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3
원제 Borges oral
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옮김 송병선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8년 1월 31일
ISBN: 978-89-374-3651-2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2x225 · 308쪽
가격: 18,000원
시리즈: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3
분야 외국 문학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출간
픽션과는 다른 매력의, 인간적인 보르헤스를 만나다
▶ 의심할 것 없이 현대의 가장 뛰어난 남아메리카 작가 ―《뉴욕 헤럴드 트리뷴》
▶ 보르헤스의 작품들을 처음 읽었을 때 마치 경이로운 현관에 서 있는 것 같았는데 둘러보니 집이 없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소설가)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논픽션 전집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1994년에 첫 출간된 보르헤스 전집이 픽션 모음집이었다면 이번 전집은 보르헤스가 발표했던 논픽션을 모았다. 올 하반기까지 총 7권으로 완간을 계획하고 있으며 상반기에 1권부터 3권까지 출간되었다.
보르헤스는 생전에 수천 쪽에 달하는 에세이를 남겼다. 우리에게 픽션으로 잘 알려진 것과 달리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산문 작가로도 명성을 떨쳤으며 당대 작가의 전기, 철학 사상, 아르헨티나의 탱고, 민속학, 국가 정치 및 문화, 리뷰, 비평, 서문, 강의 등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산문을 남겼다. 전 세계에서 독립적이고 탁월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그의 논픽션이 국내에 전집으로 완역되어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픽션이나 시의 장르와 달리 다양한 산문 속에서 또 다른 인간적인 매력을 발하는 보르헤스를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은 그동안 보르헤스를 대중들에게 꾸준히 소개해 온 송병선 교수를 필두로 스페인어에 정통한 교수들이 파트를 나누어 원문의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보르헤스를 충실히 살려 냈으며, 표지에서는 미로와 거울, 무한한 반복 등 보르헤스의 핵심 주제를 담으면서도 현대적인 가치를 드러내는 일러스트로 21세기 새로운 보르헤스를 표현해 냈다. 이 논픽션 전집을 통해 보르헤스 문학의 시원을 찾아 지적 탐색을 떠나 보자. 전방위로 뻗어 나가는 보르헤스의 격렬한 호기심과 전 작품을 관통하는 방대한 지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 차례
1부 말하는 보르헤스
서문 9
책 11
불멸 28
에마누엘 스베덴보리 47
탐정 소설 66
시간 85
2부 7일 밤
첫째 밤 – 『신곡』 105
둘째 밤- 악몽 136
셋째 밤-『천하루 밤의 이야기』 161
넷째 밤- 불교 186
다섯째 밤-시 212
여섯째 밤- 카발라 238
일곱째 밤-실명 259
후기 284
작품 해설 293
작가 연보 301
■ 왜 지금 보르헤스 논픽션인가?
보르헤스는 1980년대 말 국내에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단편소설집 『픽션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꼽히지만, ‘어려운 작가’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었다. 2000년대 시작된 ‘인문학 다이제스트’ 열풍에서도 한 발짝 빗겨 서 있던 신비의 거장, 보르헤스. 그를 쉽게 읽고자 하는 독자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진리와 중심을 부정하는 보르헤스의 사유는 한 문장으로 수렴될 수 없었고 그의 언어에 주석을 달면 달수록 옥상옥(屋上屋)이 되는 현상을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일생을 표류하면서 살았고, 조언할 말은 한마디도 없다.’
만년의 보르헤스에게 젊은이들을 위해 조언을 한마디 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시대의 멘토가 되기를 거부했던 자유경의 목소리는 어떻게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힌트를 준다.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은 그런 의미에서 보르헤스를 만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장 유용한 지도가 될 것이다. 한 번쯤 『픽션들』, 『알레프』를 펼쳐 들었으나 복잡한 표식과 난해한 상징에 완독을 포기했던 독자들이라면, 먼저 논픽션을 만나 보자. 청년 보르헤스의 사유가 태동하는 시기부터 지적 자만심을 숨기지 못하는 패기만만한 장년기를 지나 자신만의 소우주를 탄생시키는 완숙기까지, 그의 모든 여정을 담았다. 이 사유의 지도를 통해, 픽션 속 모든 장애물은 보르헤스의 미학적 토대 위에 세워진 눈부신 랜드마크였음이 드러난다.
“가령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에서 보르헤스는 “거울과 부권(父權)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분명하게 그런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에 대한 보르헤스의 개인적인 설명을 ‘7일 밤’의 「악몽」에서 찾을 수 있고, 왜 그가 그토록 악몽이나 꿈 혹은 거울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 3 『말하는 보르헤스』 작품 해설 중에서
그동안 소수 독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보르헤스. 그러나 이제는 당신도, 이제껏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풍부한 상징과 형형한 의미의 편린을 홀로 목격하는 ‘보르헤스적 경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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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의 보르헤스를 뜨겁게 달군 매혹적인 주제들,
도서관 같은 방대한 지식과 깊은 사유가 빛나는 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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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육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1977년, 1978년 두 강연의 기록
1부 「말하는 보르헤스」는 벨그라노 대학에서 1978년에 특강한 ‘책’, ‘불멸’, ‘스베덴보리’, ‘탐정소설’, ‘시간’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2부 「7일 밤」은 1977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콜리세오 극장에서 강연한 ‘『신곡』’, ‘악몽’, ‘『천하루 밤의 이야기』’, ‘불교’, ‘시’, ‘카발라’, ‘실명’이라는 일곱 가지의 주제를 묶었다.
