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문학하는 물리학자의 인생 수필

데라다 도라히코 | 옮김 강정원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7년 4월 3일 | ISBN 978-89-374-2911-8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3x188 · 264쪽 | 가격 8,800원

책소개

정밀한 과학 정신과 섬세한 예술 감각을 절묘하게 융합한 수필 문학의 신경지
인생의 신비와 자연의 섭리를 응시하는 물리학자의 내면생활

“죽은 나를 남의 마음속에 되살리고 싶은 욕망이 없어진다면
온 세상 예술의 절반 이상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나만 해도 이런 창피한 수필 따위는 쓰지 않았을지 모른다.”
―데라다 도라히코

편집자 리뷰

『도토리: 문학하는 물리학자의 인생 수필』은 근대 일본의 물리학자이자 문필가인 데라다 도라히코가 쓴 수필들 가운데 일부를 모아 옮긴 선집이다. 데라다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내용의 무거운 에세이를 쓴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 책은 ‘데라다 도라히코’라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인물을 소개한다는 데에 주안을 두고 작품을 선정했다. 따라서 일반 독자가 비교적 다가가기 쉬운 회상, 창작, 생활, 기행 등을 주제로 다룬 글들을 중점적으로 골랐다.
데라다 도라히코는 과학과 문학이 혼연일체를 이룬 삶을 살아왔으며, 그 특수한 정신세계에서 비롯한 범상치 않은 직관을 여러 글에서 발휘했다. 이처럼 다른 문필가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참신한 융합적 사고야말로, 오늘날까지도 그의 글이 인구에 회자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옮긴이의 말」에서

물리학의 관점에서 세계와 인생의 참된 의미에 다가선 새로운 수필,
일본 문학의 독보적 과학 문필가 데라다 도라히코의 정수

생사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동전을 던지는 것처럼 간단하다면, 세 번 연속으로 뒷면이 나오고 또 세 번 연달아 앞면이 나오는 것도 결코 이상하지 않다. 더 복잡한 경우에서도 완전한 우연의 일치로 특별한 사건이 속출하여 초자연적 현상을 연상시키고 확률의 법칙을 모르는 세상 사람에게 기이한 생각을 일으키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나는 세 동창의 죽음만으로 다른 모든 죽음의 가능성을 추산하는 불합리를 구태여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 ‘사고(思考)의 절약’을 기치로 내걸고 발전해 온 소위 정밀과학은 자연계의 모든 배열과 그것의 변화 추이를 연속적인 것으로 보려는 경향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사정이 허락하는 한 물질을 틈이 없는 연속체(continuum)로 간주하면서 그 운동과 변형을 수학적으로 논할 수 있었다. 정밀과학은 모든 현상을 되도록 간단한 수식과 매끈한 곡선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한 경향은 생물과 관련된 과학 쪽으로도 침투해 갔다. 그리고 ‘자연은 간단함을 사랑한다.’라는 옛날의 형이상적인 사고가 지금도 막연한 형태로 어떤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머리 깊숙한 곳 어딘가에 살아남아 있다.
그런데 그러한 방법으로 진보해 온 결과는 외려 그 방법을 배신하게 되었다. 물질의 불연속적 구조는 이미 가설의 영역을 벗어났고 분자와 원자, 전자의 실재를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더욱이 에너지의 추이까지도 어떤 불연속성을 부정할 수가 없게 되었다. 생물의 진화에서도 연속적 변이가 부정되고 비약적 변이를 인정하게 되었다.―「액년과 etc.」에서

