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설가 정미경의 유작 장편소설
실패를 통해 완성되는 예술의 아름다움
최초의 피사체와 마주앉은 마지막 응시자
편집자 리뷰
2017년 1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많은 문학인과 독자 들을 안타깝게 한 작가 정미경의 유작 장편소설 『가수는 입을 다무네』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2014년 《세계의 문학》에 1년 동안 연재되었던 이 소설은 결국 작가 사후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과거 예술의 정점에 이르렀던 가수 율과 우연히 율의 현재를 다큐멘터리의 피사체로 담게 된 이경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이 소설은, 작가의 삶과 문학을 극명하게 드러낸 예술가 소설이자, 타인에 대한 지독한 관찰의 결과로서의 흥미롭고 진지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 최초의 피사체
『가수는 입을 다무네』는 타인의 삶, 타인의 상처와 묵묵히 함께했던 작가의 삶을 반추할 수 있게 하는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동시에 인간이 성취하거나 실패한 예술 전반을 조망하는 망원렌즈이기도 하다. 수업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감독 노릇을 하는 이경에게, 한때 전설적인 록 밴드의 보컬이자 리더였던 율은 어쩔 수 없이 최초의 피사체이다. 율에게는 많은 시간 그의 동반자이자 후원자가 되어 준 아내 여혜와 그를 믿고 따르는 젊은 뮤지션 호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둘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위악적으로 굴며, 지독한 외로움과 자기애를 동시에 느낀다. 이경의 카메라 안에서 그런 율은 이질적이고 다루기 힘든 피사체일 뿐이다. 그러나 촬영을 거듭할수록 율과 이경 그리고 주위의 모두에게 미세한 변화가 생기는데, “진짜 삶은 잘려 나간 부분, 아웃테이크 속에 있다.”는 소설의 문장처럼, 카메라의 바깥에서 각자의 삶은 진행 중이었던 것이다.
■ 마지막 응시자
이력을 속이고 율의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이경은, 어릴 적 자신을 떠난 어머니를 또 다른 피사체로 삼아 과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동시에 율의 다큐멘터리도 완성하여 공모전에 응시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이경의 응시는 세계의 기준에 도달하려는 ‘응시(應試)’가 아닌, 세계의 양태를 바라보려는 ‘응시(凝視)’에 가깝다. 이경은 율의 자기애와 자기혐오를 번갈아 바라보다 점점 더 피사체와 비슷한 기이한 열정에 사로잡힌다. 또한 자신을 떠났던 어머니를 카메라로 불러들여, 사이비 종교에 사로잡힌 그녀의 기이한 열정을 담으려 한다. 이경의 카메라는 이 모든 응시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을까? 삶의 중요한 부분을 담아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완벽했던 순간들은 프레임 바깥으로 툭툭 잘려 나가”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소설 『가수는 입을 다무네』는 카메라를 대신해, 독자인 우리의 프레임 한층 넓히고 있다. 오직 작가 정미경이기에 가능한, 조용하고 강력한 응시의 힘으로.
■ 추천의 말
정미경이라는 근사한 소설가의 이름으로 영원과 겨룰 수 있는 언어를 우리에게 선물로 준 그녀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자.
-발문에서│김미현(문학평론가)
정미경은 마지막 장편을 통해 예술이 아니라 삶을 향해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강지희(문학평론가)
■ 본문에서
“내가 왜 이 카페에만 오는지 알아?”
책을 좋아하는 건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경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음악이 없어서야.”
가까이서 보는 그의 검은 눈동자는 어두운 초록빛을 띠고 있다. 더 깊숙한 안쪽엔 아직 분화되지 않은 색채의 덩어리가 투명하다. 이경은 흠칫 몸을 뺀다.
-197쪽
“비밀 하나 가르쳐 줄까?”
그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질문하는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무대가 무서워. 무서웠고 무서울 거야.”
목소리는 늦은 저녁, 돌아갈 둥지가 망가진 작은 새의 울음소리처럼 구슬프다.
“입덧하는 여자처럼 속이 메슥거리고, 손바닥엔 폐유 같은 땀이 배어 나오지. 대기실에서 난 언제나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있어. 객석에서 누군가 달려 나와 무대에 폭탄을 던져 주길,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는 돌아갈 수 있기를. 그 두려움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애썼기 때문에 점점 더 두려워졌어.”
“그럴 땐 어떻게 하나요?”
“그냥, 걸어 나가지. 무대로 걸어 나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거지.”
-266쪽
또 어떤 장면은 뚝 잘라 낸 듯 짧다. 벼랑 끝에서 발을 헛디디듯 추락해 버린 날들에 대해 이경이 물었을 때, 약간은 격한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을 때, 율은 짐작과 달리 담담하게, 너에게만 일러 주겠다는 듯, 반주 없는 노래를 부르듯 덤덤히 말했다.
이갱. 좋은 생은 나쁜 노래를 만들어. 나쁜 생은 좋은 노래를 만들고. 그 둘을 다 겪은 사람만이 위대한 노래를 만들 수 있지.
-301쪽
목차
프롤로그 7
볼레로 21
검고 얇은 입술 93
백일홍 231
발문 │ 문학이라는 이름의 추상명사 -김미현(문학평론가) 317
작가 소개
독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