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8호 콘텐츠
콘텐츠란 뭘까? 아니, 콘텐츠가 아닌 건 뭘까? 디지털 세상을 떠다니는 모든 내용물을 보고, 듣고, 만들고, 파느라 산만한 오늘날 소셜 미디어에 중독된 이용자들의 이득과 손해의 정체는 뭘까? 내용이 중요할까, 형식이 문제일까? 불안하고 우울한 매일매일을 채우는 모든 이야기가 돈으로 바뀔 수 있는 세상에서 균형 잡을 방법을 제안하는 한편의 인문학.
콘텐츠를 대하는
우리의 감각
콘텐츠라는 말 앞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왜 그런 말을 쓰는 거지?’ ‘뭐라고 하는지 볼까.’ 하거나 ‘무슨 콘텐츠 이야기일까?’ ‘얻을 만한 게 있을까?’ 하고 반응한다. 콘텐츠에 거리를 두거나, 뛰어들거나.
디지털 세상에 떠다니는 모든 내용물을 보고, 듣고, 만들고, 파느라 바쁜 오늘날이다. SNS에 중독된 이용자들이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얻는 이득과 손해의 정체는 뭘까? K-콘텐츠의 득세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불안하고 우울한 매일매일을 채우는 모든 이야기가 돈으로 바뀔 수 있을 때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인문잡지 《한편》은 이런 질문을 품고 철학에서 미학, 인류학, 사회학, 법학, 문학, 언론학, 과학기술학까지 콘텐츠에 관한 열 편의 글을 실었다.
콘텐츠를 둘러싼
지긋지긋함,
사건 사고에서
생산 원칙까지
요즘에는 거장의 영화에서 고양이 동영상까지 전부 콘텐츠라 부른다고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는 말했다. 시네마의 저무는 영광을 안타까워하는 발언으로부터 철학 연구자 이솔의 「산만한 나날의 염증에 관하여」가 시작한다.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허우적거리거나, 그 속에 뛰어들어 무한 복제의 흐름에 몸을 맡기거나. 후자가 이 글이 보는 콘텐츠 시대의 생존 지침이다. 미술비평가 콘노 유키의 「핫플레이스의 온도」는 사진 찍기 좋은 ‘핫플’이 막상 뜨겁지는 않은 배경으로 아무렇지 않게 물러나는 기제를 분석한다. 미술작품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떠나가는 인파 속에서 작품도 작품의 배경도 매끈하고 쾌적한 콘텐츠가 되어 버린다. 불면의 밤 볼거리를 찾아 헤매는 지긋지긋함의 감각을 포착하는 두 편이다.
이어지는 두 편은 유튜브의 동물콘텐츠 구독자, 아이돌 콘텐츠를 즐기고 직접 만드는 팬덤에 대한 현장 연구다. 인류학 연구자 김윤정은 「귀여움이 열어젖히는 세계」에서 동물콘텐츠의 힘을 이야기한다. 동물 영상 구독자들의 “귀여워……”란 말은 개의 눈매, 고양이의 앞발이 귀엽다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 그들의 귀엽다는 발화는 콘텐츠 속 동물을 향해 자기 세계를 여는 발화점이라는 주장이다.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신윤희는 「아이돌 팬이라는 콘텐츠」에서 아이돌의 영상 통화 팬 사인회(‘영통팬싸’) 관찰기를 풀어놓는다. 그의 연구에서 팬덤은 그들만의 이상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현상’이 아니라, 서로 친절하게 즐길거리를 공유하며 스타와 함께 사건 사고를 헤쳐 나가는 ‘주체’다. 두 연구자는 연구의 대상이자 그 자신이 속한 집단을 거리낌 없이 옹호하고 있다.
한편 우리가 사는 온라인 세계는 조리돌림과 악플이 사람을 해치는 공간이다. 독립 큐레이터 천미림의 「범죄물을 대하는 자세」는 범죄 콘텐츠의 재미와 실제 사건의 무게 사이에서 인간이 잔혹한 이야기를 즐긴다는 역설을 분석한다. 범죄 실화를 다루는 작품의 미적 형식과 도덕적 내용 구분하기가 실마리이니, 만물을 ‘콘텐츠’로 일컫는 무심함에 브레이크를 잡는 철학적 탐구다. 법학을 연구하는 허지우의 「“그거 이차가해 아닌가요?”」는 가해자가 고발되는 즉시 세워지는 온라인 법정을 탐구한다. 관심을 주고 재미를 얻는 경제 속에서 하자 있는 상품을 즉각 단죄하려 드는 우리의 마음이 판결을 요구한다. 콘텐츠 시대 특유의 폭력을 염두에 둔 두 편의 글이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세요!”
지난 역사와 오늘날의 이야기
‘모든 것이 콘텐츠’인 시대에 문자 매체는 콘텐츠 시장의 가장 뒷줄에 서 있다. 이 시점에 지난날을 돌아볼 여유를 선사하는 두 편을 소개한다.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과 『조선잡사』를 쓴 장유승은 한달음에 보는 동아시아 책의 역사를 펼쳐놓는다. 「조선 사람이 선택한 콘텐츠」에는 조선 후기 소설에 빠진 여성과 하층민들, 그들에게 독서인 정체성을 뺏기고 싶지 않았던 사대부들이 등장한다. 『세계문학의 구조』의 저자 조영일은 「콘텐츠 시대의 예술작품」 쓰기를 시도한다. 지난 20세기에 예술작품이 기술적으로 복제되기 시작했다면, 「오징어 게임」이 방영 17일 만에 1억 1100만 뷰를 올린 지금 복제되는 것은 알고리즘에 끌려다니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다시 21세기로 돌아온 요즘 세상에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세요!’라는 구호는 콘텐츠 생산이라는 환상을 부추긴다. 솔직함을 팔라는 제안에 어떻게 응하면 좋을까? 마지막 실천편에서는 생산 방식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기자 정민경의 「‘되는 이야기’ 만드는 법」은 뉴미디어 시대에 기자 또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일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공유한다. 과학기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김찬현의 「막힌 곳을 뚫는 과학」은 전문가, 비전문가, 시민이라는 구분을 넘나든 소통 경험을 전한다. 물론 모두가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으며, 우리 시대의 과제인 기후변화는 거대하다. 그럼에도 막힌 말문이 뚫리는 순간의 즐거움이 동력이 된다.
새로운 세대의 인문잡지 《한편》
《한편》의 편집자가 만드는 ‘탐구’ 시리즈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생각은 한편의 글에서 시작되고 한편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2020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글 한편 한편을 엮어서 의미를 생산한다. 민음사에서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글을 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한편》 8호 ‘콘텐츠’에 적용된 글꼴은 블레이즈페이스 한글체.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듯한 풍성함과 유기적인 곡선이 특징이다. 인문잡지 《한편》은 연간 3회, 1월·5월·9월 발간되며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동물’, ‘일’, ‘권위’, ‘중독’, ‘콘텐츠’에 이어 2022년 9월 ‘외모’를 주제로 계속된다.
8호를 펴내며 좋은 콘텐츠 생산하는 법
이솔 산만한 나날의 염증에 관하여
콘노 유키 핫플레이스의 온도
김윤정 귀여움이 열어젖히는 세계
신윤희 아이돌 팬이라는 콘텐츠
천미림 범죄물을 대하는 자세
허지우 “그거 이차가해 아닌가요?”
장유승 조선 사람이 선택한 콘텐츠
조영일 콘텐츠 시대의 예술작품
정민경 ‘되는 이야기’ 만드는 법
김찬현 막힌 곳을 뚫는 과학
참고 문헌
지난 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