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8개국어로 번역된 플뢰르 이애기의 은빛 감성
“푸른 잉크로 써 내려간, 소녀들의 『데미안』”
바구타상, 유럽 보카치오상 수상작 「아름다운 나날」
바일라테 알데리고 살라상, 비아레조상 수상작 「프롤레테르카호」
* 푸른 잉크로 써 내려간 사춘기. 플뢰르 이애기의 펜은 판화가의 바늘 같다.-조지프 브로드스키
* 최면에 빠진 듯한 충격. 마음을 사로잡는 이 작품은 너무 강렬해서 떨치기 힘들다.-≪뉴욕 리뷰 오브 북스≫
전 세계 18개국어로 번역된 플뢰르 이애기의 은빛 감성
“푸른 잉크로 써 내려간, 소녀들의 『데미안』”
▶ 푸른 잉크로 써 내려간 사춘기. 플뢰르 이애기의 펜은 판화가의 바늘 같다. — 조지프 브로드스키
▶ 최면에 빠진 듯한 충격. 마음을 사로잡는 이 작품은 너무 강렬해서 떨치기 힘들다. —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바구타상, 유럽 보카치오상 수상작 「아름다운 나날」
바일라테 알데리고 살라상, 비아레조상 수상작 「프롤레테르카호」
이탈리아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플뢰르 이애기의 대표작 『아름다운 나날』이 단행본으로 재출간되었다. 이애기는 매 작품마다 지극히 세밀하고 건조한 문체로 삶과 죽음, 욕망과
상실에 대한 통찰을 그려내 이탈리아 문학을 세계에 알린 독보적인 여성 작가라고 평가받는다. 수록작 「아름다운 나날」과 「프롤레테르카호」는 한없이 순수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녀 시절
의 절망과 상실을 그린 작품들이다. 어려서 가족의 죽음이나 원치 않는 이별을 경험했던 주인공들은 부당하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안고 자란다. 두 작품은 불완전한 세상과 거짓말 같은
인생에 휘청거리는, 소녀들만의 예민한 감수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들 속에서 그들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절망을 응시함으로써 세상을 투명하게 바
라볼 줄 아는 존재로 살아 숨 쉰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대략 네 시간이지만, 작가와 함께했던 기억은 평생토록 갈 것이다.”(조지프 브로드스키)라고 평가받기도 한 『아름다운 나날』은 좌절과
상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인생에 대한 진지한 열망을 담아 전 세계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 수작이다.
“나는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플뢰르 이애기는 천부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이다. 그녀의 글은 우리의 심장을 어루만지듯 감정의 파장을 크게 일으킨다. 깊은 한이 담긴 고통과 슬픔을, 무심해 보일 정도로 평온하고
간결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그 투명하리만큼 담백한 묘사 속에는 사물과 인간의 내면을 정확하게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이 있다. 인생의 평지풍파를 겪은, 연륜이 쌓인 노인이 사람을 진
정으로 위로할 수 있듯이, 삶에 대한 이해와 철학을 담은 그녀의 시선에 우리는 위로받는다.”
— 옮긴이의 말에서
『아름다운 나날』에 실린 두 작품 「아름다운 나날」(1989)과 「프롤레테르카호」(2001)는 10여 년의 시간 차를 두고 발표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마치 연속적인 한 작품을 보는 듯한 일관
된 정서를 유지한다. 각 작품의 주인공 ‘나’들은 부모와 정서적인 유대를 나누지 못한 채 여러 곳을 전전하며 자란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받지 못할까 봐, 세상에 속하지 못할까 봐,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까 봐, 미련을 품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엇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겠다고 끊임없이 다짐한다.
고통의 쾌감은 사악하며 독을 지녔다.
그것은 하나의 복수다.
고통만큼 천사 같은 것은 없다.
「아름다운 나날」의 주인공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살아온 기숙학교가 너무 지루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숙학교에 한 여학생이 전학 오면서 온몸의 신경이 그녀를 향해 집중하는 것
을 느낀다. 아름답고 어른스러우며 어딘지 세상을 초탈한 것 같은 그녀.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그녀에게 빠져든다.
처음 보던 날부터 나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은 내가 그녀의 영혼을 가지고, 그녀와 공범이 되고, 세상 모든 것을 경멸한다는 의미였다. (12쪽)
새벽의 산책길, 친구와 주고받는 쪽지, 단짝친구, 반항심, 비밀 일기장 등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했던 “아름다운 나날”. 그녀와 닮고 싶은 마음, 그녀를 독점하고 싶은 욕망에 빠진다. 그녀와
함께하며, 그녀의 영혼을 가지고, 그녀와 공범이 되어 세상 모든 것을 경멸하고 싶다. 절대적인 그 끌림은 기쁨이기보다는 고통이다. 야릇한 쾌감이 따르는 고통이다. 그것은 또한 ‘나’를
향한 복수이지만, 그 고통만큼 천사 같은 것은 없다. 「프롤레테르카호」의 주인공 ‘나’는 아버지와 단둘이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핏줄이 이어지지 않은 아버지 요하네스는, ‘나’에게 방학 때만 만날 수 있는 낯선 타인이다. 부녀가 함께 떠
난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 자살과 파산, 이혼 등 어둠으로 점철된 가족사의 무게는 “유령처럼” 그들을 따라다닌다. 딸은 절대 균형을 잃지 않았다. 균형을 잃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처럼. 그들은 언제나 절망 속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도록 1밀리미터 오차까지 감지할 줄 알았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못한 아버지와 ‘나’는 그 여행 내내 서로를 거북해한다. “모든 시간이 죽어 있”고, “정체되어 있”는 여행, 육지에 내리기 전까지 “지극히 단순하고도 끔찍한 무력감”을 벗어날 수 없는 여행. 이 여행이 그들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다만 느낄 수 있는 세계”를 예리하게 조각하는 작가 플뢰르 이애기”
플뢰르 이애기는 이탈리아어를 모국어로 하는 스위스 작가다. 스위스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녀의 작품마다 진하게 배어 나오는데, 「아름다운 나날」에서도 작가는 목가적이고 서
정적인 풍경으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담아낸다. 하지만 이애기의 작품에 유년 시절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스위스 산골
마을을 전전하며 자라는 동안, 그녀 역시 한없는 고독감, 절대적이고 영원한 관계에 대한 집착, 순수함에 대한 갈증을 경험했으며, 그 경험들이 그녀에겐 평생 자신을 따라다닐 인생의
숙제로 남았기 때문이다. 대화와 교감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경계 너머의 세계를 더듬기 시작했다. 그녀는 세상의 “어떤 형태로도 구체화할 수 없는 것들”에 몰두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것들, 다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문학으로 재현한다. 그 미묘한 존재들, 감정들을 “숨겨지고 가려진 그대로” 묘사한다.
