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플라이트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 20 | 분야 오늘의 젊은 작가 20, 한국 문학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작가
박민정 첫 번째 장편소설
신중한 관찰자 박민정이 선보이는
비약 없는 미스터리, 환상 없는 가족 드라마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떠오른 박민정의 첫 번째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가 오늘의 젊은 작가 20번으로 출간되었다. 『미스 플라이트』는 근무하던 항공사에서 노조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끝내 죽음을 택한 딸 ‘유나’와 평생 몸담았던 군대에서 관성처럼 비리에 가담하고 침묵했던 아버지 ‘정근’의 이야기다.
항공사, 승무원, 갑질, 인권 침해, 공군, 방산 비리, 내부 고발. 작가는 이 뜨겁고 복잡한 단어들을 성실한 자료 조사와 정교한 플롯으로 엮어 낸다. 한국적 몰상식의 장면을 피하지 않고 응시하며, 그 위에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 것이다. 이것은 박민정이 선보이는 비약 없는 미스터리 소설이자 환상 없는 가족 드라마다. 『미스 플라이트』를 통해 박민정은 그간 인정받아 온 ‘신중한 관찰자’의 모습에서 한 걸음 나아가, ‘유능한 스토리텔러’로서 독자 앞에 선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변할 수 있을까?
죽은 유나가 남긴 것은 오직 편지 한 통. 그 편지의 수신인인 아버지 홍정근은 이런 사람이다. 전직 공군 대령으로, KF-16 추락 사고와 관련하여 세간에 밝혀진 방산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불명예 제대했다. 전라도 출신이지만 전라도 출신을 가장 혐오했다. ‘까라면 까’는 군대식 법과 상식을 끔찍이 믿었다.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 앳된 운전병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자신이 모시는 상관들이 행차하여 늦게까지 술자리가 이어지는 날이면 이미 근무 시간을 초과한 운전병의 뺨을 치며 그를 붙들어 두었다. 아내인 지숙에게 습관처럼 눈을 부라리고 머리통을 쥐어박았으며, 그런 자신을 향해 유일하게 눈을 맞추고 ‘똑바로 살라’고 말하는 딸 유나를 죽도록 팼다. 그 결과, 그는 혼자 남았다.
그리고 딸이 죽은 뒤에야, 죽음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일념으로 과거를 돌아본다. 유나는 왜 죽었을까? 유나는 왜 나를 외면했을까? 살아 있을 때 유나가 묻던 수많은 질문이 자신에게 걸어오는 시비라고 생각했는데, 유나가 죽은 이후 그는 스스로에게 무수한 질문을 던진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변할 수 있을까?
■딸의 편지는 아버지에게 닿을 수 있을까?
아버지가 전해 받은 유나의 편지는 단 한 장뿐. 그러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편지가 남아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대화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버린 아버지는 알 수 없는, 5년 차 승무원인 유나의 일기인 동시에 승무원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고발하는 폭로문이다. 기내에서 습관적으로 맞닥뜨리는 탑승객의 성희롱과 물리적 폭력, 승무원 개인에게 면세품 판매를 할당하여 그 실적을 보고하도록 하는 사측의 부당한 압박, 비인간적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있어야 할 노조가 없는 항공사의 제도. 이 모든 불의를 똑똑히 바라보던 유나는 조종사 노조의 중심인물과 가깝게 지낸다는 이유로 사측의 요주의 대상이 되고, 유부남인 부기장과 불륜 관계라는 추문에 휩싸인다.
죽기 직전까지 유나는 낱낱이 기록해 놓는다. 회사에게 받은 모멸과 배신에 대해서. 그리고 미워하지만 어쩐지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아버지, 당신에 대해서. 유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누굴까? 편지의 수신인은 왜 아버지여야 했을까? 아직 발견되지 못한 유나의 편지는 언젠가 아버지에게 닿을 수 있을까?
■의심하고 질문하는, 박민정식 여성 성장 서사
『미스 플라이트』는 ‘부성애 서사’의 장르적 기법을 차용한, 딸의 죽음과 그 진실을 밝히려는 아버지의 분투가 담긴 소설이다. 다만 작가는 장르를 의심하고 비튼다. 그리하여 주목하는 것은 군인의 딸로 살던 유년부터 서른한 살의 ‘미스 플라이트’가 되기까지, 부당한 일에 부끄러워하고 함께 싸우며 ‘똑바로’ 살고 싶어 하던 유나의 삶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에 박민정이 썼고, 독자에게 가닿게 될 이 소설은 부성애 서사의 탈을 쓴 여성 성장 서사다.
