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La variante di Lüneburg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7년 5월 4일
ISBN: 978-89-374-3419-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8x188 · 252쪽
가격: 13,500원
수상/추천: 뉴욕 타임스
게임의 판돈으로 무엇까지 걸어봤소?
국제 체스 대회에 혜성처럼 등장한 유대인 천재 소년
그의 재능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체스보드 위의 가장 약한 말, 폰이 펼치는 홀로코스트 복수 스릴러!
▶ 이 소설은 에드거 앨런 포에서 시작되었다. —《뉴욕 타임스》
▶ 나치즘과 인종 우월주의가 만들어 낸 괴물 인간, 인간성의 상실을 생생히 보여 준다. ㅡ「옮긴이의 말」 중에서
민음사 외국문학 브랜드 M이 세 번째 작품으로, 이탈리아의 신예 ‘스토리 텔러’ 파올로 마우렌시그의『폰의 체스』를 소개한다. 체스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유대인 소년이 독일 귀족 출신 라이벌의 제안으로 상상치 못할 판돈이 걸린 일생일대의 승부를 펼친다는 내용의『폰의 체스』는 경력이 전무했던 50대의 무명 작가 파올로 마우렌시그를 단숨에 에드거 엘런 포에 비견되는 최고의 신예로 만들어 놓았다. 오로지 ‘이야기의 힘’만으로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이 소설은, 26개국에 판권이 팔렸으며 유명 영화 제작사의 러브콜을 받는 등 문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폰의 체스』는 체스보드를 사이에 놓고 벌어지는 유대인 천재와 독일인 라이벌의 피할 수 없는 승부와 복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동안 체스를 소재로 했던 많은 문학 작품들이 가장 중요한 말인 ‘킹’이나 가장 강력한 말인 ‘퀸’에 비유되는 인물들의 이야기였다면, 독일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에서 유대인 주인공은 수용소에 갇혀 끔찍한 고난을 겪는 수많은 ‘폰’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수용소의 밤, 그 폰 하나가 역사에서 사라질 승부를 위해 정방형의 지옥으로 뛰어든다. 『폰의 체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이자 나치즘의 끔찍한 희생양인 주인공을 통해 역사의 비극을 마주한 인간의 딜레마를 그리며 예상할 수 없는 반전 속으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간다.
폰의 체스 7
옮긴이의 말 241
체스보드 위에서 충돌하는 두 세계, 이성과 광기
아리안 체스와 유대인 체스의 진검 승부가 펼쳐진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속된 라이벌 관계뿐 아니라 재앙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재앙이라는 단어를 불가피한 힘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기 위해 사용한다. (144쪽)
독일인 기업가 프리슈는 예측 가능한 사람이다.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일어나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가벼운 체조 후에 화장실로 향하는 것까지 그의 생활은 정해진 대로 흘러간다. 그런 그의 평온한 일상에 어느 날 예기치 못한 불안이 엄습한다. 대뜸 걸려와 그를 찾는 전화 한 통. 프리슈의 비서는 평소와 달리 프리슈의 기차 스케줄을 알려 주는 실수를 범하고, 얼마 후 프리슈는 저택에 딸린 정원 미로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마치 시계추처럼 정확하고, 예외를 용납하지 않는 그의 일상은 단지 습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계획에 가까웠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그의 성격은 체스보드 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리슈는 원리 원칙에 입각해 이성의 범주에서 움직이는 ‘아리인 체스’를 최고의 베리에이션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이해할 수 없는 도발을 감행하는 게임 스타일은 그에게 ‘모순투성이’에다가 ‘우연’에 기대 승부를 거는 ‘광기’에 불과했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 체스’, 프리슈가 찬양하는 이성적인 ‘아리안 체스’에 비해 예측 불가능하며 직관적이고 그래서 열등한 것이었다. 젊은 시절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프리슈가 만났던 한 유대인 포로는 자신만의 과감하고 독창적인 수로 그의 아리안 체스를 압박해 온다. 인간의 존엄과 개성이 말살당한 그곳에서 시작된 두 천재의 진검 승부! 재앙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아리안 체스의 이성인가, 유대인 체스의 광기인가?
죽음의 체스보드,
게임의 법칙을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게 하라
금요일 밤, 뮌헨―빈 급행열차에서 프리슈는 친구와 체스 게임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따금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대상을 닮아 버리는 법, 프리슈 역시 얼마 전 칼럼을 통해 “모순투성이”에 “호전적”이라 비판했던 바로 그 베리에이션을 따라 수를 두고 있었다. 그때 객실 안으로 스무 살쯤 된 젊은 청년 하나가 들어온다. 감히 체스의 거장 앞에서 유대인 체스에 대해 훈수를 두기 시작한 그 청년은 자신을 소개하며 ‘죽음의 체스보드’ 이야기를 꺼낸다.