이 열두 가지는 전 생애에 걸쳐 보르헤스를 매료시킨, 또 그의 작품 전체를 지배했던 커다란 주제들이다. 그는 「불멸」에서 “누군가가 적을 사랑하고자 할 때마다 불멸의 그리스도가 나타납니다. 그 순간 그는 그리스도입니다. 단테나 셰익스피어의 시구를 되뇔 때마다 우리는 어느 정도 그 시구를 창조했던 순간의 셰익스피어나 단테가 됩니다.”라며 오랜 종교적 사유와 고전을 빗대어 불멸의 가능성을 정리하고, 「탐정소설」에서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변변찮으나마 고전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탐정 소설입니다.”라며 장르의 개척자 애드거 앨런 포와 탐정 소설 장르가 왜 훌륭한지를 조목조목 펼친다. 「시간」에서는 성 바울의 “나는 날마다 죽음과 마주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시간의 형이상학적 문제를 탐구하고, 「시」에서는 “아름다움은 도처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 삶의 순간마다 존재할 것입니다.”라며 형이상학이 아닌 물리적인 아름다움으로서 그가 느끼는 문학의 면면을 함께 읽는다. 그는 강연을 통해 자신의 작품 저변에 깔려 있는 핵심적인 주제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보다 명징하게 설명한다. 역자 송병선은 “보르헤스의 강연집은 헤아릴 수 없는 문학적·역사적 가치가 있는 증언일 뿐만 아니라 보르헤스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문서”라고 이 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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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영원한 사서,
책은 그의 행복 그 자체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립 도서관 사서부터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까지, 도서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보르헤스의 인생은 책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천국을 도서관으로 상상하기도 했던 그답게 첫 번째 강연 주제 역시 ‘책’이다. 그는 책을 읽는 것은 행복의 한 형태라며 “오래된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이 쓰인 날부터 우리가 읽는 날까지 흘러간 모든 시간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방대한 분량의 독서를 통해 얻은 경험은 그의 진짜 삶과 다름없었다.
그는 자신의 악몽이 항상 미로나 거울로 나타나는 것을 고백하며 문학사에 길이 남을, 꿈에 관한 미학적 표현들을 들려준다. 『신곡』의 장면들을 소개하며 문학의 절정과 감동을 표현한다. 『천하루 밤의 이야기』로 시간의 영원성을 들여다본다. 제자들에게 비평을 읽지 말고 작가의 책을 직접 읽으라고 한다. 그래야만 그 순간 살아 숨 쉬는 원작자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강연자로서의 보르헤스는 자신의 내밀한 사유들을 쉽고 흥미롭게 공유하기에 그의 작품보다 대중들과 한층 가깝다. 그는 책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지혜를 발견하려는 욕망’ 자체를 예찬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행복의 한 가지 방법으로서 책의 경이로움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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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을 상실한 말년의 보르헤스,
불멸이 아니라 죽음을 원했던 20세기 거장
“나의 경우는 천천히 해가 지듯이, 내가 세상을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었습니다.” 유전적인 이유로 전 생애에 걸쳐 서서히 시력을 잃었던 보르헤스. 이 두 차례의 강연을 할 때는 거의 실명한 상태였기에 참고 문헌이나 인용문까지 모두 암기하여 강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실명 또한 작가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 심지어는 수치와 장애와 불행을 포함한 모든 것은 점토로서, 즉 예술의 재료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받아들여 이용해야 합니다.” “만일 눈이 먼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는 구원받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계속 보르헤스로 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라며 불멸을 거부했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인의 가슴속에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작가로서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 이 책은 그동안 난해하게만 보였던 보르헤스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초석이 된다. 그의 육성과 숨결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인간이 만든 다양한 도구 중에서 가장 놀랍고 굉장한 것은 당연히 책입니다. 그 나머지는 인간의 육체를 확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력을 확장한 것이며 전화는 목소리를 확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쟁기와 칼은 팔을 확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책은 다릅니다. 책은 기억과 상상을 확장한 것입니다.” (11쪽)
인류 최고의 영혼들이 마법에 걸린 채로 갇혀 있으며, 벙어리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를 기다립니다. 그 영혼들은 우리가 책을 펼쳐야만 깨어납니다. (24쪽)
우리의 의식은 이 상태에서 저 상태로 계속 지나가고 있으며, 그것이 시간입니다. 즉 끊임없는 연속체라는 것입니다. (87쪽)
존재 전체가 한꺼번에 주어진다면 우리는 참고 견딜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모든 것이 주어지지만, 점진적으로 주어집니다. (90쪽)
거울과 미로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두 개의 거울을 마주 보게만 해도 미로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147쪽)
나는 무언가를 쓸 때면, 그 무엇이 예전부터 이미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218쪽)
내게 있어서 아름다움은 물리적인 감각입니다. 온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평가의 결과가 아니며, 특정한 법칙을 통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을 느끼거나, 느끼지 않을 뿐입니다. (2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