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문학 선집 3 : 전쟁과 생존 ― 1945년~1950년대
시리즈 한국 여성문학 선집 3 | 분야 한국 문학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의 계보를 이해하는 최초의 기준!
민음사 한국 여성문학 선집
■ 3권 전쟁과 생존 1945년~1950년대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 여성들의 생존기
해방부터 1950년대까지는 한민족이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났지만 이념 갈등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두 개의 나라로 쪼개진 분단의 시작점인 시기이다. 한국사의 이와 같은 흐름은 여성의 인간(시민)적 자유를 턱없이 제한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여성해방의 의제는 먼 미래로 유예되었고, 남성을 민족적 개발 전사이자 방위군으로 내세운 초남성적 근대화가 본격화한 1960년대에 이르면 여성들은 지극히 사인화된 존재로 위치 지어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 여성 주체들은 근대화가 본격화하기 이전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가부장제를 심문한다. 가정을 박차고 나온 ‘노라’와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하는 여성 혁명가, 모 가장, 전쟁미망인, ‘양공주’ 등 가부장제의 지정석을 벗어난 여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의 계보를 이해하는 최초의 기준!
민음사 한국 여성문학 선집
『한국 여성문학 선집』(전 7권)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을 엮은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여성주의와 여성문학을 연구해 온 학자들이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사 서술을 목표로 2012년 결성한 모임으로,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 첫 번째 프로젝트이자 성과물이다.
이 프로젝트는 “왜 우리에게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 같은 전복적인 여성문학사, 『노튼 여성문학 앤솔러지』 같은 여성문학 선집이 없는가?”라는 한 가지 명확한 의문과 강렬한 열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성문학사 서술은 여성주의 운동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문학사 탈구축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문학사 탈구축 작업은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적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문학사에 깃든 국민·국가, 남성·엘리트, 문학중심주의 등을 걷어내고 여성과 소수자 문학을 문학사에 반영하자는 움직임이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1990년대 이후 한국에도 문학사 탈구축 작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여성문학사 서술은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남성 중심의 문학사 서술이 굳건하게 형성되어 오는 동안, 여성문학사는 서술을 시작할 텍스트 선별조차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성문학은 그 전통을 이어 왔음에도 역사적 계보와 문화적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오랜 역사 동안 여성 작가의 ‘저자성’과 여성문학의 ‘문학성’은 의심받았으며, 주류 문학사에서 배제되거나 주변화되어 왔다. 오늘 등장한 『한국 여성문학 선집』이 한국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동안 문학사에 없던 여성의 기준과 관점으로 근현대 한국 여성문학의 계보를 집대성하고, 제도 문학 중심의 구분에서 벗어나 장르 제한 없이 여성 지식 생산과 글쓰기 실천을 아카이빙한 최초의 작업이다.
‘최초’는 ‘다음’을 약속한다.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은 『한국 여성문학 선집』 이후 본격문학과 국민문학을 넘어 대중문학과 퀴어문학, 디아스포라문학을 포괄하고 해외 학회와 협업한 다양한 선집을 후속 과제로 남겨 두었음을 밝히며, 시대마다 문학 공동체마다 다시, 그리고 새롭게 쓰일 새로운 문학사의 탄생을 예고한다.
■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문학사는 가장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문학의 영역이다.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고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문학 교육의 주요한 방법론으로 ‘문학사 교육’이 위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바로 그 이유로 과거 국가 권력은 문학사를 ‘민족’과 ‘시민’을 양성하는 첫 번째 도구로 삼았으며, 또한 같은 이유로 문학사는 민주화 이후 가장 먼저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다. 1980년대 서구로부터 시작해 2000년대 한국 사회에도 민족과 이념 중심의 ‘남성 중심의 문학사’를 해체하고 새로 쓰는 ‘문학사 탈구축’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 성과는 미약했다. 새로운 문학사 서술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문학사는 문학 연구와 교육 모두에서 ‘죽은 지식’으로 외면당해 왔다. 그 역사 끝에 『한국 여성문학 선집』이 등장했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동안 문학사를 떠받친 문학, 역사, 학문을 둘러싼 오랜 기준들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의심하고 새로이 들여다보며 완성한 ‘최초의 여성문학사’이자 ‘새로운 문학사’ 서술의 시작이다.
