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로서 구현되는 인간의 존재론적 승화살아 있는 현대 프랑스 시단의 거목 이브 본느프와의 첫 시집
초현실주의 이후 현대 불문학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이브 본느프와는 보들레르에서 랭보로 이어지는 프랑스 시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다. 그의 시는 허약한 인간 존재의 현존을 탄탄한 언어로 육화해 내며, 몹시 주지적이지만 돌연 고도의 진정성을 획득한다. <누벨바그 상>, <비평가 협회상>,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한 바 있다.
편집자 리뷰
살아 있는 프랑스 현대시의 거목 이브 본느프와그의 첫 시집이 국내에 정식 소개되다
이브 본느프와Yves Bonnefoy의 첫 시집 『두브의 집과 길에 대하여Du mouvement et de l\’immobilite de Douve』가 발간되었다. 이브 본느프와는 보들레르와 랭보, 말라르메의 계보를 잇고 있는 정통파 시인으로, 프랑스에서는 오랫동안 노벨문학상 후보 제1위로 여겨질 만큼 프랑스 시단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은 모두 세계 속의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첫 시집인 『두브의 집과 길에 대하여』는 ‘집과 길’로 대표되는 부동(不動)과 동(動) 혹은 죽음과 삶 속에 표류하는 인간 존재의 불안을 주 모티브로 한다. 그리고 시를 매개로, 그것을 변증법적으로 합일시켜 존재의 현존(現存)을 긍정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읊고 있다. 본느프와의 모든 시작(詩作) 활동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며, 소멸과 부활에 관한 신화적 상징이 한데 모여 있는 이 시집은 발레리 이후의 프랑스 시 사상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시로써 구현되는 삶과 죽음의 변증법적 합일
제목에 나오는 두브Douve는 무엇일까? 두브는 이 작품 전체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이를테면 주인공 같은 존재이다. 사전에서 ‘douve’를 찾아보면 ‘성벽 주위에 파놓은 도랑’을 가리키는 말로 나온다. 성을 두르고 있는 탁하고 깊은 물 두브. 그런데 이 시집에서는 죽어 버린 여인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녀는 삶과 죽음, 혹은 동(動)과 부동(浮動) 사이를 표류하다 마침내는 그 둘의 변증법적 합일에 이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두브는 한 여인이라기보다는, 유한적인 인간 존재의 상징이며, 세계를 포착하여 변모시키는 시어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석하기 쉽지 않은 이 시집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은 권두의 인용문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정신의 삶은 죽음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이것은 자신을 죽음과는 전혀 무관하도록 지키는 삶 또한 아니다.이것은 죽음을 견디어내고 죽음 안에서 유지되는 삶이다. ― 헤겔의 『정신현상학』 중에서
이브 본느프와는 1942년에 프와티에 대학 수학과를 중도 포기하고 그 이듬해 초현실주의 시인들을 찾아 파리로 상경한다. 초현실주의 잡지 발간 등 여러 활동을 하지만 한계를 느낀 그는, 곧 초현실주의와 결별하고 소르본 대학 철학과에 진학한다. 대학에서 실존주의와 독일 철학을 전공한 그는 키에르케고르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바, 키에르케고르식 존재론적 불안을 문제의식으로 지니고 있다. 그리고 줄곧 그 문제는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시집의 제1장 「연극」에 등장한 두브는 죽어 매장되고 있다. 그(녀)는 그야말로 소멸의 한가운데에 있다. 혹은 죽음 그 자체이다.
누워 있는 두브를 본다. 흰색의 방 안에는 회반죽으로 에워싸인 두 눈, 어지러운 입과 사방에서 두브를 공략하는 우거진 수풀에 버려진 두 손.―「연극 14」
그런데 제3장 「두브는 말한다」를 거쳐 제5장 「진정한 장소」에 이르면 두브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경험, 즉 삶과 죽음, 현존과 부재라는 대립되는 두 측면을 통합하는 ‘진정한 장소’에 이르러 있다.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시인은 양자를 통합시키는 은밀한 체험을 한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말라르메의 영향을 받은 시인 본느프와가 보기에, 죽음으로 요약되는 존재의 유한성에서 인간이 벗어날 수 있는 길, 곧 필멸의 존재가 불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인지하고 명명하는 행위’ 속에 있다. 요컨대 시인의 언어가 개입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죽음의 현존인 두브 혹은 두브의 운명을 시인이 매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언어의 대지’이다.
