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인선39] 호라티우스의 시학
시리즈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50주년 기념) 39 | 분야 세계시인선 39
시(詩)로 쓰인 유일한 시학(詩學)
호라티우스 서간시 국내 최초 완역!
유럽의 2000년 문화 전통을 형성한 굳건한 뿌리
“문학 지망생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문학비평으로 가득 찬 보물창고” ─ 이종숙(서울대 영문학과 명예교수)
● 좋은 시는 좋은 삶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 최초로 호라티우스가 문학에 관하여 남긴 세 편의 서간시를 완역한 『호라티우스의 시학』이 고대 라틴어 대역으로 출간되었다. 기원전 14년경 두 권의 『서간시』로 출간되었던 이 세 편의 시 중, 「시학」은 몇 차례 번역된 적 있으나, 「아우구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 「플로루스에 보내는 편지」는 그 온전한 모습을 처음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호라티우스의 시를 전공한 김남우 박사의 믿음직한 번역으로, 문학뿐 아니라 서양 문화의 2000년 전통을 형성한 거대한 뿌리의 실체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플라톤은 철학자의 입장에서 시론을 펼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의 시각에서 비극의 시학을 썼다. 반면 호라티우스는 시인으로서 창작 활동 제반과 시의 효용을 옹호하며, 이를 시로 써냈다. 서양 시학 전통에서 되풀이하여 일어나는 논쟁인 ‘전통과 현재의 패권’ 싸움, 그리고 플라톤 이래 시학의 핵심 주제인 시의 가치에 대하여 호라티우스는 확실한 자신만의 대답을 갖고 있었다.
세월이 포도주처럼 시를 좋게 만든다면
글에 얼마의 세월이 좋은 가치를 가져옵니까?
죽은 지 이제 백 년 된 시인은 어찌 나눕니까?
완벽한 옛것입니까? 어설픈 새것입니까?
정확히 몇 년으로 정하면 논쟁이 끝나리다.
“백 년이 넘은 것은 탁월한 옛것입니다.”
그럼 백 년에서 일 년 아니 한 달이 모자란다면
어찌 됩니까? 탁월한 옛것입니까?
― 『호라티우스의 시학』에서
새것에 희랍인들이 우리만큼 질색했다면
오늘날 무슨 고전이 남았겠으며, 오늘날
백성마다 손때 묻히며 무얼 읽겠습니까?
― 『호라티우스의 시학』에서
그에게 좋은 시란 기교적으로 탁월할 뿐만 아니라 읽는 이에게 즐거움과 윤리적 교훈을 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좋은 시는 좋은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 시의 감화력과 교육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생각은 ‘시인 추방’을 주장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화해라 할 만한 것이며, 서양 문학 전통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시가 곱다고 충분하리까? 달콤할지니,
시란 제 가는 대로 청중의 마음을 이끌지어다.
시인이 웃을 때 함께 웃고, 슬퍼할 때 슬퍼하는
사람들 표정. 눈물짓는 나를 보겠거든 네가 먼저
아파해야겠고, 그때 네 불행이 날 울리리라.
― 『호라티우스의 시학』에서
명하노니, 본보기가 되는 삶들을 지켜보며
현명한 모방자로 게서 생생한 목소리를 찾으시라.
때로 모범들로 눈부시고 올바르게 그려 내는
이야기는 사랑이나 무게를 갖추지 않을지라도,
인민을 더욱 즐겁게 하며 잘 묶어둘 겁니다.
알맹이 없는 헛된 시구는 못 할 일입니다.
― 『호라티우스의 시학』에서
● 문학 지망생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촌철살인
로마의 대표적인 시인인 호라티우스는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하여 창작 활동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감에만 기대어 시 쓰기를 신비화하는 작태에 대해서는 비웃기를 주저하지 않고, 재능과 부단한 연습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중의 반응에 휩쓸려 중심을 잃는 시인, 쓰디쓴 비판에 귀를 닫고 제멋에 겨워 수준 이하의 작품을 내놓는 시인의 모습을 낱낱이 까발린다. 훌륭한 시인이라면 단어를 새로이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로써 언어를 살찌우는 것은 여전히 시인이 지닌 임무일 것이다.