■ 시대가 만들고, 시대를 만든 작품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최초’라는 단어가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인 ‘원칙’으로 작용한 책이다. ‘여성문학의 진일보를 이룬 작품을 집대성한다.’는 목적과 학술적·역사적 근거와 의미를 가진 작품을 장르 구분 없이 발굴하고 소개한다는 대원칙 아래, 책에 대한 다른 원칙들이 세워졌다. 작품뿐 아니라 ‘학술’과 ‘역사’까지도 여성적 관점으로 다시 보고, 작품과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의 공기까지도 충실히 담을 것이라는 규칙들이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근대 개화기 조선부터 1990년대 민주화 이후 한국까지의 시대를 역사적 전환점으로 구분하고, 시대마다 독자적인 개성과 전환을 이룬 여성문학 작가와 작품을 선별해 담았다. 시, 소설, 산문, 희곡뿐 아니라 잡지 창간사, 선언문, 편지, 일기, 노동 수기 등 제도화된 문학 형식 밖에 있다는 이유로 문학사에서 다뤄지지 못했던 다양하고 자유로운 ‘여성 글쓰기’를 총망라했다.
■ 한국 여성해방 100년의 기록
기존 문학사에서는 나혜석의 「경희」가 《여자계》에 발표된 1918년을 여성문학의 원류로 보았다면,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그보다 20년 앞선 1898년 「여학교설시통문」을 ‘여성 글쓰기’의 원류로 본다. 이 글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고 일할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한 학교를 설립하자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두 여성이 신문에 투고해 발표한 글이다.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이 글을 “근대 매체인 신문을 통해 공적 담론인 ‘선언문’의 형식으로 페미니스트 집합 의식을 발표한 최초의 글”(1권, 시대 개관)이라 평가하며 ‘여성 글쓰기’의 원류로 짚는다. 「여학교설시통문」을 발표한 이듬해 이 글의 저자들이 한국 최초의 여학교를 설립하고, 그로부터 20년 후 한국 여성문학의 원류인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이 동시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한국 여성문학이 만들어 온 여성해방의 방향성과 방식을 명확하게 보여 준다.
여성의 글쓰기와 삶은 앞선 여성의 글을 읽고 다음 여성의 삶을 상상하는 가운데서 적극적으로 공명하고 움직이며 이루어졌다. 시대마다 형태를 달리하며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과 그에 따라 순응하고 저항하며 만들어간 여성의 삶, 그리고 그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고민하고 열망한 ‘자유’, 여성해방의 과정을 『한국 여성문학 선집』을 통해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문학사
『한국 여성문학 선집』은 문학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도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백과사전식 구성과 글로 만들어졌다. ‘시대 개관’은 각 권을 여는 글로, 다루는 작품과 시대 전반을 설명하며 사회·정치·문화적 맥락에서 작품과 작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끄는 글이다. ‘작가 소개’ 글은 작가의 생애와 작품, 문학사적 성취와 의미를 보여 주는 글로, 해당 작가를 연구해 온 연구자를 통해 방대한 자료와 엄정한 사실 검증을 토대로 작성되었다.
모든 작품은 초간본 원문을 우선해 수록했다. 이 선집이 지닌 ‘최초’의 의미와 자료적·교육적 가치를 고려해 세운 기준이다. 장편소설은 작품 소개와 주요 장면을 발췌해 수록했다.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는 1990년대 소설과 시를 포함해, 쉽게 구할 수 없었던 1950~1970년대 작품까지 여성문학사의 주요 작품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 본문에서
진정 그들은 독립이 다시 돼야 한다고 느끼기는 하나 그 「독립」이라는 것이 어떠한 형태로서 그들 앞에 나타날 것은 짐작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짐작할 만한 아량이 그들에겐 있지 않었다. 오직 우매할 뿐이었다. 거저 가난할 뿐이었다 (…) 갈아먹던 땅까지 빼앗기고 아주 그야말로 지주와 작인이라는 주종 관계가 끊어졌음에도 불고하고 아직도 그들의 서흥수에게 가는 마음은 남아 있었다.
― 최정희, 소설 「풍류 잡히는 마을」에서
김 교사는 그때부터 이 부락에서 사회주의자니 공산주의자니 하는 명칭을 얻었고 그 자신 일본 제국주의의 착취와 자본주의 경제 조직을 끔직히 미워하고 원망했다. 십 년 전에 그러하든 김 교사가 십 년이 지난 오늘 조선이 꿈같이 해방되고 다시 그가 그처럼 갈망하든 세계가 실현되나 그는 도모지 즐겁지가 않었다. 무섭기만 했다.
(공산주의가 된다? 공산주의가 되면 이거 큰일 낫군.)
김 교사는 북조선의 정세가 각각으로 급변해 가는 것을 보고 가슴속이 새깜아케 타들어 갔다.
