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계속될 거야

신동옥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9년 10월 4일 | ISBN 978-89-374-0881-6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60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삶으로 뛰어들기, 시를 멈추지 않기
그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말하며
확장되는 언어, 계속되는 믿음

편집자 리뷰

견고한 사유를 민활한 언어로 그려 내며 시단의 주목을 받아 온 시인 신동옥의 네 번째 시집 『밤이 계속될 거야』가 민음의 시 261번으로 출간되었다. 친애하는 이에게 건네기 좋은 시집의 제목처럼 네 번째 시집에서 신동옥은 보다 유해지고 연해졌다. 그간 신동옥의 시가 타는 듯한 열기를 뿜어냈다면, 시집 『밤이 계속될 거야』에서 그의 시들은 찻물 같은 온기를 품고 있다. 토해 내는 절규는 부드러운 회유가 되었다. 거기에는 ‘계속’을 붙드는 유쾌함과 다정함이 서려 있다. 이 변화는 계속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변신이자 계속 가기 위해 이리저리 달리 걸어 보는 발걸음이다. 그는 봄비를 보고 낙엽을 보고 눈 내리는 골을 지나 계속 갈 것이다. 무수한 시작노트와 시론과 배경음악 리스트를 적어 나가며, 가능과 불가능을 목격하며, 삶과 시를 멈추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는 마음으로.

 

■시어로 확장되는 감각의 지도

담 너머론 속을 드러낸 살굿빛 그 비릿한 바람 속에서도 저마다 핏기를 씻어 낸 꿈. 가정이라는 말이었다. 귀 기울이면 풀벌레 기어가는 아우성. 매달린 이슬마다 숲 한 채씩 이고 진다. 말갛게 가라앉는 지붕 아래 쪽창으론 소금에 절인 잠과 꿈. 게거품 몽글몽글 토해 내는 불빛으로 겨우,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정릉」에서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어휘를 다종다양하게 활용하는 신동옥은 한국어가 지닌 아름다움의 정수를 선보였던 시인 백석을 연상케 한다. 신동옥이 사용하는 시어는 육지와 바다를 건너다니고, 골짜기와 골목을 가로지르며, 이생과 저생을 넘나든다. 시를 읽는 우리는 시인이 짜 놓은 루트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시인이 적은 대로 “고래, 고사리, 공룡”(「고래가 되는 꿈, 뒷이야기」) 하고 따라 읽다 보면 아득한 꿈을 꾼 듯하다. “메추리 알 듬성듬성 올림 장조림에 기름종이처럼 건너편 얼굴이 훤히 비치는 깻잎 김치”(「송천생고기」)라고 읽으면 혀끝에 아슴아슴 그 맛이 살아나는 듯하다. “강 끝은 절벽이더군, 너머로는 옥룡 다압 옥곡 별천지처럼 물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뻗어 가는”(「하동」)하고 읽으면 낯선 지도를 더듬어 본 듯한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신동옥은 죽은 듯 숨은 단어에 숨을 틔워 시어로 만든다. 입안에서 신동옥의 시어를 굴리면 굴릴수록 우리의 감각은 살아난다. 본 적 없는 단어는 가 본 적 없는 동네처럼 낯설지만 그 발견만큼, 낯섦만큼 우리의 세계는 확장될 것이다.

■밤이 계속되고 별이 타오를 거야

그림자가 있다면 어딘가 빛이 있다.
빛이 남아 있다면
어딘가에는 반드시 이생을 주시하는 두 눈이 있다.
내내 눈을 감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안목」에서

열(熱)보다는 온(溫)에 가까운 태도가 돋보이는 시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인이 줄곧 품어 온 불덩이가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불은 별이 된 것 같다. 별은 스스로 빛을 내며,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무수히 다른 방향으로 운동한다. 그리고 억겁의 시간을 산다. 시집 『밤이 계속될 거야』의 시편 역시 일견 은은해 보이지만 더없이 “살아 요동치”(「정월에」)는 열기와 운동성을 품고 있다. “불을 피우고 남은 불씨는 묻어”(「극야」) 둔 듯 온기 어리고 “자장가”(「두부의 맛」)처럼 속도를 늦춘 시편들 사이에서 벼락처럼 번쩍이고 소리치는 시들 역시 도사리고 있다. 현실과 제도를 진단하고 분노하며 고뇌하는 신동옥에게는 일견 젊은 시인에게 기침을 하고 가래를 뱉으라던 시인 김수영의 면모가 엿보이기도 한다. 또한 시인은 “가장 좋은 시는 아직 쓰지 않은 시”(「시작노트」)라고 말하며 완주 없는 시의 시간을 산다. 시집의 제목처럼 밤이 계속되는 동안 시인이 틔운 빛도 계속 타오를 것이다. 작게 빛나는 것 같지만 영원처럼 오래 타고 있는 커다란 불덩이, 그것이 그가 쓰는 시이자 살아내는 삶이다.


