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슈킨 선집
희곡·서사시 편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272 | 분야 세계문학전집 272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확립한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 푸슈킨유럽 고전들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인간의 내적 갈등을 예리하게 그린 희곡권위에 도전하고 역사를 비트는 패러디로 인간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 서사시
▶ 푸슈킨은 근원 중의 근원이다. — 막심 고리키▶ 푸슈킨에게서는 가장 건조한 산문에서 저절로 놀랄 만한 방식으로 시가 꽃핀다. — 메리메
러시아 문학의 선구자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대표 희곡과 서사시를 모은 『푸슈킨 선집』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72)으로 출간되었다. 푸슈킨은 고대 및 중세 고전들과 동시대 유럽 문학에 영향을 받아 다양한 문학적 시도를 거듭하며 러시아 문학의 토대를 마련했다. 『푸슈킨 선집』에 실린 희곡과 서사시 작품들은 푸슈킨의 대표작들로 그가 영향을 주고받은 다양한 세계 문학들과의 관계가 특히 흥미롭다. 푸슈킨은 다양한 역사물과 패러디의 형태로 러시아 사회의 권위주의와 경직성, 종교와 역사 쓰기의 신화화를 비판하고 인간 본성을 심도 있게 탐구했으며 사랑과 생활에 대한 작가 자신의 고뇌까지 진솔하게 녹여 냈다. 『푸슈킨 선집』에는 그간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숨은 보석 같은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푸슈킨의 깊고 넓은 작품 세계를 오롯이 접할 수 있을 것이다.
■ 유럽 문화의 영향 속에서 태어나 다양한 예술로 무한히 재탄생하는 푸슈킨의 문학
알렉산드르 푸슈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쓴 시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시인이나 소설가 혹은 극작가 어느 한 분야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문학 세계는 실로 방대하다. 푸슈킨은 희곡, 서사시, 서정시, 소설 등 전반에 걸쳐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일구고 이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고골, 나보코프, 솔제니친, 고리키 등 근현대 러시아 대표 작가들의 발판을 마련한 작가로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라 불린다.푸슈킨의 작품들에서는 다양한 유럽 문학 작품들과의 영향 관계가 유독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역사극 「보리스 고두노프」는 『맥베스』를 비롯한 셰익스피어의 역사물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며, 푸슈킨 최초의 사실주의 작품인 서사시 「눌린 백작」은 셰익스피어가 쓴 「루크레치아의 강간」을 패러디한 것이고, 서사시 「안젤로」는 푸슈킨이 셰익스피어의 희비극 「말은 말로 되는 되로」를 번역하던 중에 탄생한 작품이다. 「『파우스트』의 한 장면」은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괴테의 『파우스트』에 바탕을 둔 희곡이며,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 영향을 받은 「석상 손님」처럼 다른 예술 장르에 영향을 받은 작품도 있다.그러나 이 관계는 결코 일방적인 수용이나 흡수가 아니다. 푸슈킨은 기존의 유럽 문학 작품들을 비틀고 뒤집어 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창조해 냈다. 셰익스피어의 역사물에 영감을 받아 쓴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역사 쓰기를 시도했으며, 「눌린 백작」에서는 패러디 형식을 빌려 셰익스피어의 역사관과 역사 서술 방식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인색한 기사」,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석상 손님」, 「페스트 속의 향연」 등 네 편의 운문 소비극(小悲劇)은 당시 러시아 극장을 지배하던 프랑스 신고전주의에 반기를 든 실험적인 작품들이다. 그런가 하면 1831년에 완성된 괴테의 『파우스트』 2부에는 1825년에 발표된 푸슈킨의 「『파우스트』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구절이 있어 이 영향 관계가 상호적인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이들 작품에는 19세기 초 뒤늦게 유럽 문화에 합류한 당대 러시아 문화, 러시아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던 푸슈킨의 치열한 고민과 애정이 녹아 있다. 푸슈킨은 다양한 실험과 끊임없는 도전으로 세계 문학 속 러시아 문학의 독보적인 위치를 정립했으며, 그의 작품들은 러시아를 넘어 전 세계가 인정하는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에서 연극, 오페라,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로 무한히 재탄생하고 있다.
