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끝나지 않을 노래로
슬픔을 품고 낱낱의 사물을 호명하는
김정환의 장시집, 김정환의 예술철학
편집자 리뷰
김정환 장시집 『소리 책력冊曆』이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한 편의 시가 한 권의 시집 으로 묶이는 ‘장시집’으로서의 시도는 ‘민음의 시’ 시리즈 사상 처음이다. 김정환이기에 가능한 도전이며, 『소리 책력』이기에 의미 있는 응전일 것이다. 이미 전작 『드러남과 드러냄』, 『거룩한 줄넘기』, 『유년의 시놉시스』 등으로 ‘장시’를 통한 시대의 성찰과 전망을 보여 주었던 시인이 있다. 그리고 그 시인 비로소 완성해 낸 1년의 노래이자 평생의 책력이 있다. 처음의 미래이자 슬픔의 다음인 시집, 『소리 책력』이 있다.
■ 홀로 있는 낱낱의 사물들
시집의 해설을 맡은 박수연 문학평론가의 선언대로 『소리 책력』은 시로 쓴 예술철학이다. 쉽게 가시화되거나 언어화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순환을 ‘책력’이라는 구성 안에 ‘소리’라는 형식으로 시인은 담아낸다. 하루, 한 달 그리고 한 해가 끝나면 다음 해가 시작되고 그다음의 해는 그 이전의 해가 끝나는 시간의 영향력을 올곧이 받는 것처럼, 『소리 책력』의 모든 시어는 서로가 서로를 순서에 상관없이 호명하며, 책력 안에 소리로서 놓인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처럼 반복되며 각자의 인생처럼 변형된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소리는 홀로 있는 낱낱의 사물이 된다. 개별적 존재를 소리를 통해 호명하는 것, 그것들을 이어 가는 것……. 그것이 김정환 시 세계의 요체이자, 『소리 책력』의 힘이다.
■ 품을 수 있는 슬픔, 품고 있는 미래
시인은 기나긴 시편의 마지막 문장으로 “품을 수 있는 것이 슬픔이다.”라는 명제를 남긴다. 11월에서 시작하여 12월에 마무리되는 이 독특한 책력에서, 독자가 얻는 한 줌의 계획표는 슬픔을 통과한 미래일 것이다. 슬픔을 통과했다고 하여 밝고 찬란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홀로 품어 깊어 가는 슬픔에 가깝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제대로 슬퍼하자는 것이다. 소리라는 형식의 음악은 끝내 ‘죽음’에 도달한다. 아름다운 음악은 단 하나의 음표도, 한 순간의 박자도 놓치지 않는다. 시인은 『소리 책력』을 통해 의식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언어의 연쇄 속에서 시간과 세월을 포착한다. 거기에서 사물들은 태어나고 죽는다. 죽음이 있고 슬픔이 있다. 슬픔, 그다음은 무엇인가? 시는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지만, 가끔 시는 모든 것을 대신하기도 한다. 『소리 책력』은 지난 세월의 슬픔을 대신 품어 아름다운 시집이다. 미래에서 온, 오래된 책력이다.
■ 추천의 말
『소리 책력』은 시로 쓴 예술철학이다. 낱낱의 사물을 탄생시키되 그것을 하나의 소리로 이어 가는 어려운 공력이 여기에 있다. 김정환의 시는 그러므로 하나의 단일성에서 시작하여 개별들의 흐름으로 이탈하는 과정을 거쳐 다시 출발의 양식으로 귀환하고 또 출발하는 언어 구성체의 특이한 실현이다.
-작품 해설에서│박수연(문학평론가)
■ 시 속에서
무명 씨도 미래의 처음이다.
라틴어 성경
소리 아닌 문구보다 새롭고 또 새로운
미래의 거처지. 그렇게 말하는 소리
책력이 있다.
-9쪽
사물이 사물 묘사다.
단 하나의 사물이 단 하나의 사물 묘사다.
어리굴젓도 목재 문도 죽은 생명이
명사로 다시 태어나는 언어 기쁨으로 몸을 떤다.
-52쪽
인간의 연민과 죽음이 다시 의인화하여 인간을
인간적인 슬픔으로 보챈다는 거, 우리가 그것을
인간의 불행이라고 부를 자격이 우리에게 없다.
우리는 슬픔으로 나름 고귀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가장 슬픈 것이 먹이사슬이건만
슬픔의 우리 속에 여전히, 아니 갈수록 참칭하는
인간밖에 없다.
-91쪽
죽음에 생각과 사실의 차이가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도 말하는 소리
비슷하지만 아니다. 죽음이 피아노 무덤과
다를 게 있겠느냐는 소리에서 온갖
부정(否定)이 씻겨 나간 소리의 피아노
무덤이 있다.
-106쪽
목차
소리 책력冊曆 9
작품 해설│박수연 115
이탈과 귀환
작가 소개
독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