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 속 또 하나의 우주,
쏜살 문고로 만나는 대문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학 세계
“뻔뻔하고 대담한 작가. 만약 그가 좀 더 살았더라면 분명 노벨 문학상을 탔을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사상가, 비평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없는 일본 문학은 꽃이 없는 정원일 뿐이다.”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문학 연구가, 번역가)
“그저 탄식할 뿐! 다니자키의 작품은 더할 나위 없는 걸작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소설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
“다니자키는 천재다!” 미시마 유키오(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국민 작가’라 할 만하다. 나는 그처럼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를 사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소설가)
2016년 여름, ‘쏜살 문고’의 첫 권이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서른세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이 년여의 시간 동안, 소규모 오프라인 서점과 출판사의 상생을 도모한 ‘쏜살 문고×동네 서점 프로젝트’(2017~2018), 책의 물성을 실험한 ‘쏜살 문고 워터프루프북’(2018)에 이르기까지 문고판 도서의 활성화뿐 아니라 다방면에서 참신한 도전을 이어 왔다. 올 2018년에는 ‘문고 속의 문고’를 기치로 하여, 지금껏 좀처럼 시도된 바 없는 ‘문고판 작가 선집’을 착실히 꾸려 세상에 선보인다.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필두로, 미시마 유키오, 가라타니 고진 등 일본 문학의 주요 인사들이 앞다투어 상찬한 작가이자 단 한 사람의 작품 세계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한 문체와 주제, 형식을 넘나들며 현대 문학의 지평을 확장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학을, 데뷔작에서부터 말년의 대표작, 엄선해 엮은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준비한, 전체 열 권 규모의 ‘작가 선집’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세계적 규모의 인기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비하면 다소 생소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니자키는 “좀 더 살았더라면 분명 노벨 문학상을 탔으리라.”라는 세간의 평가대로, 당대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 작가였을 뿐 아니라, 실제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여섯 차례 넘게 지명되는 등 비평 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이룩한 문학가였다. 이러한 대외적 평가 말고도,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여러모로 주목해 볼 만한 작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 불리며, 다방면(중학생 시절에 쓴 비평문으로 벌써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과목에 두각을 드러냈다고 한다.)에 재능을 보였다. 특히나 언어 감각이 탁월했던 다니자키는 거미가 긴긴 실을 자아내듯 극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야기를 써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의 천부적인 문재(文才)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한층 정려(精麗)해져, 한어와 아어(雅語, 일본 고전 문학에 쓰인 고급한 언어), 시의성 있는 속어와 다양한 방언에 이르기까지 한 작품을 쓰면서도 마치 여러 작가가 머리를 맞댄 것처럼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그뿐 아니라, 주제 면에서도 수천 가지 빛깔로 분광하는 스펙트럼처럼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 줬다. 한평생 에로티시즘, 마조히즘, 페티시즘과 같은 자신의 주요 관심사를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역사 소설, 풍자 소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일본 고전 설화, 낭만적인 로맨스와 메타 소설을 연상하게 하는 파격적인 형식까지 시도하며 놀랍도록 변화무쌍한 행보를 이어 나갔다.
쏜살 문고_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 작품 목록
소년 다니자키 준이치로 | 박연정 외 옮김
금빛 죽음 다니자키 준이치로 | 양윤옥 옮김
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 김춘미 옮김
여뀌 먹는 벌레(근간, 2018년 12월 출간) 다니자키 준이치로 | 임다함 옮김
요시노 구즈 다니자키 준이치로 | 엄인경 옮김
무주공 비화(근간, 2018년 12월 출간) 다니자키 준이치로 | 류정훈 옮김
슌킨 이야기 다니자키 준이치로 | 박연정 외 옮김
열쇠 다니자키 준이치로 | 김효순 옮김
미친 노인의 일기 다니자키 준이치로 | 김효순 옮김
음예 예찬(근간, 2018년 12월 출간) 다니자키 준이치로 | 김보경 옮김
이번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은, 육십여 년에 이르는 문학 역정 내내 경이로운 우주를 펼쳐 보이며 왕성하게 활동한 대작가의 작품 세계를 일대기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끔 열 권의 책을 마련해 구성하였다. 다니자키의 전 작품을 예고하며 장차 싹틀 모든 맹아를 품은 데뷔작 「문신」(『소년』에 수록)부터 초기 대표작 『치인의 사랑』,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여뀌 먹는 벌레』(근간), 『요시노 구즈』, 그리고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틴토 브라스 등 해외 거장들의 격찬을 받은 에로티시즘 문학의 절정 『열쇠』, 작가의 고유한 미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에세이집 『음예 예찬』(근간)에 이르기까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학을 한눈에 음미할 수 있다. 한편 정교하고 우아한 문체 탓에 번역하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다니자키의 작품은,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명예 교수 김춘미 선생의 진두지휘 아래,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및 고려사이버대학교 교수진,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노마 문예 번역상’에 빛나는 양윤옥 선생까지 국내 최고의 번역가들이 모여 우리말로 옮겼다. 더불어 책의 표지는 이빈소연 일러스트레이터가 총책을 맡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치명적이고 농염한 문학 세계를 독특하고 섬세한 이미지로 풀어냈다. 해당 ‘선집’ 열 권의 표지를 한데 모으면 한 폭의 병풍 그림이 되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본문은 새로 출시될 산돌정체로 디자인하여, 그야말로 읽고 보고 모으는 재미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도록 했다.
