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
글 권보드래, 심진경, 장영은, 류진희, 이혜령, 허윤, 강지윤, 정미지, 김미정, 조서연, 이진경, 김은하, 오혜진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8년 8월 13일
ISBN: 978-89-374-3798-4
패키지: 반양장 · 신국판 152x225mm · 428쪽
가격: 16,000원
신소설부터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서사까지
우리 세대가 문학을 읽는 가장 열띤 방식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서문을 대신하여 7
1부
권보드래 평민의 딸, 길 위에 서다 — 신소설의 성(性)・계층・민족 21
심진경 여성문학의 탄생, 그 원초적 장면 — 여성・스캔들・소설의 삼각관계 46
장영은 ‘배운 여자’의 탄생과 존재 증명의 글쓰기 — 근대 여성지식인의 자기서사와 그 정치적 가능성 70
류진희 해방기 여성작가들의 문학적 선택 — 지하련・이선희・최정희・장덕조를 중심으로 92
이혜령 그녀와 소녀들 — 일본군 ‘위안부’ 문학/영화를 커밍아웃 서사로 읽기 116
2부
허윤 멜랑콜리아, 한국문학의 ‘퀴어’한 육체들 — 1950년대 염상섭과 손창섭의 소설들 155
강지윤 감수성의 혁명과 반(反)혁명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여성’이라는 암호 181
정미지 불온한 ‘문학소녀’들과 ‘여학생 문학’의 좌표 — 1960년대 독서의 성별화와 교양의 위계 200
김미정 ‘한국-루이제 린저’라는 기호와 ‘여성교양소설’의 불/가능성 — 1960~1970년대 문예 공론장과 ‘교양’의 젠더 228
3부
조서연 돌아온 군인들 — 1950~1970년대의 전쟁 경험과 남성(성)의 드라마 261
이진경 섹슈얼리티의 프롤레타리아화 — 1970년대 문학과 대중문화의 성노동 재현 288
김은하 ‘살아남은 자’의 드라마 — 여성 후일담의 이중적 자아 기획 310
오혜진 ‘이야기꾼’의 젠더와 ‘페미니즘 리부트’ — 신자유주의시대 이후 한국문학(장)의 기율과 뉴웨이브 340
참고문헌 377
색인 399
2017 화제의 강좌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 단행본화
낡은 위계와 권위로 지어진 문학을 부수는 여자들이 온다
2017년 2월, 늦겨울의 추위를 잊게 만들었던 뜨거운 강좌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가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이라는 제목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총 10회에 걸쳐 진행되었던 이 강좌에는 매회 100여 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참여해 열띤 호응을 보냈다.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 강좌의 기획 의도이자 목적은 이런 것이었다. 페미니즘적 감수성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문학을 다시 읽는 일. ‘이성애자-지식인-남성’ 중심적 기율이 지배해 온 창작과 해석의 영역으로 돌진해 여성과 소수자들의 문학을 발명하고 탈환하는 일. 주류 문학의 경직된 틀을 부수고, 말랑말랑하고 유연한 우리 세대의 문학(성)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일.
강좌가 끝난 후, 출간을 요청하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강연자로 참여한 열 명의 연구자를 비롯하여 세 명의 연구자가 새롭게 필자로 참여하여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의 원고가 완성되었다. 바로 지금, 오랫동안 뚝심 있게 ‘페미니즘 프리즘’으로 한국문학사를 검토해 온 소장, 신진 여성연구자들이 1910년대~2010년대 한국문학사의 주요 마디를 점검하면서 한국문학(사)의 성별을 우아하고 거침없이 물을 것이다.
신소설부터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서사까지
‘페미니즘 프리즘’으로 한국문학의 중요한 마디들을 재검토하다
1부에서는 한국에서 ‘근대문학’이라는 것이 형성되던 식민지기의 장면들을 조명한다. 우리는 이 장면을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등 이제는 한국문학사의 신화가 돼 버린 몇 개의 이름들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권보드래는 근대문학이 본격화되기 전, 아주 미묘하고도 독특한 미학과 정치학을 구사하던 서사 양식인 신소설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심진경은 최초의 근대문학이라고 불린 소설들의 대부분이 당대 여성에 대한 소문을 서사화한 일명 ‘모델 소설’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장영은은 남성 작가들의 소설에 모델로만 등장하던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의 글쓰기가 바로 그 ‘소문과 스캔들’에 맞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이야기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류진희는 해방 이후 중심/주변, 문명/야만, 독립/건국 등에 대해 남성 작가들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가졌던 여성 작가들의 문학적 전략을 다종다양하게 펼친다. 이혜령은 식민지기 젠더/섹슈얼리티 정치의 최종 심급이라 할 만한 ‘위안부’라는 여성주체의 ‘증언/커밍아웃’에 대해 날카롭게 포착한다.
