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가게에서 똑같은 물건을 사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책과 영화를 즐길 수밖에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무미건조해질까?
교토 이치조지 게이분샤 전 점장, 서점 세이코샤 점주
호리베 아쓰시가 전하는 ‘작은 가게’의 참된 가치!
교토 이치조지를 아시나요?
사람과 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작은 가게’가 만들어 낸 별세계
교토 역에서 JR나라 선을 타고 한 정거장 이동해 도후쿠지 역에 내린다. 거기서 게한 전철로 갈아타고 종점인 데마치야나기 역으로. 그곳에서 다시 구라마, 오하라 방면으로 지상을 달리는 에잔 전철로 넘어간 뒤 다시 세 정거장을 가면 이치조지라는 동네가 나온다. 가와라마치도리나 기온 등 교토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소위 ‘번화가’에서 떨어진 데다 다른 도시에서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이 동네에 내가 일하는 서점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이 있다.―본문에서
명승고적이 밀집한 교토 중심가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작은 동네, 교통편도 마땅하지 않고 두어 번 전철을 갈아타야지만 겨우 도착할 수 있는 한적한 마을 이치조지.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이곳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교토 대학교 학생과 저렴한 집을 찾아 몰려든 ‘현지인’을 제외하면 관광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이 동네에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것일까? 바로 동네 서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 덕분이다. 비단 일본의 관심뿐 아니라, 유명 언론 매체 《가디언》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서점 10’에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의 이름을 올리면서, 가히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는 오늘날의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을 만들어 낸 전(前) 점장이자 현재 교토의 새로운 명소로 급부상한 서점 세이코샤의 점주 호리베 아쓰시가 대형 서점, 온라인 서점의 거센 공세 속에서 작은 동네 서점을 보존하고, 더 나아가서는 크게 키워 낸 치열한 이력과 노하우, 그 의의와 가치를 한데 생생하게 엮어 낸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단순히 가게 하나를 살리는 데에만 집착하지 않고, 어째서 마을과 거리에 저마다 개성을 지닌 ‘작은 가게’가 존재해야만 하는지 자문하며,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을 동네와 함께 호흡하고 생장하는 ‘소통의 구심점(서점에 국한되지 않고 갤러리이자 생활관, 휴게실이자 만남의 장소)’으로 성장시켰다. 따라서 이 책에는 동네 서점뿐 아니라, 천년 고도(古都) 교토의 독특한 정취를 빚어내는 ‘작은 가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교토 이치조지라는 작은 별세계가 우리에게 일러 주는 상업의 참된 가치, 거리와 사람이 공생할 수 길은 과연 무엇일까.
때로는 고집스럽고, 가끔씩 별스러운
교토의 ‘작은 가게’에서 배우는 사고파는 행위의 본질
최근 몇 년 사이 동네 서점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경제 뉴스의 통계 자료나 업계 소식지의 기사, 일상적이고 사소한 대화가 모두 그렇다고 말해 준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외출할 때마다 그런 변화를 실감한다. 결국 동네 서점은 거대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 인터넷에 밀려 머지않아 사라지고 말 것인가? 서점이 살아남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이 책을 통해 사양 산업이라 불리는 동네 서점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비합리적인 ‘기호품’을 판매하는 가게의 존재 의의를 다시 확인해 보고자 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바뀌어 버리는 언론의 최신 유행을 좇기보다는 내가 신뢰하는 개인 점포의 현장을 재발견함으로써 동네 서점이 생존할 수 있는 단서를 찾고 싶다. -본문에서
독서 문화가 뿌리 깊은 일본에서조차 출판과 서점업은 일종의 사양 산업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동네 서점은 깎아지른 절벽처럼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으며, 거의 모든 종류의 소비와 유통이 대기업과 아마존 같은 온라인 숍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실정이다. 단지 동네 서점뿐이 아니다. 한때 마을과 거리를 가득 채웠던, 골목골목 자리해 있던 ‘작은 가게들’도 하나둘 사라져 가고 있다. ‘가성비 만능주의 시대’에 할인을 기대하기 어렵고, 포인트 적립 따위도 바랄 수 없는 ‘작은 가게’가 도태되어 가는 것은 아마 당연한 순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 호리베 아쓰시는 이러한 흐름이 결코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지 않으리라고 의연하게 예측한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가게에서 같은 물건을 구입하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책과 영화를 즐길 수밖에 없다면 우리 세계는 얼마나 협소하고, 또 무미건조해지겠는가? 그뿐 아니라 도시와 거리의 풍경도 전부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변할 테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감수성 또한 천편일률적으로 메말라 갈 것이다.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통제되고 암울한 미래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서점이나 출판업계의 경우, 인터넷이나 전자 서적 등의 새로운 매체가 몰고 온 영향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 하지만 여태 이어 온 독서, 출판 같은 행위가 우리 세대에서 극적으로 변화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집트 나일 강에서 생겨나 5000년 동안 이어진 책의 역사가 몇 년 사이에 송두리째 디지털화하리라는 예측이야말로 ‘개인’의 시선에서 본 유행에 불과하지 않을까? 문화는 유행처럼 개인의 성급한 시간 속에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며,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도 적잖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생활의 일부인 기호품, 거리의 연장으로서의 공간은 어떤 의미에서는 합리성과 양립하지 않는다. 서점과 출판업계도 마찬가지다. 책은 상품이지만 문화이기도 하다.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기에 문화는 계승된다. 광고로 도배하느라 두툼해진 잡지의 수명을 늘리고 싶다고 해서 호화로운 부록을 붙이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출판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라면 ‘생활의 일부’로서 책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어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서점의 입장에서 잡지와 소설, 사진집과 아트 북을 바라보는 ‘재미’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본문에서