 

■본문에서

기역으로 시작하는 말 중에 고래, 고사리, 공룡은
종교다. 화석은 완벽하게 물기를 증발시킨
믿음이 증명하는 꿈이다. 고고학에 기대지 않더라도
물이 기화하는 속도를 세포 단위로 재 가며
시간의 죽음을 셈해 본 무언가가 있었다.

-「고래가 되는 꿈, 뒷이야기」에서

철길 아래 외딴집 기차는 하루 두 번 지난다. 철길을 따라 먼 길을 떠난 나는 어느 날 돌아온다 불쏘시개 한 집 이젤 하나 달걀 두 줄을 이고. 돌아와 죽어 가는 식구를 그린다. 사라지는 것들을 그리기 즐겼거든.

-「자화상」에서

달빛에 누렇게 여문 눈동자 속에 짜고 가난한 눈빛을 오래 우려내자. 뜬세상 비지란 비지는 모조리 가라앉은 맑은 웃물에 몸을 씻자, 거기 집 짓고 살자.

-「두부의 맛」에서

언젠가 나는 나 자신의 신(神)이 될 거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말하기 위해서. 모두 거기서 왔지만 등지고 걷는 출발점. 뿌리를 향해 자라는 식물은 없다. 누구도 걸음을 뗀 곳으로 되짚어 가지 않는다.

-「구름의 파수병」에서

시 한 줄 쓰고 고개 돌려 보면
세상이 달리 보였다.
달라져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의 이야기가
또 나의 이야기가, 모두 함께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삶이 계속될 거야.
-시인의 말에서

 

■추천의 말

시인에겐 말이 시가 아니라 ‘시가 말’이고, ‘시가 생활’이고, ‘시가 현실’이다. 언어력이 삶력이고 현실력이다. 새로운 언어가 삶을 발명하고 현실을 발명한다. 시가 미지의 말을 데리고 생에 불시착할 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동돼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말로서 구현할 때, 시는 말의 새로운 씨앗(빛)이며 시인은 “빛을 전하는 밀사”(「정월에」)일 것이다.
-박용하(시인)

그의 목소리는 소박한 자기 긍정으로 귀결되거나, 대상 자체에 대한 미적 외경으로 나아가거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혹하게 마멸되어 가는 일상의 삶을 포착하는 것을 거부하고, 언어와 사물의 존재 형식을 끝없는 ‘다른 문장’의 불연속적 연속성으로 보여 준다. 그 불연속적 연속성에서 언어의 따뜻함과 감각의 견고함과 사유의 무량함이 함께 묻어난다.
-유성호(문학평론가)

목차

정릉 11
안목 12
숨과 볼 13
하동 16
고래가 되는 꿈, 뒷이야기 18
후일담 24
송천생고기 30
순록 33
솔리스트 34
시작노트 36
자화상 38
도깨비불 39
극야 40
홍하의 골짜기 42
두부의 맛 44
벚꽃 축제 46
봄빛 49
이 동네의 골목 50
마샤와 곰 52
제동이 55
눈 내리는 빨래골 58
정월에 65
화살나무 68
혜성 71
쌍둥이 마음 74
잠두 76
배추흰나비 와불 78
월악 80
상두꾼 82
여수 86
더 복서 88
산판꾼 90
꿩의 바다 92
무지개어린이집을 떠나며 96
『존재와 시간』 강의 노트 98
숲과 재 106
오픈 북 110
힘을 내요 문양숙 113
홈 플러스 114
선생님 무덤 115
파릉초 119
카메오 121
해일과 파도 124
시론 125
구름의 파수병 128
겨울빛 129
초청 강연을 거절하기 위해 쓰는 편지 130
배경음악 137

발문 1–박용하(시인)
이생의 한낮 141
발문 2–유성호(문학평론가)
은은하게 빛나는, 희고 아름다운 발걸음 147

작가 소개

신동옥

1977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2001년 《시와반시》로 등단했다.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 『고래가 되는 꿈』을 썼다. 문학일기 『서정적 게으름』, 시론집 『기억해 봐, 마지막으로 시인이었던 것이 언제였는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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