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탁환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7년 11월 24일
ISBN: 978-89-374-4213-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7x188 · 400쪽
가격: 13,000원
시리즈: 소설 조선왕조실록 12
분야 한국 문학
발행일 2017년 12월 30일 | 최종 업데이트 2017년 12월 30일 | ISBN 978-89-374-4415-9 | 가격 9,100원
조선 중기, 바야흐로 필사본 소설의 시대
소설가로서의 김만중을 다시 만나다
소설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장희빈과 인현왕후로 대표되는
조선 중기, 당파 갈등으로 요동치는 세상에서
『사씨남정기』로 시작되는 작지만 커다란 질문
1 납치
2 신문(訊問)
3 곱사등이 스승
4 구운몽심고
5 역당
6 매매
7 재회
8 백능파
9 남채봉
10 사랑과 이별
11 먹구름을 움직이다
12 당신에게 소설은 어떤 존재인가
13 가여운 인간, 최척
14 타오르는 집
15 팔선녀가 수상하다
16 사라진 구름
17 이 소설을 보라
18 남쪽 숲에서 생긴 일
19 나의 소설은 나의 무기다
20 그녀를 붙잡는 법
21 결단
22 유언
23 야반도주
24 은혜를 원수로 갚는 법
25 잃어버린 책
26 모독은 없다
개정판 작가의 말
초판 작가의 말
해설 _송희복(문학평론가/진주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무엇이 소설인가
역사와 허구의 경계에서 힘 있는 서사를 만들어 온 김탁환의 수작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 민음사의 ‘소설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로 다시 출간되었다. 2002년 초판이 출간된 이후 15년 만에 새 옷을 입은 것으로, ‘소설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로는 2015년 『목격자들』이 출간된 이후 2년 만이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은 김탁환의 역사 소설 중에서 재미와 작품성을 두루 갖춘 웰메이드(well-maid)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역사 속 인물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자유자재로 다뤄 온 김탁환은 이 작품에서 장희빈과 서포 김만중을 이야기로 되살려 냈다. 한글 소설의 정점인 『사씨남정기』를 둘러싼 서포 김만중과 장희빈의 치열한 두뇌 싸움 속에서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성공적으로 곁들였다. 그러나 단순히 ‘웰메이드’라는 말로 설명하기엔 서포 김만중과 작품의 주인공인 이름 없는 매설가(소설가) 모독이 나누는 대화는 심오하면서도 진지하다.
김탁환은 작중에 등장하는 두 명의 소설가를 통해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다. 김탁환의 역사 소설을 집대성하는 중인 ‘소설 조선왕조실록 시리즈’에서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은 김탁환의 소설론과 창작론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귀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독자들에게는 수백 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소설가로서의 김만중과 소설가로서의 김탁환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는 귀한 독서의 경험이 될 것이다. 개정판에는 진주교대 국어교육과 송희복 교수의 해설을 더했다. 송희복 교수의 해설은『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에 담긴 문학적 진지함과 성취에 대한 성실한 논의가 독자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두드린다.
■소설 속에서 재현되는 조선 중기, 따뜻한 필사본의 시대
조선 중기는 곧 필사본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세책방과 한글 소설이 융성하던 시대였다. 이야기를 파는 사람이라는 뜻의 매설가(賣說家)는 즉 우리 시대의 소설가였고, 그가 이야기 한 편을 완성하여 세책방에 가져가면 그 원본을 밤새 필사하여 사람들끼리 돈을 주고 빌려 보았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에서 김탁환은 조선 중기의 한양 저잣거리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역사와 고전문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작품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김탁환은 작중에서 실제 숙종 시대에 인기 있던 한글 소설들의 제목을 거론하고, 작품 속에 친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설명을 곁들인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낯설고 어려웠던 고전문학 작품들을 즐거운 오락거리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고전소설에 대한 낯선 어려움 대신 흥미를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은 고전문학에 대한 한 편의 길라잡이다.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향연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에서 빠질 수 없는 매력은 역사의 다양한 인물들이 작품을 통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이미 익히 알려진 서포 김만중과 장희빈, 장희재부터 다소 낯선 인물인 졸수재 조성기까지 이야기 속으로 참전시킨다. 역사의 공백을 흥미로운 서사로 채워 나가며 자신이 창조해 낸 매력적인 인물들과 역사 속 실제 인물들의 합을 맞춘다. 역사책 속에서 딱딱한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인물들이 김탁환의 손을 거쳐 피가 흐르고 숨을 쉬는 생동감을 지니면서 이야기의 궤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역사가 실제 있었던 일의 사실을 명시한 과거의 기록이라면 소설은 실제로 그 인물들이 삶과 분투했던 현장성을 느끼게 한다. 김탁환의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소설을 읽는 그 순간 독자인 ‘나’는 그 시대와 인물들을 마치 눈앞에서 목격하는 듯한 생생함을 지니기 때문이다.
