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찾듯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38 | 서머싯 몸 | 옮김 송무
출간일 2000년 6월 20일

달과 6펜스 (윌러엄 서머셋 몸)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

 

우리시대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이다. 일과 사랑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업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내 일(My job)을 찾는 것이 아니라 조건 좋은 직장을 찾기에 급급해졌다. 어려서부터 모두 똑같은 의무 교육을 받으면서 당연한듯 인문계 고등학교를 목표로 혹은 더 뛰어난 인재들은 과학고나 민사고를 진학하려 애쓴다. 단지 좋은 대학, 좋은 전공을 선택하기 위해서다. 어쩌면 대학이라는 타이틀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성공 보증 수표이자 신분 상승의 수단이 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직장을 가는 사람들은 과연 행복한가?

“직장 말고 직업을 구해야하지 않겠어요?” 조정래 선생의 『정글만리』에서는 우리의 이러한 불편한 현실을 꼬집는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특히나 앞으로 나의 경제적 기반이 되어 줄 직업을 선택해야 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부모의 권유에 의해서,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려서 혹은 남들이 좋다고 인정해주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직업이 아닌 타인이 원하는 직업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로인해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만다. 결혼만큼이나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 직업이다. 조건 좋은 직장을 고르는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달과 6펜스』의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자신의 품고 있는 이상, 즉 ‘달’의 세계이지만 어쩔수 없는 현실의 벽에 굴복하여 본인이 원하지 않는 주식 중개인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는 현실의 세계를 의미하는 ‘6펜스’의 세계다. 좋은 직장을 얻고 적당한 여자와 결혼하여 남들처럼 자식들을 낳고 가장의 의무를 지키면서 가족과 가끔 여행도 가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보니 어느덧 불혹의 나이가 되어버린다. 남자 나이 40이면 오춘기라 했다. 제 2의 질풍노도를 경험하며 그는 더 이상 그림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감추지 못하고 부적절한 방식으로 비뚤어지고 만다.

 

“에이미 보시오. 당신과 헤어지기로 마음 먹었소. 내일 아침 파리로 떠날 참이오. 이 편지는 그곳에 도착하는 대로 부치겠소. 다시 돌아기지 않소. 결정을 번복하진 않겠소.”

 

어느날 갑자기 편지 한 통을 남긴채 돌연 사라진다. 도덕적인 잣대로 볼 때 가족을 버리고 자신만의 이상을 찾아간 스트릭랜드는 너무나도 냉혹하고 무자비하며 비양심적이다. 그럼에도 그에게 배울점은 하나 있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반면 뛰어난 재능을 갖지 못해 일류 화가로 성공하지 못한 더크 스트로브는 그림 실력만큼은 형편없지만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그림을 그리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다. 늘 ‘달’이 되고자 갈망하지만 어쩔수 없이 ‘6펜스’라는 현실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스트릭랜드의 천재적인 소질을 알아보는 탁월한 안목이 있었다. 자신을 냉대하는 스트릭랜드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림을 팔게 해주며 돕는다. 어쩌면 자신이 도달하지 못하는 달의 세계를 스트릭랜드를 통해 대리만족하고자 하는 욕심이 아닐까? 어긋난 그들의 우정은 스트릭랜드가 스트로브의 아내인 블란치를 빼앗고 다시 버리는 과정에서 블란치가 자살함으로써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결국 스트릭랜드는 현실 세계에서 자신이 갈망하는 이상을 실현하지 못하고 타히티 섬으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린다. 원주민 아내도 얻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말년에는 한센병에 걸려 눈에 멀게 되지만 마지막까지 인생의 걸작을 남기고 죽는다. 자신의 이루고자 하는 ‘달’의 세계에 도달한 것이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사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영혼의 예술가 폴 고갱을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증권 중개인의 삶에서 화가가 되어 말년에는 타히티 섬에 가서 그림을 그리다가 유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을 남기고 죽은 것까지 같다.

 

소설 속 화자는 우리 모두 찰스 스트릭랜드가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트릭랙드가 유별나지만 그도 그 스스로의 삶으로서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오히려 화자는 각자 스스로의 삶에서 자기의 인생을 찾으라고 말한다. 화자가 의학대학을 다니던 시절 아브라함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늘 1등만을 하던 그는 졸업 후 성공이 보장되는 진로가 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우연히 떠난 여행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뒤늦게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학교를 자퇴한다. 덕분에 아브라함에 밀려 늘 2등만 하던 친구가 아브라함에게 보장된 교수직을 받게된다. 훗날 그는 부와 명예를 얻어 다시 만난 화자에게 과거 아브라함의 어리석은 선택을 조롱한다. 그러자 화자는 이렇게 독백한다.

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는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이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사 작위를 가진 사람에게 내가 어찌 감히 말대꾸를 하겠는가? 『달과 6펜스』 (송무 역, 민음사, 2000)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결정적인 핵심이 담긴 문장이다. 다른 사람과 다른 삶이지만 그 다름은 다름 나름대로 인정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 서로의 다름을 알고, 다름을 인정하며, 다름을 존중하는 것. 이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하는 이야기의 본질은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