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폴의 감정선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프랑스인의 사랑이라는 건 이런 것인가. 자신보다 14세가 어린 미남자 시몽을 두고 뚱뚱하고 세련되지 못하고 어린 창녀와 바람까지 피운 로제를 어떻게 다시…… 사랑의 설렘보다 안정과 익숙함을 선택한 까닭은 그녀가 39세로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내킬때만 자신을 찾는 로제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 짓을 또 해야만 한다. 폴은 맹목적인 시몽의 사랑이 두려웠을 수도 있다. 잘생기고 앞길이 창창한 젊은 변호사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찌보면 폴은 지독한 현실주의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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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

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경우 흔히 갖게 마련인 신랄함이나 당혹감이 아니라 조심성에 가까운 차분함을 가지고, 좌절로 얼룩진 거울 속의 얼굴을 서른 아홉해로 나누어 보았다. 얼굴의 음영을 두드러져 보이게 하고 주름을 더 깊어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이 손가락 두 개로 잡아당기는 그 탄력 없는 살갗이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 아가씨의 대열에서 아줌마의 대열로 마지못해 넘어가고 있는, 외모에 몹시 신경을 쓰는 또 다른 폴의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로서는 그런 모습이 낯설었다. 그녀가 이렇게 거울 앞에 앉은 것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였으나, 정작 깨달은 것은 사랑스러웠던 자신의 모습을 공격해 시나브로 죽여 온 것이 다름 아닌 시간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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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그 대신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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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5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분명 그 후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겠지만 대답 같은 걸 한 적은 없었다. 이런 상황, 삶의 이런 단계에서 누가 대답을 기대하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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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4

차 안에서 로제와 폴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폴은 기다리고 있었다. 한창 즐기고 있던 파티에서 그녀를 끌어냈다면 적어도 어떤 설명이나 구실이 있어야 하리라. 로제는 그녀의 집 앞에서 차를 세우긴했지만, 시동을 끄지는 않았다…. 순간 그녀는 로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것, 자기 집까지 올라오지 않으리라는 것. 이 모든 것이 그가 기득권자로서 갖고 있는 것을 잃을까봐 취한 조심스런 행동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폴은 차에서 내린 다음 나직하게 “잘 가.”라고 인사하고는 길을 건넜다. 로제는 즉각 차를 출발시켰다. 그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