“나는 샛길이 많은 사회일수록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무라카미 하루키) 이젠 세계적인 작가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학을 졸업한 후 취직도 하지 않고, 학생 신분으로 결혼한 부인의 친정에 얹혀살았다. 그러다 얼마 안 되는 저축을 밑천 삼아 재즈 바를 개업했다. 땅값이 요즘 도쿄만큼 비쌌다면 취업 경험도 없는 청년이 가게를 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돈도 없고 취직도 하기 싫은 젊은이가 정부나 세금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샛길이 점차 막히고 있는 듯싶다. 그런 가운데 DBC나 ‘나미이타 앨리’에 발을 들여놓으면, 이런 삶의 방식 또는 가게 운영 방식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동경이나 존경심을 느낄 거라는 말이 아니다. ‘어처구니없다.’라며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무언가 편안함을 느끼게 되리라는 의미다. 가게라는 공간은 그저 번성하고 유명해지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장소를 개방하고 그곳에 모이는 손님에게 무언가 길을 제시하는 것도 가게가 제공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다.-본문에서
“요즘은 ‘뭔가 용무를 보러’가 아니라 찻집 그 자체를 보러 오는 사람이 많아요. 맛집을 소개하는 사이트가 유행하잖아요? 거기도 그렇고 블로그나 트위터 같은 데 올라온 댓글도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대개 어떤 장소를 정복이라도 하듯이 목적지를 찾아서 한 번 방문하면 그걸로 자기 감상을 완결시킨단 말이죠. 맘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건 그건 자기 자유지만 그걸 세상에 공표하고, 나아가 그 감상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해당 가게를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건 좀 그래요.” -본문에서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에는 저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 수집한 고집스럽고 별스러운 ‘작은 가게’의 면면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시대에 역행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 ‘사고파는 행위’의 본질을 가장 완벽히 반영하고 있는 기묘한 찻집(혹은 앤티크 숍) 마이고부터 대형 업체나 모든 물건을 무작정 구비해 둔 온라인 숍이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개성적인 점주의 독특한 큐레이션이 고객을 가르치고, 또 그들에게 발견과 깨달음의 기쁨을 선사하는 서점 산가쓰쇼보와 워크숍 레코드, 마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마음 편히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나미이타 앨리, 하루의 피로를 싹 잊게 해 주고 다시 내일을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삶의 배경’이자 ‘중계 지점’으로서의 찻집 로쿠요샤에 이르기까지, 이 책 속엔 우리가 익히 알면서도 ‘가성비’와 ‘빠른 유행만을 좇는 세태’ 탓에 잊어버린 상업의 진정한 가치와 ‘작은 가게’가 살아남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단서들이 총망라돼 있다. 또한 거리에 자생적인 ‘스토리’를 불어넣는 방법, 마을 그리고 사람과 상생하는 도시 건축에 관한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에는 저자 호리베 아쓰시가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을 새로이 일구어 내며 고민하고 연구한 바가 다양한 각도에서 잘 정리되어 있지만, 그 이상의 내용을 들려준다. 프랜차이즈나 대기업이 관리하는 매장과 달리 동네의 ‘작은 가게’는, 마치 산속에서 자라나는 식물처럼 마을 혹은 거리 생태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동네 서점’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에 관한 이야기는 곧 도시와 주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골목과 모든 ‘작은 가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거리 풍경도 하루가 다르게 삭막해지고 있다. 구멍가게조차 전부 특정 상표의 편의점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동네 서점’이라는 말이 낯설게 들릴 정도다.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에 담긴 저자의 목소리에, ‘작은 가게’의 존재 의의와 가치에 더욱 주목해야 할 때다.
들어가는 말
교토의 작은 가게 지도
1장 나의 거리, 나의 가게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과 이 거리의 지난날
게이분샤 이치조지 점 주변의 이모저모
칼럼 1 영화관이 없는 거리
2장 교토, 이곳에만 있는 작은 가게
거리도 가게를 만든다 ─ 돈후, 가케쇼보
칼럼 2 ‘카운터’의 관계성을 만드는 건축가
미래는 과거 속에 있다 ─ 마이고, 데마치 후타바
칼럼 3 가난한 자들의 교토
서점은 동네의 선생님이었다 ─ 산가쓰쇼보, 헌책 젠코도, 워크숍 레코드
칼럼 4 지루한 거리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스토리’
‘골목’이라는 이름의 샛길에서 ─ 나미이타 앨리, 데마치야나기 문화 센터
칼럼 5 서점의 일은 곧 거리 둘러보기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찻집 ─ 로쿠요샤 지하 지점
대담
개인 점포가 살아남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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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살아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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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실 | 2018.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