일본 근대를 대표하는 물리학자이자 수필가로 일컬어지는 데라다 도라히코의 웅숭깊은 사색과 신문명의 명암을 살필 수 있는 작품 36편을 엄선한 『도토리: 문학하는 물리학자의 인생 수필』이 민음사의 ‘쏜살 문고’로 출간되었다.
오늘날 ‘글을 쓰는 과학자’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지만, 여전히 ‘물리학자가 쓴 수필’이라 하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물리학자’ 데라다 도라히코가 작가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그의 존재는 물론 이색적이었다. 여러 문사(文士)들과 교류하고 문단 주변에서 활발히 활동했음에도 전업 작가이기는커녕, 철저히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두어 개의 필명으로 글을 쓰며 과학자로서의 삶과 문필 활동을 병행했던 데라다 도라히코는 과학자뿐 아니라 문학가로서의 전형(典型)에서도 상당히 벗어나 있다. 그래서일까? 다른 누군가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물리학자’만의 예리한 시선으로 세계와 인생을 매우 날카롭고 시정 넘치게 묘파해 낸 그의 수필은,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더 두각을 드러내며 수많은 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데라다 도라히코의 특이하면서도 독보적 위상은 그의 작품에 풍부한 생명력과 생각거리를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현대 독자들의 머리와 가슴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데라다 도라히코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문체와 문제의식은, 그의 인생 역정과 과학적 탐구를 통해 심화하고 발전됐다. 공교롭게도 문학적 재능과 과학적 사유 능력을 동시에 타고난 그는 과학과 예술에 뿌리내린 공통점(“삶과 세상 이치에 대한 궁금증은 과학과 예술의 발로다.”)을 일찍이 발견했고, 일견 서로 달라 보이는 두 영역의 관점이 결국엔 하나, 즉 인생과 세계의 참된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파악해 냈다. 한평생 그는 과학을 탐구하며 지진과 우주, 기상, 각종 물리 현상을 진중히 고찰했고, 더불어 수필이라는 예술적 방법론을 통해 인생과 세계의 진정한 의미를 밝혀내는 데에도 매진했다. 이를테면 데라다 도라히코는 과학(물리학)과 예술이 상보적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일본 근대의 지성인 중에서) 가장 먼저 간파해 낸 인물이었다. 물리학이 ‘세상의 이치’를 규명하는 학문이듯, 예술은 ‘인간 현상의 근원’을 모색하는 기술이다. 따라서 그는 과학과 예술의 조화 혹은 접점 속에서 세계와 인간을 이해했고, 이 점은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수필 작품을 통해 명백히 드러난다. 시간의 흐름과 기억, 사랑과 죽음, 유행과 세태, 발견과 망각, 꿈과 현실, 미신과 과학 등 인간이 경험하고 세계에서 빚어지는 다채로운 현상들이 그의 수필 안에 오롯이 녹아 있다. 이러한 독자적인 관점과 예민한 관심은 데라다 도라히코를 일본 근대 문학의 중요한 문인으로서 평가받게 했을 뿐 아니라,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참고하고 고민해 볼 만한 전범으로서 영원히 살아남게 했다.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마사오카 시키……
과학자의 눈에 비친 일본 문단 그리고 빛과 그림자를 함께 품은 근대 세계의 풍경

데라다 도라히코는 문단과 과학계를 두루 체험했을 뿐 아니라, 근대화의 물결에 휩싸여 격동하는 세계 각지를 돌며 다방면적으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그는 조부모 세대에게 물려받은 전근대 시대(에도 시대)의 잔상부터 물리학이라는 첨단 학문을 공부하며 우주, 기후, 지진 등에 관한 최신 정보까지 충분히 흡수하였다. 더불어 유럽에서 유학하고, 미국을 여행하며 담배와 커피, 영화를 즐기는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이었고,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마사오카 시키 등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교류하는 문예인(文藝人)이었다. 한편 그는 병고 속에 죽은 아내를 추억하고 자식들과 새로운 별을 찾아 헤매는 가장이었으며, 제자들에겐 모범이 되는 선생이자 미래의 재난을 늘 경계하라고 외치는 참된 학자이기도 했다. 이렇듯 다채로운 면면을 지닌 데라다 도라히코의 개성은 그의 수필 속에 생생히 담겨 있다.

내 속에 있는 극단적인 에고이스트를 대변하자면, 나쓰메 소세키 선생님께서 하이쿠를 잘 지으시건 못 지으시건, 영문학에 통달하시건 그렇지 않으시건, 그런 것은 어찌되어도 좋았다. 말하자면 선생님께서 대문호가 되건 안 되건, 그런 것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선생님이 언제까지고 이름 없는 일개 학교의 교사로 있어 주셨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선생님께서 대가가 되지 않으셨더라면 적어도 좀 더 오래 사셨으리라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여러 불행으로 마음이 무거워졌을 때에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짐이 가벼워졌다. 불평이나 번민으로 마음이 어두워졌을 때에 선생님과 마주하고 있으면 그러한 마음의 먹구름이 말끔히 날아가 버리며, 새로운 기분으로 내 일에 전력을 쏟을 수 있었다. 선생님의 존재 그 자체가 마음의 양식이 되고 약이 되었다. 그러한 신기한 영향이 선생님 안의 어느 부분에서 흘러나왔는지 분석할 수 있을 만큼 선생님을 객관시하기는 어려우며, 그리하려고도 생각지 않는다.―「나쓰메 소세키 선생님을 추억하다」에서