입은 닫히고 얼굴은 닦여지고정화된 육체, 이 빛나는 운명은언어의 대지에 매장되도다(‥‥‥)두브여, 나는 그대 속에서 말한다, 또한 너를 두 팔 안에 가둔다인지하고 명명하는 행위 속에서― 「진정한 육체」 중에서
시인 본느프와에게는 삶도 죽음도 무엇보다 먼저 언어에 의하며 동시에 언어 안에서 겪는 체험일 수밖에 없다. ‘진정한 장소’란 이런 언어에 의해 부활한 사체, 즉 충실한 영매인 시인을 통해 영감이 가득한 말을 계속하는 죽은 여인 두브, 그 현존의 틀로서의 육체인 것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존재를 건설해 낸다. 본느프와가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키에르케고르적 절망에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끝간데 없는 존재의 어려움 속에서도 시를 통한 구원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오는 이에게 자리를 내줄 것그는 춥고 집 없는 자이기에.
외딴집의 불 켜진 문지방에호롱불 타는 소리에 이끌린 자이기에 ― 「진정한 장소」중에서
밤중에 길을 잃고 헤매다 작은 불빛에 이끌려 찾아든 산중 오두막집에서의 조촐하지만 따뜻한 식사 대접. 지상에 이런 곳이 아직 남아 있다면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며 ‘진정한 장소’. 이렇듯 존재의 생가(生家)로의 희망적인 귀환을 본느프와의 시는 바라고 있다.
이브 본느프와의 시를 읽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식상한 신변잡기적 감상 나열이나 분열된 자아 등을 운운하는 조류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그의 시는 지극히 난해할 뿐만 아니라, 존재의 어둠이라는 문제 속에서 우리를 헤매게 한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음미하면 할수록 그 매력이 증가하고 해석이 무한히 확장된다. 『두브의 집과 길에 대하여』는 1974년부터 발간되어 전 세계의 유수한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을 국내에 알림으로써 우리 시의 지평을 넓혀 온 민음사의 세계시인선 59권이다. 우리말로 옮기면서 이건수 교수는 이 낯선 시인을 국내 독자들이 좀더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상당히 세밀한 주석을 각각의 시에 붙이고 있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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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본푸아 글
초현실주의 이후 20세기 후반기의 프랑스 시단을 대표하는 이브 본푸아는 보들레르로부터 랭보로 이어지는 시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시인이다. 1923년 투르에서 기관차 기계공인 부친과 교사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푸아티에대학교에서 수학을, 소르본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청년 본푸아를 문학으로 이끌었던 브르통의 초현실주의와 결별한 후 1953년 첫 시집 『움직이는 말, 머무르는 몸』을 출간하였다. 삶의 도처에 스며있는 죽음이라는 불안한 주제, 신중하지만 개방적이며 단순하면서도 암시적인 문체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주지적이지만 돌연 보편적 진정성을 보여 주는 본푸아의 시는 허약한 인간 존재의 현존을 탄탄한 언어로 육화해 내고 있다. 한편 조형예술의 형태 묘사에 관해 조예가 깊은 그는 미술평론가로서도 활약하였는데, 이미지의 통일감과 시 언어의 관계에 천착하였다. 1981년에 교수로 취임한 명문 콜레주드프랑스에서도 시적 기능의 비교연구 강좌를 담당하였다. 70세에 대학에서 은퇴한 그는 여전히 현대 프랑스문학의 살아 있는 거장으로 왕성한 문필 활동을 이어가다 2016년에 영면하였다.
"이브 본푸아"의 다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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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수 옮김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고 프랑스 프로방스대학에서 프랑스 현대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세기 프랑스 시인들과 보들레르에 대한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으며, 현재 충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저주받은 천재 시인 보들레르』, 역서로 기유빅 시선 『가죽이 벗겨진 소』, 보들레르의 『벌거벗은 내 마음』, 『라 팡파를로』, 『보들레르의 수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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