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꿨던 미래와는 어긋난 오늘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들어 낸 ‘가족 드라마’의 분수령
아직 철들지 않은 대기만성형 아빠 료타, 조금 더 안정적인 인생을 바라는 엄마 쿄코, 어른들의 세상을 빠르게 배워 가는 아들 신고 그리고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할머니 도시코……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알 수 없는 이들 가족의 내일은, 태풍이 찾아온 오늘보다 더 나을 수 있을까?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분명 관객 가슴에 큰 여운을 남길 것이다. -《뉴욕 타임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관객을 놀랍도록 단순한 방법으로 부드럽게 설득할 줄 아는 감독이다. -《할리우드 리포터》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대단히 우아한 작품이다. -《월스트리트 저널》
장엄한 깊이를 지닌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인 가족 이야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흐리고 때때로 소나기, 역려과객! -박평식
체념으로 시작하는 가족의 이해. -허남웅
수채화를 그리다 가끔 팔레트를 씻듯, 인생도. -김혜리
2013년 66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심사위원상(Prix du Jury)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소설 『태풍이 지나가고』가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이 작품은 저자 스스로 자신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海よりもまだ深く)」(2016)를 소설화한 것인데, 지금까지 여러 차례 자기 영화를 소설화해 오며 문학적 역량을 과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또 다른 역작이자 전문 작가 사노 아키라와 함께 빚어낸 새로운 결실이다.
동명 소설의 바탕이 된 「태풍이 지나가고」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1번째 장편 영화이자 6번째 칸 국제 영화제 진출작으로 공식 상영 직후 관중으로부터 기립 박수를 이끌어 냈다. 더불어 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가족 드라마’의 분수령(“「태풍이 지나가고」를 완성한 다음엔 당분간 가족 영화를 찍지 않겠다.”)일 뿐 아니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중 최고의 완성도를 지녔다고 평가받는 「걸어도 걸어도」(이 작품 또한 같은 제목으로 소설화됐다.)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작품이다. 그래서 「걸어도 걸어도」에 등장했던 료타와 도시코 모자(母子)가 다시금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아들과 어머니 관계로 그려지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두 작품 사이엔 어떠한 연관성도, 인과관계도 존재하지 않지만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부부 등 얽히고설킨 가족 관계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종다양한 드라마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섬세하게 드러내 보여 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자신이 밝혔듯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그리고 소설 『태풍이 지나가고』는 “모두가 자신이 바랐던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라는, 지극히 통렬하지만 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쯤 직면하게 되는 삶의 진실을 따뜻하고 슬픈 음성으로 들려준다. 매서운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맑게 갠 하늘일지, 바람에 으스러진 쓸쓸한 풍경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처럼.
꿈꿔 온 미래와는 조금 다른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태풍이 불어닥친 어느 여름밤에 일어난 가슴 따뜻한 가족 드라마
“죽고 없어진 다음에는, 아무리 생각해 봤자 늦어. 눈앞에 있을 때 잘 저거 해야지.”
“알고 있어요.”
“왜 남자들은 지금을 사랑하지 못하는 건지…….”라며 도시코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말했다.
현실이 너무나도 하찮은 탓이라고 료타는 생각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언제까지고 잃어버린 걸 찾아다니고, 이루지도 못할 꿈이나 좇고……. 그래 가지곤 하루하루 즐거울 수가 없잖아?”
“그런 건가요.”라며 료타는 시치미를 떼며 대꾸한다. 아버지가 아닌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행복이라는 건 말이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잡히지 않는 거야.”
어머니의 말에 료타는 눈을 들었다. 슬픈 말이지만,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ㅡ본문에서
지금은 폐지돼 버린 시마오 도시오 상(작중에 언급되는 가상의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시노다 료타는 15년째 글을 못 쓰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쓴답시고 제대로 된 직장은커녕 무슨 일이든 진득하게 처리해 내지 못하는 료타는, 현재 소설에 쓸 소재를 조사한다는 구실로 수상한 사람들의 미심쩍은 의뢰만 도맡아 처리하는 탐정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러던 중 출판사로부터 만화의 원작을 써 보라는 제안을 받지만 ‘순수 문학가로서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끝내 거절하고 만다. 여러모로 절박한 상황인데도 도박과 경마에 빠져 사는 그는 홀어머니 도시코와 맞벌이 주부인 누나 지나쓰에게 손을 벌리기 일쑤다. 그런 료타에게도 사랑하는 상대가 있었으니, 바로 이혼한 아내 교코다. 하지만 전처 교코는 한 달에 한 번, 외동아들 신고를 만나게 해 주고, 양육비를 받는 일 외에는 료타와 조금도 엮이고 싶지 않다. 비록 결혼 생활을 파탄 낸 료타이지만, 심지어 양육비조차 허튼 데에 탕진해 버리고 제때 마련하지 못해 쩔쩔매는 그이지만, 교코와 신고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자 한다.