체스 선수인 청년의 스승에게는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체스보드가 하나 있다. 거친 헝겊을 기워 만든 것인데, 단추가 곧 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허름해 보이는 그 보드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는데, 선수가 잘못된 수를 놓으면 말의 머리에서 팔을 거쳐 몸 전체로 전기가 흘러 벼락을 맞은 것처럼 쇼크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집트의 마법사들과 신비주의자들이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그 보드는 선수가 100퍼센트의 확신을 가지고 정확한 수를 두도록 고안되었다고 한다.
미신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한 프리슈는 청년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한 번 확신하면 자신의 확신을 철회할 줄 모르는 성격대로 청년에게 호언장담을 하고 만다. 만약 그 체스보드가 정말 있다면, 그것을 갖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치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과연 죽음의 체스보드는 실제로 존재할까? 체스보드의 주인이라는 청년의 스승은 누구일까? 프리슈의 확신이 불행의 도화선이 되어 내리꽂힐 결말은 무엇일까?
알파고의 시대,
왜 사람들은 두뇌 게임에 열광하는가?
1997년 IBM의 체스용 컴퓨터가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러시아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완전히 꺾었다. 1952년 미국의 컴퓨터 공학자 클로드 섀넌은, 3명의 프로그래머가 6개월 동안 대형 컴퓨터에 매달려도 겨우 아마추어 수준의 체스를 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1989년 첫 시도에 이은 세 번의 업그레이드 만에 수천 년간 이어진 체스의 신비를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다. 바둑보다 체스가 빨리 정복된 이유는, 베리에이션이라고 불리는 체스의 ‘수’가 바둑보다 적기 때문이었으니, 작년 초 알파고와의 대전을 통해 인간의 두뇌는 그 한계를 완전히 드러낸 셈이다.
그런데 알파고의 시대, 오히려 사람들은 게임의 본질인 ‘유희’를 재발견한 듯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두뇌 게임 열풍이다. 벌써 네 번째 시즌을 돌파한 tvN의 「더 지니어스」나 「뇌섹시대―문제적 남자」 등 국내 콘텐츠뿐만 아니라, 영국 BBC 드라마 시리즈 「셜록」이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다. 게다가 ‘방 탈출 카페’나 ‘스마트폰 두뇌 게임’까지 유행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직접 두뇌 게임을 즐기는 단계에 이르렀다.
『폰의 체스』는 알파고 이전 체스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 준다. ‘인간 체스 기계’라고 불렸던 쿠바의 세계 챔피언 카파블랑카, 무려 27년간 세계 챔피언이었던 독일의 라스커, 정신력이 약해 챔피언에 오르지 못했지만 체스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수를 두었던 루빈스타인까지. 체스가 곧 신앙이었던 이들의 삶을 통해 공정한 승부와 순수한 유희라는 두뇌 게임의 본질을 재건하고자 한다. 치열하게 도전하고 그에 따른 판돈으로 유희를 챙기는 플레이어들의 자세야말로 알파고에 패배를 인정한 시대, 인공지능이 갖지 못한 ‘인간다움’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지 모른다.
줄거리
어느 날, 아침 모든 일간지가 저택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독일 기업가의 소식으로 도배된다. 미로 형태의 정원에서 발견된 그의 시신은 입천장을 관통한 총알이 머리를 뚫고 나온 모습이다. 과연 사고일까? 자살일까? 아니면 범죄에 의한 타살일까?
서재 책상 위에서 헝겊을 기워 만든 독특한 모양의 체스보드가 발견되지만, 아무도 그의 죽음이 일종의 중대한 사형 집행이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체스보드 위 말들의 위치가 그가 남긴 비밀 메시지라는 것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 것처럼.
체스의 발명은 유혈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 이름을 알 수 없는 체스 발명자의 도를 넘은 탐욕은 사실 체스 게임 자체의 탐욕과 닮았다.(7쪽)
그때의 충동을 따랐다면 저의 체스 경력은 체스 역사에서 가장 짧은 것으로 기록됐을 겁니다. 하지만 두 분은 저만큼 잘 아실 겁니다. 언제 어떻게 체스를 버릴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체스가 우리를 지배하니까요.(91쪽)
지금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속된 라이벌 관계뿐 아니라 재앙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재앙이라는 단어를 불가피한 힘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기 위해 사용한다.(144쪽)
창백한 네 여자가 사력을 다해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걷기 시작했다. 발이 걸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걷다가 악몽에서 깨어나려는 듯 새벽 첫 안개가 드리운 황야를 향해 숨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딸깍 총알이 장전되며 총신을 따라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사격 자세를 취했다. 스포츠 경기라도 하듯 충분한 발사 거리가 확보되길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메추리 사냥’을 시작했다.(223쪽)
“맞습니다. 목숨.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진 않겠죠? 목숨은 아주 훌륭한 판돈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게임 하는 건 아주 낭만적이죠. 하지만 첫 패배에서 적수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고양이처럼 목숨이 일곱 개가 아닌 한 말입니다.”(230쪽)
그가 아무리 영리하고 냉철하며 훌륭한 체스 선수라 해도 그때의 내 승부수 앞에서는 늪에 빠진 맹인처럼 허우적거렸다. 그는 영혼 없는 나무 조각을 움직였지만 나는 무서운 골렘 부대를 진격시켰다.(2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