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문학을 직시하고
이후의 문학을 상상하는
페미니즘 비평 운동
비평의 존재이유에 대한 회의적 질문이 쏟아지던 최근까지도 묵묵히 번호를 늘려오던 <민음의 비평> 시리즈가 열 번째 책으로 여성 비평가 13인의 평론집 『문학은 위험하다』를 선보인다. 『문학은 위험하다』는 2015년 이후 문학에게 더욱 뚜렷한 요청이 된 페미니즘에 입각해 비평의 주요 쟁점을 다루었다. ‘페미니즘’, ‘현실’, ‘재현’, ‘독자’에 관한 논의의 아카이브이며, 시민-독자가 견인한 페미니즘 이후 문학의 기록이자 전망이다. 이 책에 참여한 여성 비평가들은 그간의 문학을 직시하고, 이후의 문학을 상상한다. 그리하여 문학은 무해함의 무력함에서 빠져나와 스스로 위험해질 수 있다. 문학은 위험하다. 현실과 재현, 독자와 문학 사이에서 비평은 그 위험함에 응답할 수 있다. 그 응답함이 비평의 책무라고 『문학은 위험하다』는 힘주어 말한다.
■ 전진했던, 하지 못했던 페미니즘
1부는 ‘페미니즘 이후의 문학사’라는 제목 하에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비평의 주요한 쟁점을 페미니즘을 통과한 감각으로 다시 읽고 썼다. 소영현은 1960~70년대 《창작과비평》이 비평적으로 주목한 「분례기」와 「객지」의 사례를 살핌으로써 승인되거나 소거된 여성의 자리를 밝힌다. 양윤의는 소설가 오정희의 작품들을 분석하며 새롭고 과감한 토폴리지(topology)를 제시한다. 서영인은 여성문학이 주류로 떠오른 시기로 평가되는 1990년대를 되돌아보며 당시 한정적이었던 여성문학 담론을 지적하고, 의미와 가치의 재평가 필요성을 역설한다. 장은정은 1990~2000년대 여성시를 논하며 ‘지금-여기’에서 다르게 읽히는 텍스트가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비평의 책무를 읽어 낸다. 백지은은 ‘여성’을 덜 말함으로써 ‘여성성’을 허물려고 했던 2000년대 문학이 ‘젠더 패러독스’에 처하게 된 곤경을 짚는다. 강지희는 신성화와 세속화의 이분법으로 2000년대 여성소설을 타자화했던 당대의 비평을 재고한다. 정은경은 최근 한국소설을 바탕으로 여성의 일과 가사 노동, 돌봄의 문제를 고찰한다. 허윤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음으로써 새로이 나타난 독자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너른 연대의 가능성을 사유한다.
■ 똑같고, 또 다른 질문을 반복하며
2부는 강남역 살인사건,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미투 운동으로 이어진 일련의 페미니즘 운동 이후 한국문학의 흐름을 진단하는 비평들을 모았다. 소영현은 해시태그 #문단_내_성폭력 폭로 이후 문학장의 변화 또는 변화 없음의 양태를 살핀다. 김미정은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를 일별하며 공론장의 변화로 흔들리는 재현을 강조한다. 서영인은 기존의 독법이 총체적으로 의심되는 현실에서 비평이 가진 권위의 정체를 다시 사유해야 함을 역설한다. 차미령의 글은 2010년대 후반 한국문학의 특성으로 떠오른 적극적 퀴어 호명을 세심히 짚으며 작금의 폭력과 혐오, 그 너머를 꿈꾸는 한국문학을 기대케 한다. 강지희는 2017년 촛불 혁명 후의 문학을 황정은과 박상영을 중심으로 논하며 문학의 다음 자리를 모색한다. 백지은은 조남주와 최은영의 소설을 비평하며 새롭게 등장한 독자들에 의해 문학적‧미학적 감성이 재배치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양윤의는 강화길의 작품을 분석하여 잠재적인 것을 구현하는 여성서사를 증명해 낸다. 양경언은 2000년대 이후 한국시에서 무성성을 지향한다는 명목으로 소거된 젠더를 발견하며, 최근의 시를 젠더 프레임으로 읽을 때에 비로소 맞닥뜨릴 질문을 제시한다. 장은정은 이소호의 첫 시집 『캣콜링』 작품 해설을 통해 폭력을 재현하는 시의 방식에서부터 지금-여기의 고통을 쓰고 읽는 삶의 방식에까지 비평의 논점을 전진시킨다. 조연정은 이른바 ‘백래시’라고 불릴 만한 일련의 비평들을 대상으로 한 깊은 숙고를 바탕으로 같은 질문을 무겁게 반복한다. 인아영은 개인적 소회가 담긴 짧은 글을 통해 “문학은 억압하지 않는다.”라는 전제를 뒤집는다. 그는 문학에게, 문학을 하는 사람에게 문학은 그 자신의 억압까지 반성할 수 있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문에서 소영현이 선언하듯 쓴 문장, “문학은 위험하다.”는 책의 말미에 이르러 인아영의 문장, “문학은 억압한다.”로 이어진다.
문학은 위험하다, 문학은 억압한다, 같은 명제는 여러 질문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문학은 위험하다』의 표지에 사족처럼 붙은 해시태그(#)는 이 문장이 단순한 명제로서 기능하고 있지 않음을 알려주는 장치다. 인터넷에 발산된 문학에 대한 정보와 주장, 리뷰와 감상은 해시태그 안에서 분류되고 나열된다. 최초의 해시태그는 다음 해시태그를 일으킨다. 여기 13편의 비평문은 비평 운동으로서 작동할 것이며, 이는 다음의 비평에 항시 열려 있다는 뜻이다. 질문은 질문을 낳을 것이고, 이어지는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문학 앞에 육박해 온 현실의 문제들을 함께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은 위험하다』가 비평이 우려와 탄식, 자학에서 벗어나 다른 비평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서문 5
1부 페미니즘 이후의 문학사
비평 시대의 젠더적 기원과 그 불만 ─ 소영현 19
여성과 토폴로지 ─ 양윤의 47
1990년대 문학 지형과 여성문학 담론 ─ 서영인 68
죽지 않고도 ─ 장은정 95
전진(하지 못)했던 페미니즘 ─ 백지은 122
2000년대 여성소설 비평의 신성화와 세속화 ─ 강지희 145
‘돌봄’의 횡단과 아줌마 페미니즘을 위하여 ─ 정은경 167
로맨스 대신 페미니즘을! ─ 허윤 191
2부 너머의 비평들: 페미니즘에서 퀴어까지
페미니즘이라는 문학 ─ 소영현 209
흔들리는 재현·대의의 시간 ─ 김미정 233
문학사, 회고와 동어반복, 혹은 성찰의 매듭 ─ 서영인 260
너머의 퀴어 ─ 차미령 274
광장에서 폭발하는 지성과 명랑 ─ 강지희 292
(표현) 민주화 시대의 소설 ─ 백지은 312
잠재적인 것으로서의 서사 ─ 양윤의 328
최근 시에 나타난 젠더 ‘하기(doing)’와 ‘허물기(undoing)’에 대하여─ 양경언 346
겨누는 것 ─ 장은정 374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 조연정 393
문학은 억압한다 ─ 인아영 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