■소설가와 소설가의 진지한 대화
소설이란 무엇인가? 김탁환은 추리소설 방식의 이야기 전개 속에서 한순간도 이 질문을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작가 김탁환을 대신하여 이름 없는 소설가 모독이 서포 김만중과 졸수재 조성기와 같은 실제 역사 속 선배 소설가들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작법에서부터 소설이 지향해야 할 지점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은 스승과 제자의 대화록이 아닌 난상토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토론에 탐욕스러우면서도 눈 밝은 독자로 대표되는 여성 캐릭터 백능파와 장희빈이 등장하면서 더욱 질문을 중첩시킨다. 결국 『사씨남정기』를 둘러싼 이들의 생각과 행동은 곧 독자에게도 소설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 보는 사유의 광장을 제공한다. 외국의 고전소설이 아닌, 우리의 고전소설을 통해 생각해 보는 소설과 문학에 대한 사유는 그동안 넘어서지 못했던 사유의 한계를 넘어서는 계기가 된다.
■줄거리
젊은 매설가(소설가) 모독은 한때 졸수재 조성기라는 유명한 매설가의 문하에서 소설 쓰는 법을 공부했지만, 스승이 죽은 뒤로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인현왕후를 쫓아내고 왕비 자리에 오른 장옥정이 그를 은밀히 궁으로 불러들인다. 장옥정은 모독에게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집필 중인 소설을 훔쳐오라고 명한다. 한때 존경하던 어르신이었으나 목숨의 위협 앞에서 모독은 장옥정의 명을 받아 서포가 있다는 남해로 내려간다. 그러나 남해에는 김만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성기 아래서 함께 수학하며 결혼을 약속했지만, 스승의 작품을 훔쳐 도망쳐 버린 백능파가 김만중의 곁에 있었다. 『사씨남정기』를 손에 넣기 위한 배신과 애증의 스토리 위로 문학과 소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뒤따른다.
■책 속에서
“소설이란 것은 매설가가 표 나게 드러내는 것보다 그 밑으로 흐르는 바람과 고통, 슬픔과 한숨의 흔적이 더 재미있는 법이옵니다. 서포는 성진이 도를 깨닫도록 양소유의 삶을 끼워 넣었다고 생각하겠으나 『구운몽』에는 용상을 차지하고픈 서포의 꿈이 녹아 있사옵니다.”
―223쪽“자네 말이 옳으이. 소설 한 편 잘 지었다고 현실이 바뀌지는 않아. 하지만 어떤 조짐이나 버팀목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최척의 아픔을 안타까워한 이들이라면 전쟁의 참혹함을 영원히 못 잊을 것 같아. 자네 소설은 대부분 불행하게 끝나더군. 행복을 말할 때도 무척 주저하고 조심스러워. 그래, 자네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네. 우리네 삶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많을지도 몰라. 자네처럼 그 고통을 응시하고 품에 안으려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현곡처럼 그 고통을 작은 기쁨으로 채우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보네.” ―203쪽
모독은 허리에 두르고 있던 서책을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
“소생이 이 소설을 짓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김만중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알 수 없는 소릴 하는군. 자네가 소설을 짓는데 어찌하여 내 허락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대감이십니다.”
“무엇이라고? 내가 주인공이라고?” ―258쪽“내 생전에 그날을 맞을 수 없을지도 모르네. 소설이란 원래 천천히 오랫동안 흘러드는 법이니까. 허나 한번 독자들 가슴에 닿으면 결코 지워지지 않지. 저도 모르게 소설의 분위기와 가르침에 젖어든다네. 상소를 쓸 수도 있지만 그건 강력하게 항의했다는 기분만 낼 뿐 전혀 효과적이지 못해. 사라진 듯하다가도 나타나고 사라진 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는 소설이야말로 내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값진 흔적인 듯하네.”―280쪽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고? 꼭 마지막 유언 같구나. 죽어서도 잊혀지기 싫다는 것인가? 영원히 잊혀지지 않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인가? 슬픔으로 가득 찬 제목이구나. 자신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나를 원망하는 제목이구나. 허나 어쩌랴. 죽은 자는 잊혀지는 것이 운명인 것을. 꼭 사람만이 아니다. 널리 읽히던 소설도 언젠가는 잊혀지기 마련이니까. 잊혀지는 것을 서러워할 까닭이 없지. ―358쪽
■작가의 말
그렇게 잊힌 고전소설들을 내 소설로 부활시켜 보자는 욕심을 냈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은 그 욕심의 첫걸음이다. 그리고 그 걸음은 『방각본 살인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으로 이어졌다. 특히 소설에 열광한 여성 독자들의 모습을 충실히 담으려 했다. 이 땅에서 소설은 과연 언제부터 어떻게 흘러왔는가에 대한 탐색은 내가 소설가로 살아가는 동안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