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회에 치명적 스캔들을 불러일으킨
≪월간 리핀콧≫ 판본을 바탕으로 당대 비평과
오스카 와일드의 자기 변론, ‘예술을 위한 예술’ 선언까지
망라한 진정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진정한 수수께끼는 보이는 것에 있지, 보이지 않는 데에 있지 않아요.” 본문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금기에 도전한 기념비적 작품. 기막힌 상상력과 재치로 가득한 고전.” ≪가디언≫
“윌리엄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는 물론, 20세기 성 해방과 스톤월 항쟁에까지 영향을 끼친 작품.” ≪뉴요커≫
19세기 후반,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유미주의의 기수로서 문화, 예술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이 민음사 쏜살 문고로 출간되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은 이제껏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저본으로 활용되어 온 ‘1891년 판본’이 아닌, 1890년 《월간 리핀콧》에 게재되었던 ‘최초의 판본’을 바탕으로 작업하였다. 그동안 오스카 와일드가 최종적으로 개고하고 단행본으로 펴낸 ‘1891년 판본’을 결정판으로 여겨 왔으나, 최근 퀴어 비평 등 다채로운 연구 성과에 힘입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첫 원고, 즉 ‘《월간 리핀콧》(1890) 판본’을 둘러싸고 새로운 시각과 관심이 대두하고 있다. 물론 《월간 리핀콧》의 판본조차 당시 담당 편집자이던 J. M. 스토더트에 의해서 “아주 까다로운 독자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겠다.”라는 미명 아래 500단어가량 잘려 나갔으나, 이번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은 과거 무단으로 편집된 부분까지 모두 복원하여 오스카 와일드의 진의(眞意)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그리고 초상화가 정중원의 ‘추천의 말’과 함께, 작품 「도리언 그레이」(2022)를 표지 이미지로 삼아 소장본으로서의 가치를 더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대의 비평(악명 높은 《데일리 크로니클》 리뷰, 줄리언 호손과 월터 페이터의 비평)과 오스카 와일드의 반응, ‘유미주의 선언문’이라 불리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의 서문까지 망라해서 수록하였다. 그야말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기념비적 위상을 보다 종합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귀중한 한 권이다.
일찍이 오스카 와일드는 ‘댄디’처럼 화려하게 차려입고, 여러 외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특유의 재치와 글재주로 문단과 사교계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특히 그는 존 러스킨, 월터 페이터 등 최신의 심미주의, 이른바 ‘유미주의’에 심취해 있었고, 이 같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조 아래 자신의 삶과 작품을 조형해 나갔다. 대학교 시절에 시 「라벤나」를 발표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와일드는 1888년 동화집 『행복한 왕자』로 명성을 공고히 하고, 단편과 희곡, 비평 등 여러 작품을 연이어 내놓으며 당대 예술계의 총아로 군림한다. 인기가 절정에 다다르던 1890년,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재능과 예술관을 종합하고자(총체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게 되었고, 마침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세상에 선보인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발표되었음에도 ‘도리언 그레이 스캔들’은 금세 영국에까지 번져, 곧장 커다란 논란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작품 자체에 대한 비평을 넘어서 주제와 캐릭터, 특히나 이야기 속에 감도는 ‘동성애적 암시’를 겨냥한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와일드는 여러 비평가, 유수 언론사와 일일이 겨루며 자기 작품과 예술관을 굳세게 옹호했으나, 결국 1891년에 단행본으로 새로이 펴내면서 많은 부분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고, 일종의 자기 변론으로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의 서문도 이때 집필했다. 그런데 ‘중대 외설죄(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애를 범죄로 여기며 처벌했다.)’를 의식한 까닭인지, 작가 스스로 원고를 전면적으로 고치면서 유독 ‘동성애적 묘사’를 대거 삭제했다. 훗날 오스카 와일드를 몰락하게 한 ‘재판’ 중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1890』의 내용이 일부 인용되었다는 상황을 되돌아볼 때, (개고 과장에서 지워진) 도리언 그레이를 향한 바질 홀워드의 순수한 애정이 얼마나 치명적인 사랑(“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 속에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전부 쏟아부었거든.”)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동성애 혐의로 강제 노역형을 선고받은 뒤, 한때 문단과 예술계를 호령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완전히 잊힌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사랑”, 이를테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최초의 고백(커밍아웃)이었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숱한 검열과 편집 속에서 본래의 목소리를 잃어 갔지만, 여전히 해방과 자유에 이르는 귀중한 발자취로서 우리 앞에 또렷이 남아 있다. 이제라도 그 흩어진 목소리와 부정당한 사랑을 되찾아 줘야 하지 않을까?
“정말 슬픈 일이야!” 도리언 그레이가 여전히 자신의 초상화에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 “정말 슬픈 일이에요! 나는 나이 들어 끔찍하고 추해질 테니까요. 하지만 이 초상화는 영원히 젊음을 잃지 않겠지요. 이 6월의 어느 날에서 단 하루도 더 늙지 않을 거예요……. 서로 반대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영원히 젊음을 잃지 않는다면, 그 대신 이 초상화가 나이 들어 끔찍하고 추해진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난 뭐든 바칠 거예요! 그래, 뭐든 바치지 못할 게 없어요!” -본문에서
찬란한 어느 여름날, 재능 있는 화가 바질 홀워드는 필생의 역작,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거의 마무리하고 있다. 그의 캔버스 건너편에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자 미(美)의 정수를 구현해 놓은 듯한 청년, 도리언 그레이가 나른한 모습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던 중, 해리 워튼 경이 돌연 아틀리에에 나타난다. 냉소적인 쾌락주의자 해리 경은 미모의 도리언 그레이를 목격하자 곧장 매료되고, 자신의 아름다움조차 모르던 순수한 도리언의 귓가에 꿀처럼 달콤하고 극약처럼 치명적인 말들을 속삭이기 시작한다. 그제야 스스로의 아름다움과 찰나의 젊음을 깨닫게 된 도리언은 깊은 절망에 빠지고, 자기 대신에 바질이 그려 낸 ‘도리언 그레이’가, 저 완벽한 초상화가 늙고 추악해지기를 광적으로 열망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정녕 기적처럼, 아니 저주처럼 도리언의 소망이 이루어진다! 그의 모든 악덕과 잔혹하고 무자비한 행위는 도리언에게 아무런 흔적도, 세월의 풍진조차 남기지 않지만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혐오스럽게 더럽히고 부패시킨다. 끔찍한 두려움과 달콤한 환희가 얽히고설킨 운명 속에서, 이제 도리언 그레이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추천의 말(정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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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크로니클》 리뷰
오스카 와일드의 응답
환상 소설이라는 불가능의 세계(줄리언 호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대하여(월터 페이터)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 서문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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