자의 고발처럼, 『사건』은 ‘임신 중절’이 여전히 법적 문제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 현재 진행형의 화두를 던진다.

목차

본문

작가 소개

아니 에르노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릴본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이브토에서 성장했다. 루앙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 교사, 대학 교원 등의 자리를 거쳐 문학 교수 자격을 획득했다.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장롱(Les Armoires vides)』으로 등단해, 『남자의 자리(La Place)』(1984)로 르노도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8년, 현대 프랑스의 변천을 조망한 『세월(Les Années)』로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레벤느망」의 원작 『사건(L’événement)』, 『그들의 말 혹은 침묵(Ce qu’ils disent ou rien)』,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 『부끄러움(La Honte)』, 『사진의 용도(L’Usage de la photo)』 등이 있으며, 2011년 자전 소설과 미발표 일기 등을 수록한 선집 『삶을 쓰다(Ecrire la vie)』로 생존 작가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됐다. 2003년 작가 자신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상이 제정됐다. 2022년 “개인의 기억에 깃든 근원과 소외, 그리고 집단적 억압을 드러내는 용기와 냉철한 예리함”을 인정받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윤석헌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파리 8대학교에서 조르주 페렉 연구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프랑스 소설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레모 출판사를 운영하며 다양한 프랑스 문학을 번역, 소개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호르헤 셈프룬의 『잘 가거라, 찬란한 빛이여…』, 크리스텔 다보스의 『거울로 드나드는 여자』, 델핀 드 비강의 『충실한 마음』(근간), 조르주 페렉의 『용병대장』(근간), 앙드레 지드의 『팔뤼드』(근간) 등이 있다.

독자 리뷰(3)

독자 평점

4.2

북클럽회원 10명의 평가

한줄평

임신과 함께 사회 밑바닥으로 추락할 운명이었던 여자는 낙태를 함으로써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임신 중절(이제는 임신 중단)이 태아가 생명이냐 아니냐의 판단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되는 시사점이다. 그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결코 알아차릴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담론이다.

밑줄 친 문장

의사들은 감히 진실을 말하지도 않았다. 여자들을 죽게 방치하는 법을 위반하느니 차라리 당신들이 죽는 편이 더 낫다고 솔직하게 나서지 않는 한, 임신할 정도로 멍청한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눈 때문에 자기가 이룬 모든 걸 잃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어쨌든 그들은 하나같이 여자들의 임신 중절을 막더라도, 그녀들이 알아서 방법을 찾아낼 거라 생각했으리라. 부서질지도 모르는 자기들 이력에 비하면, 여자들이 질 속에 뜨개질바늘을 넣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나 같은 여자들은 의사의 하루를 망쳤다.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아마도 이것뿐이리라. 나의 육체와 감각 그리고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말하자면 내 존재가 완벽하게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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