■ 천재적인 역사극 「보리스 고두노프」와다양한 고전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인간의 내적 갈등을 그린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는 셰익스피어의 역사물을 접한 푸슈킨이 카람진의 『러시아 국가사』를 참고해서 쓴 뛰어난 역사극이다. 1598년 표도르 대제가 사망한 후 옥좌가 비자, 백성들은 디미트리 황태자를 살해한 보리스를 그 자리에 올리려 한다. 보리스는 전략적으로 이를 거절하고, 백성들에게서 억지 눈물까지 짜내는 것으로 정통성을 확보한 후에야 황제 자리를 받아들인다. 그러던 중 야심찬 젊은 수도사 그리고리가 자신이 디미트리의 화신이라며 참칭자로 나타나 폴란드와 가톨릭 세력을 업고 러시아를 침공한다. 계속되는 불안과 자기 내부의 갈등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보리스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귀족 및 대신 들은 자연스럽게 참칭자의 편에 선다. 1605년 6월 모스크바 폭동이 일어나고, 보리스의 아내와 아들 페오도르가 살해된 뒤 참칭자가 황제에 등극한다. 통치자의 정체성과 정통성에 대한 푸슈킨의 관심과 문제의식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누구나 옷만 갈아입으면 통치자가 될 수 있으며 통치 행위는 실상 잘 짜인 연극이라는 메시지가 극 전체에 배어 있다.「『파우스트』의 한 장면」은 푸슈킨이 괴테의 『파우스트』 1부 내용 중 ‘권태’라는 문제에 주목해서 쓴 희곡이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대화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룬 바로 그 순간 권태를 느끼고 모든 것을 파괴하기에 이르는 인간의 속성을 보여 준다.「인색한 기사」,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석상 손님」, 「페스트 속의 향연」은 푸슈킨의 창작이 만개를 이룬 이른 바 ‘볼디노의 가을’ 시기에 탄생한 작품들이다. 「인색한 기사」는 몰리에르의 『수전노』 등에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분별없이 돈을 쓰면서도 인색함을 보이는 아들과 돈을 모으기만 하면서 소비하는 상상으로 쾌락을 느끼는 아버지가 돈 앞에서 파멸로 치닫는 모습을 보여 준다.「모차르트와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 대한 푸슈킨의 지대한 관심이 반영된 작품으로 피터 셰퍼의 연극 「아마데우스」와 영화 「아마데우스」의 근간이 되었다. 천부적인 재능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소진하는 모차르트와 금욕적인 예술혼 뒤에 천상의 음악에 대한 욕망과 질투를 숨긴 살리에리의 갈등과 파멸을 그렸다. 「석상 손님」에서는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와 호프만의 ‘돈 후안’을 토대로, 자유롭게 현재를 즐기는 삶을 살다 사랑에 빠지자 규범과 과거에 집착하며 결국 죽은 이의 석상에 결투를 청하는 ‘돈 구안’이라는 독창적인 인물을 탄생시켰다. 「페스트 속의 향연」은 당시 콜레라 때문에 모스크바로 돌아갈 수 없게 된 푸슈킨이 존 윌슨의 『페스트의 도시』를 읽고 치명적인 전염병이라는 소재를 자신의 비극으로 재창작한 작품으로, 공포와 즐거움이 공존하는 향연 속에서 죽음을 직시하고 그것에 맞서는 즐거움을 주장하는 인물이 등장한다.푸슈킨은 비극의 핵심이 인간의 내적 갈등을 드러내는 데 있다고 보고, 이들 작품에서 대립하는 두 인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한 인간 내부의 모순과 그것이 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촉발되는 양상을 빈틈없이 그렸다.
■ 「집시」, 「폴타바」 등 인간의 본성과 인간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긴 서사시
「집시」는 푸슈킨이 황제를 겨냥한 풍자시로 인해 유배되었던 남부에서의 생활을 청산하며 쓴 작품으로, 자유와 열정, ‘다른 것’에 대한 동경이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치면서 생기는 갈등과 비극을 그렸다. 주인공은 가장 자유로워 보이는 집시 사회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고 근심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한 환상으로 그곳에 발을 들였다가 문화적인 충돌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다. 불완전하고 불합리한 인간과 현실에 대한 푸슈킨의 인식이 유배 이후 한층 깊어졌음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 메리메의 소설 『카르멘』과의 연관이 두드러진다. ‘폴타바 전투’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폴타바」에서는 아버지 코추베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스스로를 미치게 만든 마리야의 눈먼 사랑, 권력을 잡기 위해 적국 스웨덴과 손을 잡고 반역을 꾀하다 쓸쓸히 최후를 맞은 마제파의 야욕, 마리야의 이름을 부르며 싸우다 전사한 카자크 젊은이의 순정 등 역사의 한 장면을 구성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열정이 파국을 부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한편 푸슈킨의 서사시 작품들에서 패러디 형태가 빈번하게 사용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신성모독적인 성격 때문에 20세기에 와서야 출판된 「가브릴리아다」는 성경에서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한 이야기와 이담과 이브의 원죄에 관한 이야기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마리아가 신과 가브리엘 천사와 사탄의 유혹을 동시에 받아 관계를 맺는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당시 자유사상에 빠져 있던 푸슈킨은 이 작품을 통해 종교적 신비주의와 권위주의에 도전하고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는 기쁨을 노래했다. 셰익스피어의 「루크레치아의 강간」을 패러디한 「눌린 백작」에서는 여성의 정절을 강탈한 남성 때문에 역사가 바뀌었다는 부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비장한 어조로 노래하는 셰익스피어의 역사관과 서사 구조를 비판하며, 여인은 정절과 금욕의 화신이 아니고 남자는 욕망 때문에 쉽게 파멸하지 않으며 정절의 문제로 역사는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신화 창조로서의 역사 쓰기를 타파한다.규범과 관습이 현실의 복잡성과 인간의 본성 앞에서 힘을 잃는 모습을 통해 인간이 정한 절대적 원칙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안젤로」, 대도시 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난 대홍수를 소재로 권력과 민중, 이성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이들이 어우러져 이루는 역사에 대해 고민한 「청동 기사」, 전쟁을 예고하는 황금 수탉을 받은 황제가 그것을 선물한 예언자와의 약속을 어겨 죽음을 맞이한다는 이야기에 자신과 아내, 황제의 관계를 빗댄 듯한 「황금 수탉」 등에도 사적인 갈등에서부터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푸슈킨의 진지한 통찰이 담겨 있다.
▶ 차례
희곡 편
보리스 고두노프 7
『파우스트』의 한 장면 133
인색한 기사 141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165
석상 손님 181
페스트 속의 향연 217
서사시 편
가브릴리아다 231
집시 259
눌린 백작 289
폴타바 309
안젤로 385
청동 기사 417
황금 수탉 445
작품 해설 457
작가 연보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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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은 좀 더 통곡하며 울부짖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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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ostein | 2019.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