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모양과 빛깔을 달리하며 갱신되는 가족사진 같은 이야기
걷고 또 걷게 되는 가족이라는 여정을 들여다보다
“스페인에서도 토론토에서도 프랑스에서도 「걸어도 걸어도」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라는 관객들을 만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진심과 고통 어린 가족드라마!” -《가디언》
“「걸어도 걸어도」에는 덜 조여진 나사 하나 없다. 살아서 영화를 보는 행복이 여기 있다.” -이동진(평론가)
“누군가의 죽음 이후 각자의 사정에 따라 세밀히 갈라지는 삶의 풍경.” -송경원(평론가)
“이 감독의 영화를 온 세계 사람들이 다 봤으면 좋겠다.”라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극찬을 받고, “영화사상 가장 아름다운 데뷔작.”을 탄생시켰다는 평을 듣는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대표 장편 영화 「걸어도 걸어도」를 그의 최근작 「태풍이 지나가고」와 함께 소설로써 새로이 소개한다.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 간의 결코 쉽지 않은 소통과 그럼에도 포기되지 않는 연결에의 욕구를,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는 여정이자 좀처럼 완료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의 탐구로 그려 낸 수작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동명의 영화(2008)로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 영화제 최고 작품상(2008), 일본 블루리본 감독상(2008), 아시안필름어워드 최우수 감독상(2009)을 수상한 바 있다.
『걸어도 걸어도』는 십오 년 전 세상을 떠난 장남의 기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하루를 담아낸 이야기다. 이 자리는 가장 커다란 공백으로 오히려 매년 가족의 회합을 가능하게 하는 장남의 존재감과 이제는 은퇴한 아버지의 실속 없는 위엄, 엄연한 독자(獨子)인 차남의 철부지 근성이 한데 모인 그야말로 역설의 현장이다. 다만 이토록 지독하고 “소름이 돋”는 서로이지만, 늘 그렇듯 전할 이야기가 떠오르면 “꼭 한발 늦는” 아스라한 동경과 영원한 그리움의 상대가 가족임을, 작품은 나직하게 들려준다. 중편소설 『걸어도 걸어도』는 대학 시절 문학을 전공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작가 자신의 자화상을 입힌 결과물이니만큼 소설 낱장의 장면 장면이 손에 잡힐 듯 생기 있게 전해지지만, 독자의 고유한 호흡에 따라 쉬었다 재개할 수 있는 자유로운 독서의 묘미가 더해져 영화와는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글쎄, 댁네는 보통과는 다르거든요?”
매 순간 모양과 빛깔을 달리하며 갱신되는 가족사진 같은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 가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늘 예사로 취급된다. 이야기의 주인이 되는 『걸어도 걸어도』의 가족 역시, 저들의 일 년 전 혹은 오늘을 그저 심상하게 대하는 듯하다. 그러나 십오 년 전 이날만은 이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때의 뜨거운 여름날, 바다를 찾은 장남 준페이는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다 목숨을 잃는다. 자연히 십오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매년 같은 날 준페이의 동생들인 료타와 지나미는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내려와 제사를 올린다. 이 가족에게 준페이의 기일은 설날보다 중요한 회합의 동인이 된다.(이다음 날도 료타는 여러 가지로 골치를 앓은 뒤 “이걸로 이제 설날에는 안 와도 되겠지. 일 년에 한 번이면 충분하지…….”라며 집을 떠난다.) 소설 속 오늘은 준페이가 목숨을 구해 준 요시오와, 결혼을 앞둔 료타의 예비 아내와 그녀의 아들 아쓰시, 지나미의 남편과 아이들까지 모두 찾아 준 덕분에 집이 꽤 북적이고 다복해 보인다. 그런데도 과연 “어머니나 아버지 입장에서는 형이 죽고 없는 시점에서 이미 가족이 모두 모인 적은 없었”던 것인지, 적막하고 외로운 기운도 집 한 켠에 감돈다.
“눈앞이 한순간에 새하얗게 뒤덮여서,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다. 어항 안에 있던 하얀 나비들은 그 바람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때 내 귓가에서 나비들이 날갯짓하는 소리를 나는 분명히 들었다. 새의 무리처럼 파닥파닥대는 큰 소리였다. 나비들은 순식간에 모두 사라지고, 내 손에는 번데기가 벗어 놓은 껍질만 가득한 어항이 들려 있었다. 그 어항을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왔다.” -본문에서
소설의 서술자가 되는 료타가 초등학생 때 집에서 나비를 부화했다가 느꼈던 공포를 다룬 대목이다. 료타에게 나비의 탄생은 곧 번데기의 죽음이고, 그 “죽음의 무리”는 어항 가득 흔적을 남긴다. 집 안에 잘못 들어온 나비를 죽은 맏아들로 생각하는 어머니 역시 어항 안에 남은 허물을 줄곧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이리라. 각자는 제 상처만으로 벅차서, 자신만큼이나 앓는 다른 식구를 찌르는 칼날을 벼리기도 한다.