20세기 말이나 21세기 초까지 분명 간토 대지진 같은 지진이 한 번 더 올 것이다. 그때 긴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때를 위한 대비는 지금부터 해야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무렵의 도쿄 시민은 대지진 따위는 말끔히 잊었을 것이다.
그 대신에 지진 발생 시에 재해를 조장할 온갖 위험한 시설만 쌓아 두었을 터다. 그것을 감독해 비상시를 대비하는 것이 지진국 일본의 위정자의 중대한 임무여야만 한다. 그런데도 오늘날 정치에 임하는 사람 가운데 지진을 국가의 안위와 연관 지어 문제시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시민 스스로라도 지금부터 충분한 각오를 다지지 않는다면, 어렵게 축조한 긴자 알프스도 언젠가는 다시 초토와 철근의 해골 사막이 될지 모른다.―「긴자 알프스」에서

과학자로서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로서 물리학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과거와 미래 사이를 온몸으로 돌파해야 했던 근대인 데라다 도라히코. 세계와 인생을 충분히 만끽하고 고민할 줄 알았던 그의 수필에는 오늘날 우리들이 한 번쯤 숙고해 봐야 할 지난 시대의 풍경과 근대의 불안, 세월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이 당면할 수밖에 없는 본원적 질문들이 모두 들어 있다. 그와 동시에 필멸하는 인간의 꿈과 기억, 일본 근대의 내로라하는 문인들과 나눈 다채로운 일화들이 미려하고 정교한 문체로 그려진다. 그의 기록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 낸 지성의 족적이자 새로운 시대정신을 예고하는 메아리로서 모든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영감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목차


인력거
용설란
도요새잡이
도토리
폭풍
장지의 낙서
꽃 이야기
베를린 대학: 1909~1910
선생님께 보내는 서신
병중기
무제 Ⅰ
신성
어린 Ennui
구근
액년과 etc.
꿈 Ⅰ
가을의 노래
어느 환상곡의 서
지진 일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군
과거의 기록
시키의 추억
다카하마 씨와 나
나쓰메 소세키 선생님을 추억하다
다마루 선생님을 추억하다
긴자 알프스
뜰의 추억
첫 여행
흡연 사십 년
메이지 32년 무렵
추억의 의사들
수필의 어려움
물레
꿈 Ⅱ
무제 Ⅱ

옮긴이의 말
연보

작가 소개

데라다 도라히코

1878년 도쿄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어렸을 적부터 과학적 탐구 정신을 키워 나간다. 고등학교 시절에 당시 영어 교수로 있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 하이쿠에 흥미를 가지게 됐으며, 물리학 교수 다마루 다쿠로의 가르침을 받고 물리학에 뜻을 둔다. 도쿄 제국 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하면서 상경한 이후엔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 다카하마 교시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으로 현저한 영향을 받는다. 이때부터 문예지 《호토토기스》에 수필 및 사생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필 활동을 시작한다. 학부를 졸업하고 조교수를 거친 후 우주 물리학 연구를 위해 국비 유학생 자격으로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한다.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고 귀국한 다음엔 이학부 교수로 취임한다. 「라우에의 회절 무늬 실험 방법 및 그 설명에 관한 연구」(1917)로 제국 학사원 은사상을 수상하고, 정부 및 군대로부터 각종 조사 활동과 연구를 위촉받는다. 과학 저술로는 『바다의 물리학』(1913), 『지구 물리학』(1915, 1933)이 있으며, 『후유히코슈』(1923), 『만화경』(1929), 『가키노타네』(1933) 등 수필집도 펴냈다. 1935년 전이성 골종양으로 세상을 떠난다.

강정원 옮김

대구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한 후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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