어떤 분야는 평범, 즉 참아줄 만하다면
용납되리다. 법률 자문가나 사건 변호사가
간신히 수졸을 면한 신세라도, (…)
밥벌이는 합니다. 하나 평범한 시인들은
인간들도, 신들도, 책방주도 용서치 않으리다.
― 『호라티우스의 시학』에서
글을 쓰는 그대들은 능력에 맞는 글감을
고르시라. 불감당은 아닌지 어깨가 견딜 수 있을지
오래 두고 살피시라. 조심스레 고른 자를
유창한 화법과 명쾌한 글 배열이 버리지 않습니다.
― 『호라티우스의 시학』에서
호라티우스가 풀어내는 시학에는, 오늘날 창작을 하는 이들에게도 가이드가 될 만한 훌륭한 가르침들이 있다. 소재 선택부터 신중하여 “태산이 몸을 풀어 우스운 생쥐가 태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문장을 다듬는 데 있어 “간결하려고 애쓰다 모호해지고, 매끈함을 좇다가 맥없”어지는 것을 경계하며, 마음껏 창조할 수 있지만 “사람 머리에 말 모가지를” 붙이는 억지를 쓰거나 “모든 걸 믿으라 허구는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메데아가 자식들을 죽이”거나 “아트레우스가 인육을 삶”는 장면을 말초적으로 묘사하지 말라는 재현의 윤리를 제안하기도 한다.
사람 머리에 말 모가지를 화가가
붙여 놓고, 사방팔방 팔다리를 주워 달며
별의별 새털을 덧대어, 아랫도리는 거무데데
꼴사나운 생선인데 위는 곱상한 여인이라면
친구들아, 이를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있겠습니까?
(…)
‘화가나 시인은
뭐든 감행할 똑같은 권리를 늘 갖노라.’
익히 아는 바, 나도 요청한 바, 양해한 바입니다.
하나 순한 것을 흉한 것에 짝 지우며, 뱀을 새와,
범을 양과 어르게 하는 것까지는 아닙니다.
― 『호라티우스의 시학』에서
● 호라티우스, 문화와 교양을 갖춘 지식인의 전범
그의 시학은 당시 로마 젊은이들에게 시 잘 쓰는 법과 더불어 윤리적으로 올바른 삶을 사는 법도 가르칠 수 있는 교과서였다. 이는 중세 전반의 학교 교과 과정,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 교육 이상, 고전주의 시대 형식주의 이론, 나아가 모더니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호라티우스는 2000년의 시간 동안 매 시대의 문화에 새로이 물을 대고 그 뿌리를 살찌우는 강력한 텍스트였다.
예컨대, 호라티우스의 영향은 동시대의 오비디우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단테는 『신곡』에서 기독교 이전 이교도 5대 성인의 한 명으로 호라티우스를 추대하였고,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이끈 페트라르카는 호라티우스의 삶의 방식을 모방하고자 하였다. 몽테뉴, 밀턴, 워즈워스 역시 호라티우스를 재해석하였고, 브레히트는 부단한 망명의 여정마다 호라티우스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호라티우스는 유럽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문화인 상(像) ― 자신을 객관화 하는 데 익숙한 인물로서 사교적이면서도 상식적이고, 공적인 윤리와 애국심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개인적이고, 친구들과의 교유를 즐기면서도 자족적인 삶을 챙길 줄 아는 그런 인물상 ―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후대가 ‘호라티우스’라고 부르게 된 이 문화인의 상이 바로 그의 『시학』에서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 이종숙(서울대학교 영문학과 명예교수), 『호라티우스의 시학』 추천의 글에서
시학
서간시, 문학에 대하여
II 1 아우구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
II 2 플로루스에게 보내는 편지
주(註)
작가에 대하여 (김남우)
추천의 글 : 서양 문화와 문화인 상(像)의 원류 (이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