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방문객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 22 | 분야 오늘의 젊은 작가 22, 한국 문학
“너희들 누구니?
내 집에 온 이유가 뭐야?”
어느 여름, 고요했던 저택에
두 방문객이 다녀간 뒤
알고 있던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김희진 작가의 네 번째 장편소설 『두 방문객』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22번으로 출간되었다. 김희진 작가는 누구나 겪게 마련인 관계에 대한 문제를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알레고리로 풀어내는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 거대한 성 같은 집에서 고양이 188마리와 함께 사는 주인공 ‘고요다’를 다룬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이나 원숭이 ‘마짱’을 키우며 시종일관 가족 험담을 늘어놓는 요리사 지망생 ‘장호’가 등장하는 장편소설 『양파의 습관』 등 김희진 작가 장편소설이 갖는 특장은 뚜렷한 개성과 흥미로운 플롯에 있었다.
『두 방문객』에서는 작가 특유의 흡인력이 보다 내밀한 영역으로 새로이 뻗어나간다. 어느 여름날, 수영장을 갖춘 양평의 한 저택에 세 명의 사람들이 모인다. 그들 셋이 가진 공통점이라고는 생을 바칠 만큼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혹은 잃어 가는 중이라는 것뿐이다. 상실의 경험을 나눠 가진 인물들이 서로 진실한 마음을 숨긴 채 함께 보내는 닷새의 시간 동안, 어떤 것이 지켜지고 또 어떤 것이 버려질까. 김희진은 물빛처럼 일렁이며 시시각각 변해 가는 마음의 형태에 주목한다.
■분리된 듯 서로 연결된 무대 위에서
3년 전 의문의 교통사고로 아들 ‘상운’을 잃은 손경애는 아들의 생일을 기리기 위해 급히 귀국한다.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깬 손경애의 눈앞에는 생일 케이크를 손에 든 두 방문객이 서 있다. 상운에게 의뢰받아 저택 설계를 했던 친구 권세현, 그리고 권세현과 약혼한 사이이자 갤러리 큐레이터인 정수연. 세 인물은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지고 저택에 모였다. 그들은 닷새 동안, 커다랗고 깨끗한 수영장을 갖춘 저택이라는 무대에서 각자의 진심을 조금씩 풀어놓는다.
김희진 작가는 시공간적 제약을 통해 절박한 사랑과 감정 들이 점차 깎여 나가고 변화하는 모습을 가장 효과적으로 포착한다. 그들 셋은 상운과의 추억을 늘어놓으며 함께 생일 케이크 초를 켜고, 멋진 식사를 즐기고, 수영장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지만 각자가 지닌 내밀한, 내밀하여 밖으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애틋한 마음들은 닫힌 공간과 제한된 시간 속에서 서로 필연적으로 부딪치고 만다. 상운이 의뢰한 대로 “분리된 듯 서로 연결된” 구조로 설계된 저택 안에서 셋의 시선은 끊임없이 엇갈리고 충돌한다. 그 엇나감과 충돌에서 비롯된 팽팽한 긴장이 소설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
■파국 너머 새로운 시작의 기미
관계란, 종류를 막론하고 때로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흔적도 남지 않도록 저버리고 싶기도 하고 보다 완전한 것으로 만들고 싶기도 하다. 결코 하나의 관계망 안에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들이 동시에 세상 밖으로 드러난 순간, 우리는 흔히 파국으로 치닫는 마지막 순간을 상상한다. 굳건할 줄만 알았던 관계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그 안의 사람들은 더 큰 상처를 떠안는다. 이야기는 완전한 끝을 맞이한다. 어쩌면 이러한 파국은 가장 명백하고도 쉬운 결말이다.
그러나 김희진 작가는 더 먼 미래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방향을 택한다. 『두 방문객』의 세 인물을 파국과는 다른 곳으로 인도한다. 지난한 과정 속에서 새로 맺어지고 지속될 관계의 기미를 끝내 드러내 보인다. 우리는 더 멀리 걸어가는 인물들의 내밀한 속마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읽어 낼 수 있다. 교차 서술되며 펼쳐지는 손경애, 권세현, 정수연 세 인물의 시점에서, 때때로 다른 빛을 띠고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두 방문객’이 남긴, 파국 너머 새로운 시작의 기미를 함께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에서
더 자세한 확인을 위해 인터폰 모니터에 화면을 띄웠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다각도 모양의 이모티콘을 누르자 두 방문객의 전신 화면과 후방 화면이 차례대로 떴다. 양손에 캐리어를 든 남자 뒤에는 여자가 서 있었고, 그 여자의 양손에는 케이크 상자와 와인이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상운이를 찾아온 손님이지 싶었다. 그런데 죽은 아들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을 만한 사람이란 대체 누굴까.
―23쪽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며칠 전까지는 저도 몰랐다고, 그런데 며칠 전부터 알게 돼 버렸다고 솔직하게 털어놔야 하나? 아니, 아니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아직 모르지만 그걸 찾으러 왔을 뿐이다. 그리고 이 집에 아들 노릇을 해 주러 왔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 이상은 안 된다.
나는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이렇게 대답했다. “없어요. 그 이름은 저희도 상운이 사고 소식 듣던 날 처음 들었으니까요.”
―76쪽
우리의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뭔가 공허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서로의 얘기에 집중하고 웃어 주고 반응해 줬지만, 동시에 뭔가 미묘하게 어긋나고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맞았다. 그때 내 신경은 온통, 그날 처음 만난 상운 씨에게 가 있었다. 나와 우리 앞에, 우리 모두의 감정을 뒤흔들 사람이 나타났음을, 나와 우리는 직감했던 것이다. 그날 내가 본, 스물아홉 살의 상운 씨는 무척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워서 불안했고, 불안해서 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그날의 상운 씨였다.
―95쪽
두 방문객 7
작가의 말 207
독자 평점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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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밑줄 친 문장
관계란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게 돼 있었다. 그게 파괴를 낳느냐 상생을 낳느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 관계는 결국 무언가를 남긴 채 떠나게 돼 있었다.
근데 있잖아, 나와 같이 죽어줄 여성을 찾아내는 일은 의외로 쉽고 간단하더라. 그래서 슬펐고, 절망스러웠고, 안타까웠어. 보이지 않는 곳에 내가 모르는 비극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내 사랑이, 그리고 나란 사람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한없이 부끄러웠다.
애도의 시간을 거침으로써 셋이었던 우리 가족은 넷도 아닌 다섯이 된 것 같았다. 다섯 개의 모서리라니...... 한 개를 잃고 두 개를 얻었으면 그 또한 됐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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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되는 시선들 사이 각각의 감정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과 돌아오지 않는 사랑을 붙들고 있는 마음이란.
그들의 고독하고 쓸쓸하고 아팠을 사랑에 마음이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