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광장에 모일 때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정치에 무관심한 나라” 일본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모색한 민주주의의 진짜 모습
국내 언론에 300여 차례 보도된 일본의 새로운 정치 운동,
SEALDs의 모든 것!
지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제껏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는 얘기를 들었던 젊은 세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누군가가 강요했다거나 어느 정치 단체에 소속됐다는 이유로 이루어지는, 이른바 동원에 의한 발상이 아닙니다. 저희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에 관해, 이 나라의 미래에 관해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 주체적으로 생각했고, 그 결과로 일어선 것입니다.
SEALDs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중상모략에 가까운 내용을 포함해 온갖 비판도 들었습니다. 예컨대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단순한 젊은 혈기다.’ 같은 말들입니다. 그 외에도 ‘한낱 시민 주제에 뭘 그리 죽기 살기로 덤비느냐?’ 하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요컨대 ‘너는 전문가도 아니다. 일개 학생, 주부, 회사원 또는 프리터일 뿐이면서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라는 비난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까도 설명했다시피 저희는 각자 개인의 자격으로 자신의 의사를 밝힙니다. ‘부단한 노력’ 없이는 이 나라의 헌법과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고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에는 ‘정치는 선거에서 뽑힌 정치인에게 맡기면 된다.’라는 분위기가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우리야말로 이 나라의 당사자, 즉 주권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우리 스스로 정치에 관해 고민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그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쿠다 아키, 참의원 특별 위원회 공청회에서이미 만들어진 언어가 아닌, 판에 박힌 의미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만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써 내 목소리로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의미가 있습니다. 나는 나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의사를 표명하는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구리스 유키, 특정 비밀 보호법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에서1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시위에 참가하리라고는, 아니 이렇게 연설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간 ‘사람이 변했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지인들이 저를 피하고, 친구가 줄어드는 등 유쾌하지 못한 경험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상한 것을 보면 이상하다고 말하는’ 제 성격은 예전과 다름없습니다. 정치에 대해서도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정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기에 앞서 올 여름에 입을 수영복을 샀습니다. 그리고 속눈썹 연장은 언제쯤 할까 하고 고민도 했습니다. 저는 수영복이나 속눈썹 연장 따위를 고민하는 사람이 정치에 관해서도 입을 여는 게 정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이 정상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정상이 될 때까지 반복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하시모토 베니코, 전쟁 법안에 반대하는 국회 앞 집회에서
실즈의 결성부터 해체 그리고 미래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는 1년간의 기록,
자신의 목소리로 자기 생각을 외치는 ‘민주주의의 축제’를 즐겨라!
일본의 정치 및 시민운동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일본 사회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실즈(SEALDs), 즉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학생 긴급 행동(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s)’의 주요 활동과 이념, 각기 다른 영역에 속한 다양한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긴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가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실즈는 ‘특정 비밀 보호법(국가 안보에 영향을 주는 정보를 일본 정부가 ‘특정 비밀’로 지정해 관리할 수 있는 법안. 합법적 검열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에 반대하는 학생 모임’, 이른바 ‘SASPL’을 전신으로 하는 학생 운동 단체다. 사실 이들은 2011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에 불거져 나온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현실(정부의 무능, 언론 기능의 마비, 대기업의 횡포 등)에 맞서 시민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특정 비밀 보호법 제정’처럼 특별한 사회 문제가 부상할 때마다 단체의 구성과 외양을 적절하게 바꿔 가면서 정부에 대항해 왔다. 바야흐로 실즈는 아베 정권의 급격한 ‘우회전’ 행보와 거기에 발맞춘 국가 운영, 평화 헌법 개헌을 필두로 한 안전 보장 관련법에 반대하며 결성됐다. 이들은 주로 도쿄 지역에 거주하는 10대와 20대의 학생들로, 일본의 자유 민주주의와 입헌주의 그리고 국민의 안정적인 생활을 중요시하는 안전 보장,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해 줄 평화적 외교를 부르짖으며 국회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때 실즈는 기존의 시민운동, 학생 운동이 취해 온 방법과 태도를 송두리째 거부하며 “시위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라는 당돌한 신조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들에겐 피라미드 형태의 조직은 물론, 해당 단체를 대표하는 인물도, 시위를 진두지휘하며 특정 사상(ideology)을 강요하는 ‘사령관’도 없다. 다른 무엇보다도 실즈의 특이점은 국회 앞을 비롯한 시위 현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들은 기존의 딱딱한 정치 구호를 힙합 스타일로 만들어서 시위운동의 엄한 분위기를 마치 유명 가수의 콘서트 현장에 온 것처럼 유쾌하게 바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축제’를 벌였을 뿐 아니라, 존엄한 국민 주권이 투표에서 끝나지 않고 거리에서, 각자의 생활 속에서 계속되어야 함을 천명했다. 또한 이들은 SNS를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고 정치적 발언을 끊임없이 개진하였으며 간사이와 도호쿠, 간사이와 도카이 지역의 학생 단체, 각기 다른 목소리와 색채를 지닌 시민운동과도 연대해 매주 금요일마다 집회를 열었다. 이렇듯 일본 전역에서, 다양한 성원과 다채로운 정치적 목표를 아우르며 470여 일 동안 이뤄진 실즈의 활동은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10만 명 이상의 사람을 동원했지만, 결과적으로 정권을 바꾸고 정치를 혁신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1960년대 안보 투쟁과 전공투 이후 “정치에 무관심한 나라” 일본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학생 운동이자 시민운동이었으나 아베 정권의 독주를 저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2016년 8월 15일, 실즈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하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승리를 목도하며 ‘평화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긴급 행동’으로서 결성하였던 최초의 목적대로 해산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은 패배했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멈춰 서는 게 아니라고 단언한다. “실즈는 해산합니다. 하지만 끝나는 지점에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시작은 우리들이자 당신입니다.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섭시다.” 이것이 바로 실즈의 마지막 발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성취와 실패(혹은 한계)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진정한 민주주의에 먼저 다가서려 했던, 어쩌면 가닿았을지도 모를 실즈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영웅은 필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바로 ‘우리’니까!”