내 아버지라고 말하는 남자가 정말 아버지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오빠가 있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앞으로 달려나가던 그 어린아이에 대해 내가 얼마나 큰 애정을 품었는지 도
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환영에게 품은 사랑. 그러니까 보이지는 않지만 빛이 나는 것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열렬하게 죽음을 소망했던 한 어린아이에 대한 사랑. (210쪽)
그렇기 때문에 이애기의 작품에서는 흥미진진한 전개나 개성 넘치는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자폐적 성향의 한 소녀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자신의 비밀 일기장에 거침없이 풀어내는 고백에 가깝다.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 무덤덤한 독백이지만, 그 속에 흐르는 터질 듯한 불안감에 우리는 남의 비밀을 훔쳐보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듯 자기 고백적 글쓰기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 주는 이애기는, 사후에야 작가로서 평가를 내리는 이탈리아 문단의 보수적인 풍토에서도, 스위스 태생의 해외파 작가로서 이탈리아의 굵직한 문학상들을 고루 받으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푸른 잉크로 써 내려간, 소녀들의 『데미안』
『아름다운 나날』은 성장 소설 형식을 취하지만, 그곳엔 말랑말랑하고 분홍빛인, 바라만 봐도 눈부신 성장 스토리는 없다. 오히려 불완전한 세상의 속성을 너무 빨리 파악하고, 세상으
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꽁꽁 숨어 버린, 빛나는 미래를 꿈꿔 보기도 전에 이미 지쳐 버린 소녀들이 이애기 작품의 주인공들이다. 세상과 자아에 대해서 끊임없이 더듬어 가는 『아
름다운 나날』은 소녀들이 주인공인 『데미안』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은 세상을 향해 직선적으로 달려가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미지의 세계를 발
견하는 소녀들의 직관에 주목한다. 삶의 모든 자극을 온몸으로 느끼던 시기, 그래서 열병을 앓듯 신음하며 하루하루 살아 내야 하는 바로 그 사춘기. 우리는 모두 그 시기를 통과해 왔
거나, 지금 이 순간 그 시기를 살아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애기의 작품들 속에서 ‘잊히지 않는 한 문장’을 발견할 것이다. 작가의 경험과 천부적인 재능, 섬세한 감수성이 어우러져 완성
된 『아름다운 나날』은 소녀 시절의 절망과 고독을 아름답게 그려 낸, 놓쳐서는 안 될 “아름다운” 작품이다.
작가 소개
플뢰르 이애기Fleur Jaeggy
1940년 7월 3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스위스의 외딴 산골지방을 전전하며 자라야 했
던 유년기의 기억은 훗날 그녀 작품의 원천이 되었다. 로마에 정착한 뒤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토마스 베른하르트 등 당대
주요 작가들과 어울렸다. 1968년 이애기는 작가이자 편집자인 로베르토 칼라소와 결혼했고, 밀
라노로 이주해 데뷔작 『손가락을 입에 물고』를 발표했다. 그 후 『수호천사』, 『물의 형상』 등 여러
작품을 발표해 오다가 1989년 아름다우면서도 위태로운 10대 소녀의 감성을 그린 『아름다운
나날』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이탈리아의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문학상인
바구타 상과 유럽 보카치오 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또한 『하늘
의 두려움』으로 모라비아 상을 『프롤레테르카호』로 바일라테 알데리고 살라 상, 비아레조 상
등을 수상했으며, 특히 이 작품은 수전 손택이 심사하고 ≪타임≫이 뽑은 2003 올해의 책에 선
정되었다. 천부적인 글쓰기 감각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지독한 고독감을 역설적인 아름다움으
로 그려내는 이애기는, 마르셀 슈보브, 토머스 드퀸시의 작품을 번역하거나, 로베르트 발저에 대
한 평론을 쓰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희곡 작가나 작사가로 활약했다. 작가이자 평론가, 번역자
등 문단의 다양한 영역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이탈리아어 문학에 기여해 온 플뢰르 이애기는 이
시대에 꼭 기억할 만한 여성 작가다.
옮긴이 김은정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한국외국어대학
교에서 10여 년간 강의를 했고 번역 문학가로 활동했다. 지금은 미국 워싱턴 근교에서 살고 있으며
여전히 좋은 책을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아름다운 나날》, 《너에겐 친구가 있잖아》, 《눈 오
는 날》 등이 있다.
아름다운 나날 ・ 7
프롤레테르카호 ・ 111
옮긴이의 말 ・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