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서동욱 에세이
글 서동욱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6년 10월 31일
ISBN: 978-89-374-3361-0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3x215 · 348쪽
가격: 15,000원
분야 인문/역사/문화
우리는 늘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생활이 된 사상의 이야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생활의 풍경을 새롭게 바라볼 기회를 주는 것들이 있다. 서동욱의 글도 그중 하나이다. 때로는 의무 때문에, 때로는 즐거워서, 때로는 풀이 자라듯 자연스럽게 쓴 서동욱의 글은 유려하면서도 힘이 있다. 되새기게 하고, 살펴보게 하며, 상상하게 한다.
철학자이면서 시인,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서동욱이 새 책 『생활의 사상』을 선보인다. 에세이라는 형식을 빌려 진지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풀어낸 글 75편을 인문학, 예술, 사회, 삶이라는 네 가지 좌표 아래 모았다. 글들은 제각기 생명력을 지니고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지만, 마지막에 다다르는 곳은 우리의 생활이다. 따라서 이 책은 생활이 된 사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문 마술 지팡이를 두고 나온 날
1부 사람을 치료하는 인문학: 인문학에 관하여
칸트의 문장
사람을 치료하는 인문학
생각의 핵심, 충돌과 창조
외국인처럼 더듬거리며 말하는 소크라테스
내가 읽은 스피노자
책을 사용하는 네 가지 방법
고전 읽기는 어떻게 시작되나?
소설 속의 철학자는 어떤 모험에 뛰어드나?
「진주 귀걸이 소녀」와 스피노자
인문학적 지식의 재미를 깨워 내다
대학생이 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것
도서관의 기억
참다운 교양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의 쉬움과 어려움
대가들이 보낸 인내의 시간
새로움이 주는 피로
과학적 탐구의 원천은 무엇인가?
탐구자 이세돌 또는 교육으로서 바둑
나의 유학 시절과 루뱅 대학교
2부 유품으로서의 작품 또는 침묵: 예술에 관하여
문학과 삶의 진실
문학과 정치, 참여문학의 딜레마를 제거하기
문학과 구원
김수영의 겨울, 또는 닭과 기침
헥토르와 맥베스, 문학의 탄생
유품으로서의 작품 또는 침묵
주안 미로의 아이들
다빈치의 그림 한 점
「코랄 웍스」와 건축 해체 이야기
사물이란 무엇인가?
숫자 100의 특별함과 「공룡 100만 년」
온천론(溫泉論)
숨결의 문학
높은 사람들이 그대를 아끼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詩)가 그 손님을 맞아 줄지?
독자 발굴의 시대
게임과 경쟁하는 문학
대지의 노래
바그너와 로스코 또는 예술과 종교
문학을 읽는 것이 왜 중요한가?
3부 세계시민의 시간: 사회에 관하여
술 이야기
형제 살인
아프리칸 코기토?
『사비망록』 또는 기원의 신화
세계시민의 시간
기억은 왜 중요한가?
극혐이라는 재앙
타인과의 조우
『26년』과 그리스 비극
『삼국지』 대신 『금병매』
“쫄지 마!”, 우리 시대 계몽의 표어
고통에 대하여
눈물에 대하여
익명의 힘
진짜는 어디 있는가?
소통이란 무엇인가?
4부 배움과 인생의 걱정거리 자식: 삶에 관하여
공포와 용기
경쟁의 두려움에 대하여
배움 그리고 인생의 걱정거리 자식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
규격화된 경험에서 탈출하기
즐거움의 소중함
소중한 일상
일요일
비만의 발견
웰빙
소통 안에 숨겨진 것
『삼국지』 패션
목소리
손 글씨, 우리의 두 번째 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아함 또는 스완 부인과 마주친 오후
우정은 수단이 아니다
타인의 눈길
포스트 휴먼의 시대
죽음의 두려움과 영혼 불멸 이야기의 유혹
일상을 파고드는 낯설고도 매혹적인 75가지 생각
인문학, 예술, 사회, 삶
철학자 서동욱이 안내하는 생각의 좌표
이 책의 1부는 인문학을 주제로 한다. 스피노자와 진주 귀걸이 소녀의 만남을 상상해 보고, 칸트와 프루스트가 보낸 인내의 시간에서 진리란 무엇인지 읽어 낸다. 그 외에 도서관의 기억, 참다운 교양, 새로움이 주는 피로 등을 이야기한다.
2부의 주제는 예술이다. 파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 선 헥토르와 멕베스에게서 구원을 떠올리고, 요양하러 간 온천에서 금홍이를 만난 이상을 통해 문학과 질병의 관계를 논한다. 또한 김수영, 주안 미로, 말러, 바그너, 로스코가 그린 궤적을 따라가 본다.
3부는 사회를 주제로 다룬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삼국지』보다 『금병매』에 가까운지 질문하고, 도난당한 반에이크 형제의 작품을 보며 사라져 버린 정의를 생각한다. 형제 살인, 극혐, 익명의 힘 등에 관해서도 탐구해 본다.