일본 정치 운동의 신기원을 이룬 실즈, 한국 사회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발견해야 할까?
2016년은 한국 사회에도 참으로 잔인한 한 해였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될 만큼 대한민국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마침 그때 ‘박근혜정부’의 파행적 국정 운영과 거대한 규모의 권력형 비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시민들은 의연희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고, 무려 200만 명을 넘어서는 엄청난 군중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자 분투했다.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1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집회는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을 끌었고 청와대와 국회, 검찰에도 뚜렷한 영향을 끼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히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한국 시민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전(前)실즈(대한민국의 범국민 행동은 실즈 해산 이후에 이뤄졌다.)의 멤버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권력에 맞서 싸우는 우리들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시위 현장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한국의 촛불 집회를 바라보며 지난날 자신들의 한계를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를 그려 보았다고 한다.
실즈의 정치 운동은 SNS의 활용 가능성과 세련된 팸플릿·플래카드 디자인, 누구나 쉽게 따라 외칠 수 있는 재치 있는 구호의 중요성 그리고 축제형 집회의 호소력을 찾아냈다. 그러나 실상 가장 중요한 ‘발견’은 따로 있다. 바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고민하고 함께 공부하며 각자 자신의 목소리로 발언하는 정치적 행동의 중요성,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야지.” 또는 “난 일개 시민일 뿐이야, 정치에 관해 발언하는 건 주제넘은 짓이야.” 같은 생각처럼 참정(參政)을 멀리하거나 두려워하는 발상의 위험성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인 데에 실즈의 ‘진정한 성취’가 있다. 더불어 시민운동과 우리의 정치적 행동이 어느 한 정권을 무너트리거나 특정한 법안을 통과시키고 막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즉 시민의 정치 참여가 투표는 물론이고 모든 일상 속에서 지속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일깨워 줬다는 사실 또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실즈의 공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베 신조 총리의 정권 연장을 저지하지 못했음에도 패배했다며 주저앉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이 다시 일어서겠다면서 현 정권에 동조하지 않는 누군가가 있음을, 또 그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국회와 정부를 지켜보며 언제든 제동을 걸 수 있음을 공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진정한 민주주의, 즉 ‘미완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부단히 보수해 나갈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싱크탱크’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일 따름이고, 민주주의가 진짜 필요로 하는 건 영웅이 아니라 ‘우리’이기 때문이다.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대체 가능한 그 ‘누군가’들로 이루어진 운동체. 그곳에서 나는 흔해 빠진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확실히 ‘1’로 기록되지만, 동시에 ‘1’에는 단순히 숫자로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숨어 있다.
우리 각자는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사고하고, 판단하고, 거리에 나가 소리 높여 외침으로써 스스로 민주주의의 주체가 된다.
—SEALDs
우리가 지난날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그날의 분노와 슬픔이 우리를 크게 변화시킨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변화한 우리는 앞으로 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올해가 풍년일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는 오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담담하게 그날그날의 일을 해내는 농부처럼, 우리는 오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것은 비일상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그 자체여야 합니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고 오늘 하루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시작합시다.
몇 번이고 반복합시다.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잊지도 맙시다.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혼마 노부카즈, 특정 비밀 보호법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에서
사실 정치는 하나의 답을 확정할 수 없는 과정의 연속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매우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우리나라의 수십, 아니 수백 년의 미래를 판가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앞서 이웃 나라의 실즈, 그 새로운 정치 운동의 파도가 달려가 부딪힌 장벽의 규모를 들여다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그리고 거기를 넘어선 다음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숙고해 봐야 할 터다.
들어가는 말
01 Our VOICE 우리의 목소리
02 What’s SEALDs? 실즈는 무엇인가
03 Where we are from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04 SEALDs act 실즈는 무엇을 해냈는가
05 Our democracy 우리의 민주주의
옮긴이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