큰 태풍이 일본에 상륙하던 어느 날, 료타는 한 달마다 만나 오던 아들 신고와 하루를 보낸다. 결국 궂은 날씨 탓에 도시코의 임대 아파트에 모이게 된 료타와 교코 그리고 신고. 교코는 자신과 새로운 연인의 뒷조사나 하고 다니며 여전히 한심하게 사는 료타를 냉담하게 대하고, 그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밤이 깊어 간다. 걱정 속에 잠을 이루지 못하던 료타는, 불쑥 잠에서 깬 신고와 함께 놀이터로 향하고, 그곳의 문어 모양 미끄럼틀 아래에서 태풍의 비명을 들으며 쌀 과자를 나눠 먹는다. 여기에 교코까지 가세해 오래도록 장래와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료타는 불현듯이 상념에 잠기고, 날이 갠 다음 날 임대 아파트 단지를 나서는 세 사람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긴다. 어디서부터 어긋나 버렸는지 알 수 없는 이들 가족의 내일은, 태풍이 찾아온 오늘보다 더 나을 수 있을까?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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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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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밑줄 친 문장
"뭐? 파란 놈?"
"아니, 노란 애. 그래서 네 아버진가 싶어서. '료타 아빠예요?'라고 하니까, 저 자리에서 멈추더라고."라며 도시코가 바로 앞 화단에 심긴 동백나무를 가리켰다. (44~45)
둘은 결혼을 하고 축복 속에 아이도 낳았지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교코의 꿈은 꿈인 채로 끝났다. 아이 키우는 일이 자리를 잡으면, 집안일을 하면서라도 소설을 집필하겠다는 어렴풋한 바람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친구가 이혼한 이유를 물으면 교코는 “돈.”이라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69)
만화 원작 일을 의뢰받은 것으로 자존심이 상한 것은 사실이다. 소설 의뢰일 거라고만 생각해서 급히 달려오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가로서의 프라이드’ 따위, 아무 것도 쓰지 않은 십오 년 동안이나 간직할 필요는 없었다 (94~95)
“아버지도 왔었네요. 여기에.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바로 그 자리에서 ‘돈 좀 빌려줄 수 없겠니.’라고.” …(중략)…
“똑같아. 너, 아빠랑 완전 똑 같은 짓을 하고 있어.”
료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숙이고 말았다.
“아빠가 착실하게만 일해 왔으면, 지금쯤 엄마도 단지 생활 끝내지 않았겠냐?”라며 지나쓰가 가르치듯이 말했다. (98~99)
“아들이 그렇게 만나고 싶어?”라고 말하며 소장은 더욱 강하게 어깨를 주무른다.
“그, 그거야, 아버지니까요…”
“아버지니까요, 라니.”라고 소장이 콧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 같은 녀석은 말이야, 남편이나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안 그래?”
…(중략)…
“내놔, 아까 그 봉투.” (123)
“지금은 말이야. 순수 문학의 시대는 이미 지났거든. 라이트노벨이니 J노벨이니 하면서.”
“진작에 그랬지.”라고 교코가 대꾸하지만, 비난하는 어조는 아니다. 이미 그런 시대는 옛날 옛적에 지나 버린 듯하다.
라이트노벨도 문학. J라이트노벨도 문학. 순수 문학도 문학 장르의 하나. 혼자 잘날 것도 없다. 교코가 몇 번이나 말해줘도 끝에도 ‘시대 탓’을 했다. (164)
차츰 단지가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나무들이 단지 전체를 집어삼킨다. 이끼가 끼고 깊숙한 삼림 속으로 빠져들어 가라앉는 것이다.
그 숲속 밑바닥에서 태아와 같은 모습으로 잠이 든 어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196)
결국 팔지 못한 벼루의 30만 엔이라는 값은 매력적이었다. 아마 팔았다면 15만 엔은 확실히 교코에게 줄 수 있다. 월세도 내고, 월급으로는 빚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속으로 계산해 보면서 료타는 생각했다. 교코가 결혼하면 신고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후쿠즈미는 싫어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 저항하는 것은 그만두자. 무언가를 포기한다. 과거가 될 용기.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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