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옛사람이 스스로 쓴 58편의 묘비명 읽기
글 심경호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8년 3월 16일
ISBN: 978-89-374-3669-7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5x200 · 768쪽
가격: 27,000원
이끼 낀 묘비를 더듬어 읽으며
다가올 나의 죽음을 생각하고
삶의 의미를 되찾는 여정
책을 엮으며
1 현달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오래 살았다고도 할 만하다 ― 김훤, 「자찬묘지(自撰墓誌)」
2 청풍명월을 술잔으로 삼아 장사 지냈다 ― 조운흘, 「자명(自銘)」
3 나는 망명하여 도피한 사람이다 ― 조상치, 「자표(自表)」
4 시끌시끌한 일일랑 도무지 긴치 않다 ― 박영, 「묘표(墓表)」
5 「감군은」 곡을 늘 타다가 천수를 마쳤노라 ― 상진, 「자명(自銘)」
6 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 남은 것은 흙뿐 ― 이홍준, 「자명(自銘)」
7 시름 가운데 즐거움 있고 즐거움 속에 시름 있도다 ― 이황, 「자명(自銘)」
8 대의가 분명하기에 스스로 믿어 부끄러움이 없다 ― 노수신, 「암실선생자명(暗室先生自銘)」
9 시신을 소달구지에 실어 고향에 묻어 다오 ― 성혼, 「묘지(墓誌)」
10 벼슬에는 뜻을 끊고 농사에 마음을 기울였다 ― 송남수, 「자지문(自誌文)」
11 느긋하고 편안하게 내 명대로 살았다 ― 홍가신, 「자명(自銘)」
12 나 홀로 나를 알 뿐 ― 권기, 「자지(自誌)」
13 죽은 뒤에나 그만두리라 ― 이준, 「자명(自銘)」
14 담백하고 고요하게 지조를 지켰노라 ― 김상용, 「자술묘명(自述墓銘)」
15 그 비루함이 나를 더럽히지나 않을까 염려했다 ― 윤민헌, 「태비자지(苔扉自誌)」
16 슬픔과 탄식 없이 편안한 삶을 누렸도다 ― 한명욱, 「묘갈(墓碣)」
17 뜻은 원대하지만 명이 짧으니 운명이로다 ― 금각, 「자지(自誌)」
18 대부가 직분을 유기했다면 장사 지낼 때 사(士)의 예로 한다 ― 이식, 「택구거사자서(澤癯居士自敍)」
19 인간의 모든 계책은 그림자 잡으려는 것과 같다 ― 김응조, 「학사모옹자명병서(鶴沙耄翁自銘幷序)」
20 서른을 넘긴 뒤로는 다시는 점을 치지 않았다 ― 박미, 「자지(自誌)」
21 허물을 줄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 허목, 「자명비(自銘碑)」
22 몸이 한가롭기에 일 또한 한가롭다 ― 이신하, 「자지문(自誌文)」
23 마음으로 항복하지 않겠다 ― 박세당, 「서계초수묘표(西溪樵叟墓表)」
24 이것이 거사가 반생 동안 겪은 영욕이다 ― 이선, 「지호거사자지(芝湖居士 自誌)」
25 뒤뚱뒤뚱 넘어지고 큰 재앙이 이어져 놀라웠을 뿐 ― 유명천, 「퇴당옹자명(退堂翁自銘)」
26 노새 타고 술병 들고 나가서 돌아오는 것을 잊었다 ― 남학명, 「회은옹자서묘지(晦隱翁自序墓誌)」
27 감암에서 야위는 것이 마땅하다 ― 이재, 「자명(自銘)」
28 선영 아닌 딴 곳에 장사 지낸다면 눈을 감지 못하리라 ― 김주신, 「수장자지(壽葬自誌)」
29 이처럼 살다가 이처럼 죽어, 태허로 돌아가니 무어 걸릴 것 있으랴 ― 박필주, 「자지(自誌)」
30 입조한 30년 동안 좌우에서 돕는 자가 없었다 ― 이의현, 「자지(自誌)」
