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1945년의 기억
혐오와 배제 위에 쌓아올린
비루한 역사의 ‘잔여’에 대해 묻다
한국 최고의 스토리텔러 배삼식!
식민지 시대 ‘허’의 미학과
‘생’의 감각을 담은 2편의 신작 출간
▶ “막상 해방된 사람들 가운데서도 해방의 기쁨을 느낄 수 없었던 떠도는 영혼을 위한 이야기” -고선웅(연출가)
▶ “혐오와 배제로 가려진 우리 역사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 「1945」는 ‘생존’을 위해 인간됨을 버려야 했고, 또한 ‘실존’을 위해 인간됨을 고민했던 사람들의 역사를 통해 해방 이후의 혼란을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 올해의 작품상 선정 이유에서
배삼식 신작 희곡집 『1945』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 현대사 바깥에 위치한 개인들의 말과 행동을 따뜻하고 개성적인 시선으로 그려 온 배삼식은 작가들이 신뢰하는 작가이자 독자들이 사랑하는 작가이며 평단이 환호하는 작가다. 희곡은 무대 공연을 전제한 예술 장르이지만, 배삼식의 희곡은 읽는 것만으로도 휘몰아쳐 온다. 개인들의 일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 소박하면서도 여백으로 가득한 말, 정적이고 아름다운 지문들. 무엇보다 중심의 목소리가 부재한 다성적 세계가 발견하는 누락된 주체들. 배삼식의 작품은 언제나 따듯하게 전복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한다. 신작 『1945』는 식민지 시대의 절망과 혼란을 담은 희곡 2편을 담은 희곡집이다. 한 번도 중심을 향했던 적 없는 배삼식의 시선이 이번에는, 중심을 만들기 위해 골몰했던 해방 이후의 역사를 향한다.
■ 한국인의 영점 지대, 1945년
폐허의 0년. 2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난민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아시아의 난민 수는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한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어떤 사람은 고향만 아니면 괜찮았으며 어떤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각자의 욕망과 과거를 지닌 이들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한 해방. 장막이 걷히자 사람들은 서로를 구분 짓기 시작했다. 용감한 사람, 비열한 사람, 저항한 사람, 배신한 사람, 강한 사람, 약한 사람…… 그 가운데 요구되는 한국인의 정체성.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이 있을까. 오염되지 않은 정체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정체성에 대해 논할 때 배제되는 ‘불순한 것’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누구도 하나의 정체성으로 범주화될 수 없었지만 구분은 조선으로 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었다. 귀환이 시작된 것이다.
표제작인「1945」는 해방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머물던 전재민(戰災民) 구제소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죽을 고비를 함께 넘기며 위안소를 탈출한 명숙과 미즈코를 비롯해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는 이들은 조선행 기차를 타기 위해 전재민 구제소에 머무는 중이다. 생존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인간애가 뒤섞이며 빚어내는 전쟁 이후의 혼란. 「1945」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조명 받지 못했던 인간 군상을 통해 생의 감각을 결여하고 있는 역사의 공백을 복원한다.
■ 삶의 언어로 다시 쓰는 해방의 역사
셰익스피어는 훌륭한 수집가이자 편집자였다. 그의 독창성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있지 않고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새로이 편집하는 데 있었다. 배삼식 작가 역시 각종 수기나 논픽션, 다큐멘터리 등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작품 안에서 인용하거나 변주해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게 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기존의 작품들을 적절히 인용하고 변주한 자료와 기록이 눈에 띈다. 특히 채만식, 염상섭, 김만선, 허준 등의 작가들이 남겼던 만주 체험과 귀국 체험 이야기는 추상적인 이해로만 존재하는 1945년을 생생한 감각이 숨쉬는 1945년으로 다시 쓰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공인된 역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개인의 욕망을 통해 1945년이란 시간을 다시 쓰고자 하는 것은 「1945」를 집필한 작가의 가장 큰 목표이기도 했다. “선입견,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인간들의 구체적인 의지, 삶을 향한 욕망, 도덕적 윤리적 판단 너머에 있는 삶의 모습을 충실하게, 치우침 없이 그려 보고자 했다. 중심인물은 있겠지만 작은 역할 하나라도 저에게는 다 소중하다. 비열해 보여도 제각각의 지옥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 만주 장춘과 전재민 구제소, 귀환의 문학
민족과 국가 바깥으로 밀려났던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은 문학적이다. 욕망과 욕망이 부딪치고 희망과 절망은 아직 자리 잡지 못했다.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각자의 구체적인 의지와 욕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 같이 기차를 기다리는 것 자체가 극적이다. 다양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닌 군상들이 함께 모여들어 뒤섞이고, 잠시 같이 있다가 흩어지는 장춘의 조선인 전재민 구제소라는 공간은 「1945」가 담고 있는 주제를 집약적으로 응축시키고 있는 공간이다. 만주야말로 해방 이후 역사의 맨얼굴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우리가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은 문학적 공간이다.
■ 줄거리
「1945」 해방됐다는 소문이 들려온 1945년. 만주 이곳저곳을 떠돌던 조선인들이 조선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기 위해 잠시 전재민 구제소에 머문다. 일본군 위안소에서 능욕의 세월을 견딘 명숙과 미즈코는 과거를 숨긴 채 구제소로 숨어들고, 함께 가자는 미즈코를 떨쳐 내지 못한 명숙은 미즈코를 벙어리 동생으로 속여 자매 행세를 한다. 가난, 전염병, 중국인들의 핍박으로 전전긍긍하던 그들의 손에 드디어 조선행 기차표가 주어지지만 명숙과 미즈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2017년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
「적로」 1941년 가을 경성. 고향 진도로 내려갔다는 종기와 그의 소리를 잘 알아주는 계선이 이별주를 마시는데 젓대 연주로 명성이 자자하던 두 사람 앞에 의문의 인력거꾼이 등장한다. 그가 데려다준 곳에는 십수 년 전 불현듯 사라져 버린 기생 산월이 앉아 있다. 국악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 대금 명인 박종기와 그의 절친한 벗 김계선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다. 대금 산조의 창시자로 진도아리랑을 창작한 예술가박종기는 엄청난 연습량으로 밤낮없이 대금을 불어 신접한 경지에 이르렀는데, 그의 연주에 산새가 날아왔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악기를 연주하다 세상을 떠날 정도로 예술혼을 불태웠다. 한편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궁중 악사였던 김계선은 민요, 무가반주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한 인물로, 「적로」는 예술혼으로 자신의 삶을 채운 두 예인을 통해 우리 인생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운데 홀연히 사라진 기생 산월의 인생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2017년 서울 돈화문 국악당에서 초연.
서문
1945
적로
작품해설_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 권여선(소설가)
독자 평점
4.5
북클럽회원 11명의 평가
한줄평
밑줄 친 문장
이제껏 살아온 게 꿈 같은데, 아직도 길고 긴 꿈속에 있는데, 꿈속에서 무슨 꿈을 더 꾼단 말이에요?
기레이요.
너도 예뻐.
도서 | 제목 | 댓글 | 작성자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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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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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 2024.7.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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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오사피엔 | 202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