“뭐야, 다들 보통, 보통거리고.”
보통의 존재들이 걷는 보통의 길
‘보통’이라는 단어가 입버릇처럼 많이 나오는 소설이 『걸어도 걸어도』다. 특별한 상처를 안은 이들이 나름의 고군분투로 남몰래 깊이 장착한 세계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토록 고유한 이야기에서 “다들 보통, 보통거리”는 이유는 독특(홀로 특별)하기보다는 모두와 마찬가지인 편이 위로되기 때문일 터다. 『걸어도 걸어도』 속 등장인물들은 손에 손잡고 달리는 경쾌한 리듬이나 아슬아슬하게 바통을 터치하는 긴장 어린 유대를 보여 주지 않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모양새와 상대를 조금씩 바꿔 가면서 반복”하는 전통을 걷고 잇는다. 료타의 말처럼 “언제나, 한발씩 늦”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시차를 두고 꼭 같은 자리에 도달한다는 뜻도 되는 셈이다. 차 한 대 마련하라는 매형의 권유에도, 차를 타고 아들과 장을 보러 가는 게 소원이라던 어머니의 투정에도 아랑곳 않던 료타가, “아이가 둘이 되니 차가 필요해져서 면허를 따고 차도 사게 되”는 식으로, 어느새 어엿한 아버지가 된다.
“같이 한번 갈까…… 꼬맹이도 같이.” 아버지는 돌멩이를 주워서 파도를 향해 던지며 노는 아쓰시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럴까요…….” 생각지 못한 전개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나는 맞장구를 쳤다. “조만간 가죠…….” 아버지의 얼굴은 보지 않은 채로 말했다. 아버지도 끝까지 나의 얼굴은 보지 않았다. -본문에서
마치 접점이라고는 없을 것만 같던 인물들의 평행선이 전혀 예상치 못한 데서 교차하는 위와 같은 장면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성실히 두 발을 옮기는 도정 곳곳에 숨겨 둔 선물인 양 독자를 문득 놀래고 사로잡는다. 이 책의 선배 독자인 옮긴이 박명진 역시 “문장을 따로 떼서 읽으면 사소한 이야기일지라도 그것들이 서로 이어질 때 비로소 깨달음이 떠오르면서 때때로 송연해지기까지 한다.”라고 표현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어머니를 잃은 자기 감정을 대면하여 집필한 『걸어도 걸어도』는 언어를 매개로 전개되는 간접경험이 우리를 얼마만큼 자극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만한 감정수입을 경험할 수 있는지를 환기하는 오싹한 중개자다.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
걸어도 걸어도
옮긴이의 말
독자 평점
4
북클럽회원 9명의 평가
한줄평
밑줄 친 문장
차남이라는 것은 불리한 위치여서 형제들 사이에서도 사진을 찍힐 기회가 극단적으로 적다.(77)
애당초 어머니나 아버지 입장에서는 형이 죽고 없는 시점에서 이미 가족이 모두 모인 적은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77)
"저따위 한심한 녀석을 구하자고, 뭐 하러 하필이면 우리 애가...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을."(114)
그것은 꽤나 잔인한 한마디였다. 아버지가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어지면서부터, 이 집안의 권력 관계는 완전히 역전된 것처럼 보였다.(131)
"똑같아. 부모한테는 똑같아. 미워할 상대가 없는 만큼 이쪽만 더 괴로울 뿐이지. 그 아이한테도 일 년에 한 번쯤은 괴로운 날이 있어도 그걸로 벌받지는 않을 거야..."(144)
"부탁이니까 둘이서 어떻게든 해결해 주세요. 나 좀 중간에 끼워 넣지 말고..."(152)
아직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다. 좀 더 훌륭해진 아들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163)
"이 이상의 연명은 어머님도 바라지 않으실 거예요." "그것은 가족분들의 집착인 것 같습니다."(165)
인생은 언제나 한발씩 늦다. 그것이 아버지와 그리고 어머니를 잃고 난 뒤에 얻은 솔직한 깨달음이다.((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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