31 슬픈 일이 반이고 웃을 일이 반이다 ― 권섭, 「자술묘명(自述墓銘)」
32 허물과 모욕이 산처럼 쌓여 있다 ― 유척기, 「미음노인자명(渼陰老人自銘)」
33 뼈야 썩어도 좋다 ― 김광수, 「상고자김광수생광지(尙古子金光遂生壙誌)」
34 화합을 주장하던 내가 세상의 죄인이 되었다니 ― 원경하, 「자표(自表)」
35 재주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 노닐었다 ― 남유용, 「자지(自誌)」
36 천명을 즐기거늘 무엇을 의심하랴 ― 조림, 「자명병서(自銘幷序)」
37 어리석다는 평은 정말 말 그대로가 아니랴 ― 임희성, 「재간노인자명병서(在澗老人自銘幷序)」
38 으레 그러려니 하며 웃어넘겼다 ― 강세황, 「표옹자지(豹翁自誌)」
39 나 죽은 뒤에 큰 비석을 세우지 말라 ― 서명응, 「자표(自表)」
40 사람됨이 보통 사람보다 못했다 ― 정일상, 「자표(自表)」
41 나 역시 세속적인 것을 면치 못했다 ― 조경, 「자명(自銘)」
42 갈아도 닳지 않는 석우가 있다 ― 오재순, 「석우명(石友銘)」
43 행적이 우뚝하고 마음이 허허로워 탕탕한 사람이 아닌가 ― 김종수, 「자표(自表)」
44 기쁨과 슬픔을 헛되이 쓰려 하지 않았다 ― 유언호, 「자지(自誌)」
45 깨닫고 보니 죽음이 가깝다 ― 유한준, 「저수자명(著叟自銘)」
46 썩은 흙과 함께 스러지리라 ― 이만수, 「자지명(自誌銘)」
47 이름이나 자취나 모두 스러지게 하련다 ― 신작, 「자서전(自敍傳)」
48 나라의 은혜를 갚으려면 먼저 제 몸을 지켜야 한다 ― 남공철, 「사영거사자지(思潁居士自誌)」
49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고 곱게 다듬으려 했다 ― 정약용,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광중본(壙中本)
50 산다는 것이 이처럼 낭비일 뿐이란 말인가 ― 서유구, 「오비거사생광자표(五費居士生壙自表)」
51 올해의 운이 가 버렸구나 ― 서기수, 「자표(自表)」
52 전형이 여기서 인몰될까 두렵다 ― 유정주, 「자지(自誌)」
53 남들은 나를 늙은 농사꾼으로 대해 주지 않는다 ― 이유원, 「자갈명(自碣銘)」
54 백 세대 뒤에라도 옹의 실질을 알리라 ― 김평묵, 「중암노옹자지명병서(重庵老翁自誌銘幷序)」
55 문을 닫아걸고 의리를 지켰다 ― 전우, 「자지(自誌)」
56 나라가 망하자 사흘 동안 흰옷을 입고 슬픔을 표했다 ― 김택영, 「자지(自誌)」
57 행적의 글을 스스로 지어 후손에게 밝힌다 ― 유원성, 「모옹자명(帽翁自銘)」
58 일본의 신민이 될 수는 없소 ― 이건승, 「경재거사자지(耕齋居士自誌)」
보론 자찬묘비ㆍ묘지와 자찬만시
원문
참고 문헌
“죽음에 대처하기 어렵다.(處死者難)” 사마천 『사기』의 말이다. 동양의 현자들은 죽음이 나를 무로 이끈다는 사실에 직면했기에, 그에 대한 담론을 펼치며 삶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고는 했다. 죽음이 가져올 내 존재의 무화(無化)를 극복하는 강력한 기획이 바로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쓰는 일이다. 이 책 『내면기행』은 한문학자 심경호 교수의 안내를 따라 58편의 자찬묘비(自撰墓碑)를 읽는다. 고려 시대의 조촐한 비석에서 조선의 대학자가 극구 단순하게 남긴 묘비를 거쳐 구한말 이국의 땅에 묻힌 지식인의 묘지까지, 옛사람의 죽음과 삶을 읽는 일은 곧 나의 죽음, 나의 삶을 깊이 생각하는 일이 된다.