미증유의 문학 세계를 개척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나라 독서계의 폭과 깊이가 진일보하기를 바라 본다.
드디어 그리운 마을 인가가 보이기 시작하자 무엇보다 먼저 그의 눈을 끈 것은 여기저기 처마 아래에 널어 둔 종이였다. 여기가 내 선조들의 땅이다. 나는 지금 오랫동안 꿈에서 보던 어머니의 고향 땅을 밟았다. 이 유구한 산간 마을은 원래 어머니가 태어났던 그때에도 지금 눈앞에 있는 그대로 평화로운 경치를 펼쳐 보였을 것이다. 사십 년 전의 태양이나 바로 어제의 태양도 여기에서는 똑같이 뜨고 똑같이 졌으리라. 쓰무라는 ‘옛날’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으로 지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순간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 어딘가 그 주변의 나무 울타리 안에서 어머니가 소녀들 무리에 섞여 놀고 있을지도 몰랐다. -「요시노 구즈」에서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의 다섯 번째 권은, 다니자키 문학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 두 작품을 엮은 『요시노 구즈』다. 간토 대지진(1923) 이후, 생활 거점을 간사이 지방(오사카와 교토)으로 옮긴 다니자키는 『치인의 사랑』과 대별되는, 즉 최신의 서구 문명으로부터 길어 오던 문학적 동력을 새로운 영역에서 모색하기 시작한다. 『여뀌 먹는 벌레(근간)』(1928)부터 점차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일본 고전 문화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비로소 「요시노 구즈」와 「장님 이야기」에 이르러 하나의 결실을 이룬다. 앞선 『금빛 죽음』에서 서양의 문학과 미술, 영화를 박물지처럼 열거하던 분위기로부터 급전(急轉)하여, 일본의 고전 문학과 근대 이전의 역사, 전통 예술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주제뿐 아니라 문체 면에서도 일신하여, 아취 가득한 고전 문체를 구사하는가 하면, 간사이 지역의 방언, 문화적 바탕까지 본인의 것으로 소화하여 전혀 색다른 문학 세계를 펼쳐 보인다.
「요시노 구즈」(1931)는 다니자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독특한 형식을 지닌 소설이다. 패권을 둘러싸고 왕통이 갈려 크게 다툰 일본의 남북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집필하고자 친구 쓰무라와 함께 요시노 지역(현재 나라 현 남부)으로 여행을 떠난 화자의 이야기를 일종의 수필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화자와 쓰무라가 저마다 마음속에 품은 각기 다른 목적에 따른 경험, 그리고 서로 공통적으로 떠안고 있는 잃어버린 모성에 대한 그리움이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정교하게 엮여 「요시노 구즈」의 뼈대를 이룬다. ‘작품을 쓰기 위한 취재’를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메타픽션(metafiction)’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다니자키 문학의 또 다른 중핵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자전적 경험으로 바탕으로) 진지하게 다뤄진다는 점에서 가히 ‘작가 경력의 분수령’이라 할 만하다. 「장님 이야기」(1931)는 저 유명한 일본 전국 시대의 역사적 실화를, 영웅호걸의 시점에게서가 아닌 비천한 장님 안마사의 관점에서 그린 이색적인 역사물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뿐 아니라, 난세의 절세 미인 오이치와 그 딸들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치 금박으로 정교하게 장식한 병풍처럼 찬란하게 조형해 낸다. 앞을 볼 수 없는 장님 화자의 이야기는, 정녕 역설적이게도 더욱 감각적인 방식으로 독자들을 매혹한다. 어떤 의미에서 과거의 역사적 현장을 눈으로는 도저히 목격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현대 독자와 「장님 이야기」 속 화자는 동일한 체험을 공유한다. 그 때문에 시각을 잃은 장님 화자의 목소리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과거 전란의 풍파를 한층 생생하게 그려 내는 것은 아닐까? 이와 더불어 노(能)와 샤미센 등, 당시 다니자키가 흠뻑 빠져들었던 일본 전통 문화의 향취 또한 만끽할 수 있다.
■ 차례
요시노 구즈
장님 이야기
옮긴이의 말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