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시대에 예술가는 무엇을 해낼 수 있는가?
미지의 자아를 찾아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고자 했던 E. E. 커밍스의 독보적 시학
저라는 사람은 사랑이 신비 중의 신비라는 점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들은 잴 수 없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또 겸허히 주장합니다. ‘예술가이자 남자이자 낙오자’인 저는 그저 세월에 따라 자라난 것이 아니라, 호기롭게 삶을 살아온 부단히 복잡한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 저는 무감각하고 냉혹하며 약탈만을 일삼는 동물 이하의 존재가 아닐뿐더러, 불가사의하게 스스로 인식하고 생각하고 사유하는 자동 기계 인형도 아닙니다. 저는 자연스럽고 기적적으로 자라난 온전한 한 인간, 곧 무한한 감정을 지닌 한 개인입니다. 그리고 저의 유일한 행복은 제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며, 제가 겪는 고통은 모두 성장하기 위한 것입니다.―본문에서
■ 편집자의 말: 왜 이 작품을 소개하는가?
우디 앨런의 영화 「한나와 그 자매들」(1986)을 보면, 주인공 엘리엇이 한 권의 시집을 자신의 처제에게 건네는 모습이 눈에 띈다. 중년 남성의 부도덕한 애정을 보여 주는 이 대목에서 나직이 읊어지는 시는 아이러니하게도 대단히 아름답다. 이 장면을 본 관객들은 저마다 궁금해했으리라. ‘과연 누가 쓴 시일까?’ 바로 미국의 현대 시인이자 극작가, 산문가이기도 한 E. E. 커밍스다. 그는 ‘길 잃은 세대’의 작가로서, 또 전위적인 모더니스트로서 미국 문단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거장이다. 시를 언어 예술을 넘어선, 일종의 시각 예술로까지 끌어올린 그는 대단히 파격적인 문학적 실험을 선보인 동시에, 전통적인 문학과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 주기도 했다.
우리말로는 처음 소개되는 『이것은 시를 위한 강의가 아니다』는, E. E. 커밍스가 모교 하버드 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객원 교수로 활동하면서 개최한 여섯 차례의 대중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는 20세기 초 물질문명의 눈부신 발전과 거대하고 참혹한 전쟁, 대량 학살이 보여 준 인간성의 말살, 냉전 시대의 부조리 등을 전부 목도하면서, 이런 시대에 문학(문학가)과 예술(예술가)이 해낼 수 있는 일, 아니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숙고했다. 그는 시대의 목격자인 데에 그치지 않고 기록자가 되길 바랐고, 더 나아가서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혁신가가 되고자 했다. 커밍스가 한평생 추구해 온 예술, 어쩌면 세상을 향한 도전은 그의 시와 산문, 희곡과 호소를 통해 결실을 이뤘다. 마침내 커밍스의 만년에 이뤄진 강연 그리고 그것을 엮은 『이것은 시를 위한 강의가 아니다』에는 그 자신의 일생, 문학적 여정, 매 순간 고민했던 바와 궁극적 목표가 오롯이 담겨 있다.
잔혹한 시대에 시와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커밍스는 “잘 알지 못한다.”라고 대답한다. 심지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스스로의 작품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라고 일갈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강연으로써, 즉 그의 무지와 그것을 시인하는 놀라운 용기를 통해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의 삶이 곧 한 편의 시라는 사실을, 그 ‘미지의 작품’을 진지하게 성찰할 때 개인적 성장과 세계의 변혁을 함께 도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첫 번째 강의 아닌 강의: 나 & 부모님
두 번째 강의 아닌 강의: 나 & 그분들의 아들
세 번째 강의 아닌 강의: 나 & 자아 발견
네 번째 강의 아닌 강의: 나 & 당신 & 있음
다섯 번째 강의 아닌 강의: 나 & 현재 & 그 남자
여섯 번째 강의 아닌 강의: 나 & 있음 & 산타클로스
낭독 작품 목록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