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이 예민한 다이스케는 향에도 역시나 민감하다. 자기 전에는 향수를 뿌리거나 물을 받아 꽃을 띄어놓기도 한다. 미츠코를 맞이한 날에는 은방울꽃을 띄어 놓았고 물을 찾던 미츠코는 그 물을 마신다. 놀란 다이스케가 미츠코에게 마실 물을 가져다 주려 했는데 괜찮냐 묻자, 미츠코는 향만 좋다고 대답한다.
은방울꽃의 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진다’이다. 이 소설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암울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친구와의 삼각관계가 주를 이루는 소재이다 보니 자연스레 행복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은방울꽃 말고도 나오는 꽃이 하나 더 있다. 백합이다. 백합의 꽃말은 ‘순결’, ‘변함 없는 사랑’이다. 미츠코는 다이스케를 찾아올 때 백합을 선물한다. 미츠코는 다이스케에게 백합을 좋아했지 않느냐 묻지만 다이스케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 질문을 받기 직전에 백합의 향이 강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다이스케는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하고자 미츠코를 초대한다. 그리고 백합을 준비한다. 미츠코는 오빠가 살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이야기를 한다. 다이스케는 본인은 그래도 변하지 않았을 거라 하자 미츠코는 거짓말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자 다이스케는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한다. 옛날과 지금과 마음이 항상 똑같다고. 그의 변함 없는 미츠코에 대한 사랑을 넌지시 밝힌다.
절친한 친구를 잃고, 가족에게 절연당하고 사랑하는 이는 아프다. 자의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가 어지럽도록 빨간 세상을 본다.
냉소적이고 나태하며 무기력한 다이스케는 본인의 신념만은 저버리지 않았다. 사회가 어떻게 규정하든지 자신에게 당당해야 한다고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경제적으로 무너지고 가까운 사람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이지적으로 행동하던 그는 미츠코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정립하고나서는 감정에 몸을 맡긴다.
‘나는 이로 인해 사회적으로 죄를 범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운명적으로 그렇게 타고난 사람이니까 죄를 범하는 것이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세상에 대해서는 죄를 짓더라도 당신 앞에서 참회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겁니다.’(28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