4부는 삶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든 프리아모스 대왕의 모습을 통해 피할 수 없는 일상을 가리켜 보이고, ‘얼짱’ 마법사 하울의 경박함 속에도 진정한 아름다움을 향한 가능성이 있음을 발견한다. 경쟁의 두려움, 비만, 타인의 눈길 등에도 주목하고 생각을 나누어 본다.
생각의 노동으로 읽어 낸 일상의 이면들
고통받는 인문학
인문학은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데도 늘 위기에 처해 있다. 도대체 왜? 저자는 말한다. 불행하게도 인문학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사유는 성장하기 위해 늘 책 앞에서 고통받는다.”
그런데 요즘은 쉽게 서술한다는 명목으로 인문학적 지식을 단순화한 책이 여럿 보인다. 거기서 사람들은 이미 아는 지식을 확인하고 안도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즐거움은 알지 못한 채. 오늘도 저자는 꿈꾼다. “컴퓨터 앞에 추리닝 바람으로 앉아 컵라면으로 여러 날을 버티며 인문학을 공부하는 흐뭇한 광경”과 “게임 아이템을 갈망하듯 철학 논문을 희구하는 기적”을.
문학이 게임 앞에 섰을 때
말 위에 올라탄 채 적장을 향해 달려간다. 상대는 천재 싸움꾼 여포. 두려움과 고독은 온전히 플레이어의 것이다. 동탁이 천하를 통일했다고? 거짓이라고, 왜곡이라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다. 게임이니까.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복사물인가? 의미 없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소설 『삼국지』도 수많은 사람이 만들어 낸 복사물이지 않은가? 게임의 위력 앞에서 저자는 의문을 제기한다.
“소설 『변신』보다는, 벌레로 변신한 카프카의 길 찾기 게임이 더 ‘실존적’이지 않을지?”
고대 그리스에는 있는데 지금 여기에는 없는 것
팽목항의 눈물이 아직도 그치지 않았는데, 우리는 세월호의 희생자나 광주의 희생자도 혐오감으로 대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테러리즘에 장대한 품격을 부여한” 강풀의 만화 『26년』은 대를 이은 보복의 서사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아이스퀼로스의 복수극 『오레스테이아』 3부작과 연결된다. 그런데 두 이야기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그리스인은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정의에 입각한 판결을 통해서 보복을 근절하고 보복의 힘을 자비로운 여신의 힘으로 변모시키는 국가이다.”
두려워하는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 알 수 없는 미래, 피할 수 없는 죽음……. 두려움은 우리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대로 그저 두려워하기만 할 것인가?
“결국 두려움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이 스스로를 감지하는 방식이 두려움인 것이다. 따라서 두려움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도록 강요하는 능력이다.”
낯섦과 새로움이 사라진 세상에서
방송과 신문, SNS 등 수많은 매체가 경쟁하듯 정보를 쏟아 낸다. 그리고 우리는 검색한다. 맛있기로 소문난 음식을 먹기 위해, 멋진 여행을 하기 위해. 그런데 마침내 찾아간 맛집과 여행지가 처음인데도 낯설지가 않다. 새롭지가 않다. 사람들은 용기를 잃었고, 체험은 비슷비슷해진다.
“결국 경험은 기존에 있었던 것을 똑같이 재생산해 내는 창구가 되고, 개인에게서나 사회에서나 창조적 힘은 규격화된 경험 속에서 소멸해 버린다.”
즐거울 수 있음을 깨닫고
먹고, 자고, 숨 쉬는 일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 자체가 바로 삶이다.
“우리는 건강을 돌보기 위한 수단으로 산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맑은 공기를 쐬고 햇볕과 그늘이 번갈아 나타나는 길을 걷는 일이 즐겁기 때문에 산책을 한다.”
그렇다. 생각해 보라. 우리 삶에는 얼마나 많은 즐거움이 있는가?
“힘든 일 뒤 점심 식사의 즐거움, 잠깐 책상에 엎드려 눈을 붙였을 때 잠의 즐거움, 저물기 직전 붉은 기운이 사라져 가며 별들이 떠오를 준비를 하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즐거움, 추운 겨울 저녁 바깥에서 들어와서 난로 앞에 섰을 때 따스한 불기운이 주는 즐거움, 잘 이해할 수 없었던 수학의 원리를 깨닫게 되었을 때의 즐거움…….”
일요일의 우울에 관하여
토요일의 느긋한 마음, 일요일의 무거운 마음. 다행히도 나만 그렇지는 않다.
“토요일 오후 뒤에는 아직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만 하루의 일요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느긋한 생각이 마음을 부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토요일이 가고 일요일이 왔을 때, 그토록 찬란하던 일요일은 어느새 빛을 잃는다. 마음도 빈곤해진다. 노동을 목전에 둔 허무 속에서 일요일은 사그라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