2부는 ‘한국문학사의 황금기’라 불리는 1950~1970년대를 다룬다. 이 시기는 손창섭, 김동리, 김승옥, 최인훈, 황순원 등 현재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정전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 시기이자, ‘건국’, ‘성찰’, ‘불온’, ‘교양’, ‘혁명’ 등 한국문학사가 가장 중요시하는 정의와 이상들이 활발하게 생겨난 때이다. 그런데 그 아름답고 진취적인 가치들의 성별은 무엇이었을까? 한국문학사의 ‘빛나는 성좌들의 작품’은 정말 그런 가치에 부합할까? 허윤은 한국전쟁 직후 염상섭과 손창섭이 쓴 것은 당대 ‘건실한 남성 가부장’으로 상상되는 건전한 국민의 서사가 아니라는 점을 짚는다. 오히려 육체적, 정신적 결손 때문에 끊임없이 이성애 관계에 실패하거나 그것을 거부하는 퀴어한 남성(성)이었다는 것이다. 강지윤은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김승옥 소설에서 남성 주인공에게 줄곧 배반당하기만 하는 누이들의 사연을 통해 ‘내면-고백’이라는 김승옥 특유의 미적 장치는 정말 혁명적인 것인지 묻는다. 또한 정미지는 문학을 욕망하는 여성에 대한 멸칭으로 통용돼 온 ‘문학소녀’의 역사적 내력을 검토한다. 김미정은 1960~1970년대 한국에 불었던 루이제 린저 붐을 살핀다. 그토록 견고한 남성 중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여성/문학’, ‘여성/교양’은 어떻게 성립 가능했고, 끝내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각 변동을 이끌어 냈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비주류적인 것’, ‘비문학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오던 여성서사
이제는 한국문학계가 상상할 새로운 민주주의
3부는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포스트-냉전 시대에 전개된 한국문학의 성격과 ‘민주주의’라는 이상의 (불)가능성을 질문한다. 조서연은 한국전쟁부터 베트남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경험을 오직 남성들만의 배타적이고도 특권적인 기억으로 서사화하는 1950~1970년대 희곡과 영화들은 분석한다. 이 ‘군사주의적 남성성’은 오늘날 초국가적으로 전개되는 성노동과도 유사하다. 이진경은 1970년대의 몇몇 작품들은 ‘민족’, ‘국가’와 같은 진보적, 가부장적 명분을 위해 젊은 하층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대거 동원한 국내 성산업의 일면을 재현한다. 이런 진보적 대의명분의 몰성성은 1990년대 여성후일담에 대한 주류 문학사의 평가절하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김은하는 공지영, 김인숙 등의 여성후일담 소설을 ‘혁명’을 남성의 전유물로 독점하려는 시도에 대한 강한 반발로 읽는다. “형제들의 공화국”을 짓는 것으로 귀결된 1980년대 판 민주주의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새롭고도 강력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오혜진은 2000년대 이후 전개된 장편대망론 같은 비평적 화두들을 검토하며 한국문학계가 남성 중심적으로 재편된 순간을 포착한다. 더하여 비주류적인 것, 비문학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오던 여성서사를 전면에 내세우며 한국문학계가 상상할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해 역설한다.
문학을 창작하고 향유하고 해석하고 비평하는 일,
그것은 전부 페미니스트가 해야 할 일이다!
이 책에 묶인 열세 편의 글들이 지닌 문제의식과 관심사는 모두 다르다. 근대문학, 신여성, 사회주의, 해방, ‘위안부’, 교양, 전쟁, 남성성, 진보, 독재, 민주화 등. 때문에 이 글들은 단일한 입장으로 수렴되기 어려우며, 때로는 충돌하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의 필자들이 공통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강연과 단행본 기획을 맡은 연구자 오혜진은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더 이상 주류 문학사의 남성 중심적 질서가 규정한 ‘문학(성)’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것. 한국문학(사)에서 유일하게 문학적 시민권이 부여된 주체인 이성애자 남성, 그의 관점에 동일시해야만 ‘문학’이라는 세계에 겨우 접속할 수 있었던 그 지긋지긋한 “해석노동”(김미정)을 이제는 과감히 멈추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좋은 문학’이고 ‘문학적인 것’인지, 어떤 작품이 한국사회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상상하는 데 필요한 자원인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가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인 이유다.” 문학을 창작하고 향유하고 해석하고 비평하는 일, 그것은 전부 페미니스트가 해야 할 일이다. 이제 이 책을 읽은 우리가 ‘페미니스트 감수성’을 갖춘 새 세대 문학주체로 거듭날 순간이다.
■본문에서
2015년과 2016년은 한국문학(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난(혹은 일어날 뻔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2015년 신경숙 표절 사건에서 시작해 문학권력론으로 비화된 일련의 사태들은 문학출판 시장의 유통 질서, 주요 문예지의 상품 카탈로그화, 명망 있는 소설가들이 획득한 문학성 등을 모조리 심문에 부치며 기존 한국문학(장)의 질서와 위계에 대한 전면적인 개변을 요구했다. 여기에 더해 2016년 온라인상에서 전개된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등단과 지면 등을 볼모로 원로・중견 남성문인들이 여성 신인 작가나 습작생들에게 저지른 숱한 성폭력 사건들을 폭로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부상한 ‘#MeToo’ 운동에 힘입어 한국문학(장)은 또 한 번 뜨거워지는 중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문학사의 ‘명예’로 간주되던 작가들의 이름이 행여 ‘문학적 권위’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돼 온 가부장적 지배질서의 지표들은 아닌지 의심해 보게 됐다.
―7쪽우선 이 기획이 처음부터 내세웠던 것이 ‘페미니즘 문학사’가 아니라 ‘페미니스트 시각’이라는 점을 강조해 두고 싶다. 우리는 가부장적 질서에 침윤된 기존의 ‘부정의한’ 문학이 있고, 그와 명백히 구분되는 (아마도 여성작가의 작품들로 구성되리라 상상되는) ‘완전무결한’ ‘페미니즘 문학’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탐구하고 싶었던 것은 기존 한국문학(사)에서 ‘문학적인 것’과 ‘비문학적인 것’,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정치적인 것’과 ‘비정치적인 것’ 등을 가르는 기율들이 구성되는 원리였다. 그 원리가 여성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타자(성)에 대한 모종의 배제와 위계화를 경유・승인함으로써 성립해 온 것이라면, 새 세대 문학주체들에 의해 도래할 새로운 ‘문학(성)’은 그런 낡고 비민주적인 상상력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랐다.
―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