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한국어 – 문지혁
어떻게 한국어수업을 이렇게 풀어낼 수 있을까? 모국어, 한국어, 가족, 타지에서의 생활, 그런 서러움 등 한국어 수업 하나로 펼쳐지는 이 이야기들이 마음아프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기도 한다. 주인공 스스로 자문하고 자답하는 형식에서 오는 재미도 있고, 일기같기도 하고… 중급, 고급한국어도 기대하게 되는 책.
- 잘 지내냐는 말은 무력하다. 정말로 잘 지내는 사람에게도, 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도.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잘 지낸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오히려 나의 진짜 ‘잘 지냄’에 관해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수업 시간 내낸 ‘How are you?’와 ‘어떻게 지내요?’, ‘I’m doing good’과’잘 지내요’를 기계적으로 말하고 반복하고 따라 하게 하면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크고 분명하고 자신감 있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그 언어가 갖는 본래의 의미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누군가에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언제였더라. 받아쓰기 시험지를 나눠 주며 나는 아무도 진심으로 묻지 않는, 아무에게도진심으로 대답하지 않는 나의 안부에 관해 잠시 생각했다. Am I doing good?
- 서른을 앞둔 지금에서야 나는 깨닫는다. 그녀는 책방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러 나를 데려갔던 것이 아니라, 나를 서점에 데리고 가기 위해 책방 아주머니와 친해져야 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목적은 대화가 아니라 책이었고 아들이었다. 아이가 자연스레 책을 읽는 그 몇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어머니는 별다른 내용도 없는수다를 몇 시간이고 계속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기자에게 여행에 필요한 개인 정보를 묻는 전화가 오자 엄마는 일정에 주일이 끼어 있다며 가지 않겠다고 했다. 온천 때문에 예배에 빠질 수는 없지. 전화를끊으며 엄마는 말했다.
- 기말고사를 앞두고 수업 내용을 정리하면서 학생들에게 유튜브 영상을 보여 주었다. 이번 챕터 본문에 나오는 서울의 ‘광화문 광장’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 영상을 보고 난 뒤 학생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선생님도 저기 걸어 본 적 있어요?” 나는 뭐라고 대답하려다가 그냥 웃고 말았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