작품에서 딸의 편지를 읽은 아버지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듯, 이 소설을 읽은 이 역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박민정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새로운 질문으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게 한다. 유나를 둘러싼 여러 입장에 대해, 가해와 피해가 겹치는 자리에 대해, 소설이 남겨 놓은 결말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 직후 한 인터뷰에서 박민정은 “반(反)지성을 경계하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정신을 똑바로 차린 ‘날카로운 작품’을 쓰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미스 플라이트』는 예의 그 다짐처럼 반짝이는 지성으로, 타협하지 않고 쓰인 날카로운 소설이다. 이제 우리가 그 알 수 없는 소설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볼 때다.
■본문에서
— 아버님, 이거 자살 아니잖아요.
엉금엉금 기어 온 철용이 정근의 바지 자락을 붙잡았다. 정근은 문득 그를 걷어차고 싶었다. 냅다 걷어차인 그가 마룻바닥에 나뒹굴면, 그 몸뚱이에 올라타 앉아서 천천히 뺨을 때려 주고 싶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양 뺨을 차례로 쳐 주고 싶었다. 야, 이 새끼야, 너 이 새끼, 네가 나보다 더 힘들어? 어디서 유세를 떨고 지랄이야? 이 어린놈의 새끼가, 야, 정근은 입술을 깨물었다. (20쪽)정근은 실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그 상황을 견뎠다. 유나가 죽었다. 유나의 친구들이었다. 지숙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나보다 유나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나는 모른다. 나는 자격이 없다. 나는 유나에 관해 자격이 없다. (21~22쪽)
— 단 한 번도 뒷좌석에 앉은 적이 없어, 그 애는.
(……) 영훈은 혜진에게, 유나와 자기 사이에 어느새 만들어진 규칙을 설명했다. 어차피 뒤에 안 탈 걸 알면서도, 유나야 뒤에 타라, 말하고, 유나는 앞이 더 좋아요, 대답하며 조수석에 타는 것이다. 대령이 보는 앞에서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올랐다 조수석으로 바꿔 타던 일화를 이야기할 때 혜진은 가슴 아파했다. 너무 조숙한 거 아냐, 불쌍하게. (139~140쪽)얄궂게도 영훈과 헤어지며 돌아오는 길에 자꾸 윤 대령 생각이 났다. 윤 대령을 생각하면 비정하게 쏘아붙이던 유나가 동시에 생각나고, 자신을 쫓아낸 군과 지숙에 이르러 지금까지의 일이 모두 그 때문인 것 같아 참담해진다. (……) 유나가 죽고 나니 모든 게 복잡해졌다. 정근은 유나가 살아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지 이제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아빠, 아직도 몰라요? 아빠가 잘못한 거예요. 윤 대령 아저씨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요. (189쪽)
■추천의 말
작가의 문장은 표면과 상투에 구멍을 뚫어 이야기에 심도를 만들어 냈다. 일반화와 요약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이 이 소설 안에 있다. (……) 유나를 대신해 무겁게 입술을 떼는 박민정의 문장에서 그의 소설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알 수 있었다. 분노를 넘어 기어이 만나게 될 슬픔과 모종의 책임감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정용준(소설가)박민정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전면적으로 끌어다가 물리적인 현실로, 정치적인 콘텍스트로 들이미는 작업에 누구보다 밝고 강하다. (……) 오늘 이 소설을 읽으며 머리와 가슴의 협화음이 울리는 박진감을 느낄 당신과, 어제의 삶을 바라보면서 내일의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 함께 얘기하고 싶다.
―백지은(문학평론가)
미스 플라이트 7
작가의 말 229
작품 해설 | 오염된 진실의 편에서 천희란(소설가) 231
독자 평점
4.2
북클럽회원 18명의 평가
한줄평
밑줄 친 문장
고마워요, 아버지. 그런 걸 궁금해하지 않아 주셔서. 아버지에게 배운 수 많은 것들 중 가장 고마운 것도 그런 것이었다. 상대가 아픈 이야기를 할 때 쓸데없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지 않는 것.
변화는 언제나 오염을 전제한다. 낯선 세계에 공모하며 그를 향해 작용하는 힘은 불완전하고나 불만족스러운 이전 세계를 향해서는 반작용하는 동일한 힘이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의 삶은 오염되어 나아간다. 아니, 애당초 삶은 오염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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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오늘 이 소설을 읽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