광대한 학문 세계와 깊이 있는 번역으로 정평이 난
한문학자 심경호 교수의 주저 『내면기행』
영어, 독일어, 중국어로 번역 출간 예정
광대무변한 동양고전의 엄밀한 연구와 탁월한 번역으로 정평이 있는 한문학자 심경호 고려대 교수의 『내면기행』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한문학 연구의 기초를 수립한 『한국 한문기초학사』(전 3권)에서 동양 고전의 정수를 풀이한 『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논어』(전 3권), 명나라 말의 문호 원굉도의 전집을 한중일 최초로 역주한 『역주 원중랑집』(전 10권)까지 저자의 저·역서는 70여 종을 헤아린다. 그중에서도 이 책 『내면기행』은 주저로 꼽히는 ‘기행’ 연작의 첫째 권으로, 2010년 우호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영어, 독일어, 중국어로 번역 출간을 앞두고 10년 만에 펴내는 개정증보판에는 학문의 원숙기에 접어든 저자의 공력이 온축되어 있다.
김시습이라는 비범한 개인의 생애와 사상을 탐구한 『김시습 평전』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심경호 교수는 역사 인물을 서술하는 방법론에 오래 천착해 왔다. 사적의 나열에 그치지도, 픽션에 빠지지도 않기 위해 객관적 검증과 주관적 논평을 종합하는 평전 서술의 예를 보여 주는 『내면기행』은 곧 58편의 자찬묘비·묘지와 함께 읽는 58인의 인물 열전이다. 개정판에서는 작가의 생년 기준으로 연대순 배치해 고려에서 조선 말까지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한 사람이 어떠한 정치적 행동을 하고 어떠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권기, 유명천, 유정주, 전우, 유원성 등의 자찬묘비가 새로 소개되며, 근세 이전 자서전적 글쓰기의 흐름에 대해 서술한 보론은 저자의 최근 연구 성과를 반영했다. 민음사에서 새로 선보이는 본문 디자인은 독서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서체의 크기와 판면을 세심하게 만들었으며 침상에서나 여행길에서나 동반할 수 있도록 간소하게 장정했다.
“근심과 즐거움 다하고
모욕과 칭송도 없어지고
남은 것은 흙뿐”
죽음에 대면하여 자신의 삶을 써 내려간
자찬묘비(自撰墓碑)ㆍ묘지(墓誌)의 세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버나드 쇼의 묘지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구절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는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 일상 속에 묻혀 있던 우리가 문득 삶에 대해, 혹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묘비명들이다.
두 서양 작가의 묘비명이 20세기에 쓰였다면,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짓는 전통은 동양에서 실로 20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동양의 현자들은 간단하게 달관한 것이 아니다. 죽음 뒤의 구원보다 죽음 자체에 직면했기에, 그 공허와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사생(死生)의 의미를 깊이 성찰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물음을 던진 글쓰기가 살아 있으면서 자기의 묘비를 미리 짓는 자찬묘비다. 자찬묘비·묘지 연구의 권위자인 심경호 교수는 이름 없는 선비에서 이황·정약용·서유구 등 한국의 근대 이전 지식인들이 남긴 58편의 묘지명을 한 편씩 읽으며 옛사람의 내면세계를 탐사한다.
고백의 기술이 전승된 서양과 달리 근대 이전 동양의 자찬묘비·묘지에는 숨은 욕망, 죄의 참회, 마음속 비밀 등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며 적는 글이기에 가문과 이념에 파묻히지 않고, 그 순간 그 시대에 종속되지 않고 내면을 비교적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언설의 장이 열린다. 찬찬한 문헌 고증의 바탕 위에서 문면 속에 담긴 옛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저자를 따라가면 하루하루 외면했던 타인의 죽음,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가운데 삶의 의미가 되찾아진다.
우리는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곧바로 세간과 수작한다. 일상의 삶을 달가워하면서 이 세계가 결함계라는 사실을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생사의 문제가 중대하다는 점을 환기하고 섣달그믐이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는 어디에서 왔고 또 어느 곳으로 가는 것일까 하는 물음에 맞닥뜨리게 된다.
한국의 근대 이전 지식인들도 영원한 것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번민했으며, 바로 그 어둠 속에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빛을 찾아내어 죽음으로부터 살아 돌아왔다. 슬픔이 저며 오기도 했지만, 음울함 속에서 죽어 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선인들이 자기의 죽음을 예상하면서 쓴 묘비와 묘지에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들이 담겨 있다. ─ 「책을 엮으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