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다시 펴내는 소설가 강석경의 『인도 기행』
나는 구원이란 화두를 들고 우직한 수행자처럼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 2001 개정판 메모
이 책의 초판(총 면수: 248쪽/ 본문 그림 박생광/ 흑백 인쇄)은 1990년에 출간되었다. 먼저 1989년 《세계의 문학》 여름호에 연재되었고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한 것이다. 2001년 다시 펴내는 개정판(총 면수: 304쪽/ 컬러 인쇄)은 1년 여에 걸친 작가의 개정 작업에 따른 것이며, 박생광 화백의 그림 대신 40여 점에 이르는 컬러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
강석경의 『인도 기행』이 출간된 지 11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은 1989년 1월 26일에서 5월 15일까지, 4개월여에 걸쳐 인도를 여행했던 작가의 정신적 편력이 담겨 있는 기행 문학의 백미다.이번 개정판에서는 지난 10년 전 기록의 서투름을 약간씩 손질하면서, 과거 박생광 화백의 그림 대신 직접 찍은 사진과 지인들이 보탠 사진들을 첨가하여 인도를 좀 더 가까이 느끼도록 했다. 1년여에 걸친 개정 작업 동안 작가는 글을 다듬는 한편, 40장의 사진들을 직접 골라 왔다.강석경의 『인도 기행』이 처음 발간되었을 즈음에는 인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다. 1989년 여름에 작가의 글이 계간 《세계의 문학》에 연재되었다. 그리고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오면서부터 인도 여행기가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후 이 책은 10여 년 동안 인도를 이해하고자 하는 많은 독자들의 꾸준한 지적, 정신적 열망을 채워 주었다.
진정한 여행이란 습習으로부터의 떠남이고 나는 인도에서 나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강석경은 1980년대 중반『숲속의 방』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젊은이들의 방황과 고뇌를 통하여 정체성을 탐색하는 굵직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런 작가가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때에, 늘 꿈꾸어 왔던 인도를 여행하게 된 것이 그의 문학적 여정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된다. 즉, 작가는 『숲속의 방』의 고뇌와 회의의 회색빛 시간을 거쳐, 『인도 기행』에서 구원과 삶의 화두를 획득하고,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와 『내 안의 깊은 계단』을 통해 그녀 자신의 영혼과 내밀한 조우를 한다. 이처럼 작가의 삶과 문학의 여정에서 \’인도 여행의 체험\’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인도는 여행자로 하여금 시간을 잊게 만든다. 인도는 작가에게 가슴을 열어 삶의 본질에 다가서도록 하였다. 인도만큼 영적 충족을 준 나라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 인도는 성과 속, 정적과 아수라가 공존하는 나라,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나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습(習)으로부터의 떠남\”이다. \”지금도 순례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인도는 문명의 지구에서 여백과 같으며, 그 땅에서 다양한 삶들을 접하면서 내 의식의 눈도 크게 열렸다\”라고 작가는 술회한다. 그러한 인도 기행이기에 작가는 넉 달 동안 육신의 피로에도 지칠 줄 모르고 강행군을 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시작하여, 봄베이, 아잔타 불교 석굴, 고아, 폰디첼리, 만두, 타지마할, 카슈미르, 갠지스 강 등 많은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 고장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작가는 철저하게 한 개인의 시각에서 인도의 자연, 사람, 예술, 유적과 유물, 풍습, 도시 등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표현한다.
특히, 미대 출신답게 풍물과 유적지를 묘사하는 섬세한 솜씨는 환상적인 인도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밖으로 나서니 거리의 봄볕처럼 마음도 밝아진다. 델리 거리 가운데 소가 있는 광경도 보인다. ―그토록 번창했다는 올드고아엔 신에게 바친 교회만 남아 있다. 범속한 삶의 흔적은 스러져도 신적인 것은 영원한 것인가.―인도인들은 어떻게 누워 있는 신을 상상했을까. 비슈누는 편안한 자세로 선잠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아무도 그를 바라볼 자 없는 밀실에서 그의 내부에 있는 우주의 꿈속에 빠진 듯하다. ―석가는 어찌하여 녹야원의 평화로운 뜰에서 고통을 깨우치도록 설법했을까. 행복해 보이는 삶을 누리면서 현실의 허상을 꿰뚫어 보신 이.
또 한편으로는 미개하고 무지한 대다수 인도인들, 그리고 구질구질하게 자신을 쫓아다니는 인도 남자들에 대해 경멸과 짜증을 보내기도 한다.
―뭄바이는 인도다. 뭄바이를 국제 무역도시라 말하지만 고작 20루피를 꿔 가는 사기꾼을 국제 도시에서 만날 수 있을까.―여행객끼리 눈이 마주치면 으레 웃지만 인도인들은 잘 웃지 않는다. 가난 때문인가?―나는 간디도 마리아도 아니므로 자존심마저 내팽개친 한 인간의 천박함에 염인증을 느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인도 정신을 잉태시킨 순례지를 휴머니즘에 바탕한 따듯한 시선으로 살피고 있는 점도 곳곳에 나타난다.
―이등 기차를 잘 선택했다. 인생은 이등칸에 있다던데 진정한 인도를 알기 위해 앞으로도 이등 기차를 타리라.―신성하기까지 했던 거지 아버지의 모습은 생명에 대한 사랑이었고 인도의 힘이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의 주조를 이루는 정조(情調)는 쓸쓸함과 같은 인식이다.
―산치의 석양, 정적이 고인 산치 풍경은 불교의 죽음을 보여 주는 듯하다.―이 무덥고 척박한 사막 지대에다 한 장에 2백 루피짜리 값비싼 돌을 쌓아 궁전을 짓고 그들은 무엇을 지키려 한 것일까. 성 위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며 삶의 존엄성을 새삼 생각한다. ―큰 동물이 네 다리를 굽혀 꿇어앉는 자세는 굴종적이기까지 하다. 아니, 그것은 거대한 무엇에 대한 절대 순명과 같다.
석양의 폐허, 강물 위에 떠내려가는 타다 만 시체, 사리를 휘날리며 사라지는 여인 등이 자아내는 쓸쓸함이 이 책의 말미의 정조를 보여 준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쓸쓸함의 정조를 단 하나의 구원과도 같은 인식에의 열망으로 체득한다. 표피적인 현실을 알려 하기보다 인도를 구축하고 있는 보다 근원적인 사상을 체득하려 하는 것. 인도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조금씩 눈을 떠 가고 있는 작가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번 여행으로 \’인도\’를 잃었어. 자신을 변화시킬 그 어떤 것을 찾으러 목마른 순례자처럼 길을 떠났지만 어떤 것도 결국은 내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냉혹한 진리에 부딪혔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