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
1996년 오늘의 작가상 최종심에 올랐고 《세계의 문학》 1996년 겨울호에 전격 발표되어 비평계의 호평을 받았던 『DMZ』는 판문점 북쪽에서 벌어진 남한 병사와 북한 병사 간의 총기 난사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일종의 추리 기법으로 전개해 나가는 내용의 작품이다.이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 판문점 살인 사건의 경과를 추적해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화자의 아버지 이연우의 삶을 일기를 통해 돌이켜 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남과 북 모두를 부정하고 있는 작가의 도저한 중도적 시선이다. 이 중도적 시선이 가 닿은 자리는 이데올로기 이전의 휴머니즘이다. 사실 이 ‘제3의 길’의 발견은 최인훈의 『광장』이나 윤흥길의 『장마』에서도 모색된 바 있는 분단 문학의 오랜 과제였다. 『DMZ』의 작가는 신인 작가답지 않게 야심 찬 마음으로 그 과제에 도전해 본 것이고, 이로써 아직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는 분단 문제가 우리 소설 속에 잊혀질 수 없는 과제로 오롯이 남게 되었음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판문점 북측 초소 내에서 벌어진 남북한 병사들 간의 총격전에 얽힌 진실은 영화보다 소설 쪽이 좀 더 충격적이다. – 동아일보
원작 소설인 『DMZ』를 면밀하게 읽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묘한 감회를 준다. 영화와 소설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 혹은 영상매체와 문학의 위상 정립이란 미묘한 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 이문열(소설가)
2000년 최고의 한국 영화로 평가받고 있는 영화「공동경비구역 JSA」의 인기 몰이가 계속되면서,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주목받고 있다. 영화의 바탕이 된 소설 『DMZ』는 1996년 민음사가 주관하는 <오늘의 작가상>에 응모한 작품으로, 최종심에서 경합을 벌이며, \”긴박하게 펼쳐지는 재미있는 줄거리\”, \”남성적 서사의 부활\”이라는 찬사 어린 심사평을 이끌어 낸 바 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한반도의 대치상황을 극명하게 반영하는 판문점 지역에서 남북 병사들이 경계선을 오가며 우정을 나눈다는 소재의 대담성으로 인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그 후 판문점에서 발생한 \’김훈 중위\’ 사건은 이 소설의 개연성을 확인시켜 주고도 남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방대하고도 치밀한 취재력과 날카로운 현실 예견력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소설이 전격적으로 영화화되어 수많은 한국 영화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소설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스토리소설의 줄거리는 영화와는 달리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하나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판문점 북측 초소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건 조사를 책임진 중립국 감독위 소속의 장교가 간직한 가족사 이야기다. 영화에서 이영애가 맡고 있는 이 역은, 소설 속에서는 한국-켈트 혼혈 남자인 베르사미 소령으로 설정되어 있다. 베르사미 소령은 총격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사와 한반도의 분단사, 그리고 현재의 분단 상황을 포개어 놓는다. 화자의 아버지는, 비무장지대 인근 마을 출신으로, 한국 전쟁 당시 인민군 소좌로 참전해 낙동강 전투에서 포로가 된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맹렬한 공산 포로의 선두에 섰던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남한을 선택한 반공 포로였던 동생을 조건 반사처럼 죽이게 된다. 그리고 제3국행을 택해 인도를 거처 브라질에 정착하게 되고, 파견 기자로 활동하던 스위스 여인을 만나고 주인공을 낳은 것이다. 회한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총격 사건에 연루된 남북한 병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고, 이들 모두가 분단된 조국의 희생자임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보다 충격적인 북측 초소의 총격 장면 마지막에 밝혀진 총격 사건의 진실 또한 영화보다는 소설 쪽이 더욱 강렬하다. 휴전선 이북 북한군 초소에서 남몰래 우정을 나누는 남북의 병사들. 이들은 자신들이 같은 고민을 나누어 가진 동시대의 젊은이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주입식 교육 속에서 무조건적으로 서로를 증오하도록 교육받은 이들의 만남에는 언제나 불안감이 감돈다. 아주 사소한 것도 이 위태로운 평화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갑작스레 찾아온 북한군 장교가 이들의 만남을 목격하게 되면서 참극이 시작된다고 설정하고 있지만, 소설에서는 그 발단이 너무나도 우연한 오해로 시작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건의 시초는 판문점 부근에서 누군가 실수로 저지른 오발 사고다. 한밤중에 예기치 않게 울려퍼진 총소리에 얼마전까지도 화기애애하던 남과 북의 젊은이들도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된다. 그것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를 듣고서 침을 흘리듯, 반세기의 분단 교육이 만들어낸 조건반사였다. 사태를 진정시키고자 담배 한 대씩을 피자고 제의하며 오경필이 꺼낸 지포라이타에서 반사된 전등 불빛을 날카로운 칼날로 오인한 이수혁의 발포를 기화로 무차별적인 난사가 시작된다. 총성이 가시고 모든 것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사태는 더 이상 걷잡을 수 없게 번져 나간다.
신세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기획과 취재 처녀작인 이 작품으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박상연은 소설『DMZ』의 창작 과정에서 누구 못지 않은 사전 조사와 취재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처음에는 청량리역에서 살았어요. 지나가는 군인들 중 JSA군복을 입은 군인들은 무조건 붙잡고 이야기해 달라고 졸랐죠. 술도 사주고 그러면서요.\” 또한 인터넷을 비롯해서, 관련된 자료가 있을 만한 곳은 모두 찾아 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1년 남짓. 결국 『DMZ』는 신세대다운 패기와 적극적인 취재, 그리고 작가의 뜨거운 가슴이 어우러져 탄생한 수작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