― 이선희, 소설 「창」에서
『징 와가 신민 또 도모니(짐이 우리 신민과 함께), 하는데 그만 눈물이 나서 울었어요. …… 덴노우헤이까(천황 폐하)가 참 불상해요 — 』
『덴노우헤이까는 우리나라를 빼서 갔고, 약한 민족을 사십 년 동안이나 괴롭혔는데, 불상허긴 뭐가 불상허지?』
「그래도 고 — 상을 허니까 불상해요 — 」
― 지하련, 소설 「도정」에서
6·25동란은 여성으로부터 아버지 어머니 오빠 남편들을 빼앗아 갔으며 동시에 생활의 지주를 잃어버린 인생의 고아들인 여성으로부터 아무 작정 없이 직장을 빼앗아 간 사실이다. 이렇게 우연한 천재로 해서 의존의 세계를 탈피하려는 그들이 (…) 남자들의 독무대같이 인식되어 있는 직장 사회에서 먹기 위해 모든 차별 대우도 감수하고 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감원이라는 성별 조치가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여 보아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 정충량, 논설 「여성의 지위와 현실」에서
남이 시킨다고, 천진으로 그것에만 골돌하는 폐인이 된 혁명가 — 그는 『고문을 너무 받아, 천치가 된 것』이 아니고, 의미를 잃어버린 자기 존재에 걸려 넘어진 것 같았다.
한숨에 드리켠 하이보—ㄹ이 뜨겁게 자신의 혈관을 달리는 것을 깨달으며, 영희는 아프도록, 이 폐인에게 가까움을 느낀다.
두 사람은 다 같이, 정신이 허물어진 사람이었고, 그 허물어진 일각에서 맺어진 사이었기에 —
― 한무숙, 소설 「허물어진 환상」에서
「엣다 여류 작가입네 하구 쏘다니기 불편한데 이 기회에 이혼이나 하면 어떼?」
이렇게 빈정거림이 끝일 줄을 모르고 계속된다. 성혜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참고 있다가 끝내 얼굴을 들고서 형식을 똑바루 마주 보았다.
(…)
「다시는 절대루 안 쓰겠읍니다」
성혜는 이런 말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 얼마만큼 괴로운 일일지라도 그렇게 해야만 되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그러나 쉽사리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와지지 않는 데는 자기도 어쩌는 수가 없었다.
― 강신재, 소설 「안개」에서
이 방에 그득 차 있는 것은 가난 그것뿐이라 느껴졌다. 기애는 눈을 감았다. 굴욕적인 정상이었다. 사람이 사람에게보다는 동물에 가깝도록 궁핍에 인종하여 살고 있다는 것은 기애에게는 부끄러운 일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 강신재, 소설 「해방촌 가는 길」에서
설령 아이가 그때 이미 죽을 목숨이었다고 치자. 그래도 그렇게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도수장의 망아지처럼…… 사람을, 사람을 좀 미워해야겠다.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신을 왜 생각은 해. 아니 아까는 없다고 하고선…… 아니야 모르겠어. 사람을, 사람을 좀 미워해야겠다. 반항을 해야겠다. 모든 약탈적인 살인자를 저주해야겠다.
― 박경리, 소설 「불신시대」에서
까마귀가 날으고 있다. 사육(死肉)을 파먹고 산다는 날짐승……. 금시에라도 썩은 물이 악취를 풍기며 뚝뚝 떨어질 것 같다. 진영은 자기 자신이 까마귀 같다는 느낌이 온다. 팁으로 해서 살아 있는 그녀의 살이 까마귀의 살만 같다. 진영은 진저리를 치며, 몸을 흔들어 본다. 볼통한 젖가슴이 육중하게 흔들린다. 진영은 다만 그녀의 실존을 재확인할 따름이다.
― 한말숙, 소설 「신화의 단애」에서
■ 차례
책머리에 4
시대 개관
해방과 전쟁 — 일제강점기 여성문학의 해체와 한국 여성문학의 형성 14
고명자 39
자주독립과 부녀의 길─부녀위안의 날을 마지면서 40
최정희 48
풍류 잡히는 마을 50
끝없는 낭만 86
노천명 97
적적한 거리 99
아름다운 얘기를 하자 100
이선희 102
창 104
지하련 136
어느 야속한 동족이 잇서 138
도정 140
이영도 167
맥령 169
정충량 170
여성의 지위와 현실 172
한무숙 178
허물어진 환상 180
감정이 있는 심연 197
강신재 222
안개 224
해방촌 가는 길 248
노영란 277
밤의 악장 279
홍윤숙 281
생명의 향연 283
박경리 286
표류도 288
불신시대 300
김남조 332
목숨 334
한말숙 336
신화의 단애 338
엮은이 소개 354
집필에 참여한 연구자들 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