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죽었고, 폭력적인 거장은 처벌되었다. 억압자에 대한 ‘아니오’가 폭발하는 지금, 권력보다 부드럽지만 영향력보다 강한 권위라는 힘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가정과 조직 생활, 정치 세계에서 우리가 원하는 권위는 무엇인가? 가부장제의 불능과 무한한 자유의 피로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한편의 인문학.
‘아랫사람‘을 멸시하는
폭력적인 권위주의자에게
‘아니오’라고 말했을 때
권위자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권위를 인정하는 권위자가 부당한 지시를 한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에 거부하는 순간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무시당하거나 벌을 받거나,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 대화를 시도하기보다 그냥 잠자코 따르는 쪽이 쉬워 보이기도 한다. 만약 권위주의적인 의사 결정에 반대한다면, 대안은 무엇이냐는 반문이 돌아온다. 새로운 질서는 저절로 서지 않는다.
하지만 폭력적인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2016년 권력자의 성폭력을 고발한 미투 운동 이래로 전통적인 권위와 새로운 질서 사이의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지만, 집에서나 학교, 일터에서 상대방을 ‘인간 아래’로 찍어 누르는 권위주의가 출몰한다.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에너지는 또 다른 지도자를 향한 열망으로 이전되기도 한다.
2021년 가을 찾아온 인문잡지 《한편》은 이처럼 권위를 둘러싼 딜레마를 정치와 연극 무대, 지식이 생산되는 학교에서 간병인이 일하는 병실까지 열 곳의 현장에서 탐구한다. ‘만들어진 역사와 만들어지는 역사’가 교차하는, 때로 무시무시하게 감정적이고 어마어마하게 벅찬 과정이다.
아버지 세대를 살해하겠다 (X)
그들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 (O)
우리가 법의 판결에 따르고 어려운 고전을 애써 읽듯, 권위란 따르는 이의 자발적 복종으로 성립한다. 백성을 보살피는 왕, 식구를 먹여 살리는 가부장의 권위가 더는 인정받지 못하는 21세기 한국에서 권위 탐구의 목표는 무엇일까? ‘예의를 지켜라’ 운운하는 정치인, 예술을 방패 삼는 폭력적인 거장처럼 여전히 흔한 권위주의를 뒤로하기 위해서다.
영원히 자기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뻣뻣하고 무감한 권위와 달리, 수평적이고 상호적인 권위에 대한 요구는 열등감과 자부심, 분노와 사랑의 감정과 함께한다. 살림을 함께 경영하고(홍혜은) 아픈 사람에게 몸을 기울이고(서보경) 동료의 안전을 돌본다는(정진새) 원칙이 출발선이다. 개인을 짓누르는 정파 논리와(조무원) 국가가 부추기는 국민감정(김유익),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박상현)의 스케일이 압도하지만, 정확하고 합리적인 언어를 사용해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역량인 ‘문해력’이 우리의 무기다.(권수빈, 김미덕, 박유신)
권위 비판은 종종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다’ 또는 ‘윗세대를 타도하겠다는 거냐’는 권위주의로 화답받는다. 위로 눈을 치켜뜨기보다 옆으로 시선을 던지는 《한편》은 가 본 적 없는 길을 찾다가 “마치 일부러 그러기라도 하는 듯 구불구불”(정경담)한 미로에 맞닥뜨린 독자에게 하나의 징검돌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인문잡지 《한편》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생각은 한편의 글에서 시작되고 한편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2020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글 한편 한편을 엮어서 의미를 생산한다. 민음사에서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글을 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한편》 6호 ‘권위’에 적용된 글꼴은 칠곡할매 추유을체.(디자인 유진아)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운 경상북도 칠곡군의 추유을 할머니의 곧은 글씨체가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권위를 표현한다. 인문잡지 《한편》은 연간 3회, 1월·5월·9월 발간되며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동물’, ‘일’에 이어 2022년 ‘중독’ 그리고 ‘콘텐츠’를 주제로 계속된다.
6호를 펴내며 ‘아니오’라고 말한 후
조무원 왕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홍혜은 서로 돌보는 법을 알아가기
서보경 살리는 일의 권위
정진새 거장이 처벌받은 후
정경담 권위에서 탈출하는 길
김유익 중국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
권수빈 지방청년은 말할 수 있는가?
김미덕 대학조직과 연구의 원칙
박유신 당신을 위한 문해력
박상현 우리가 원하는 기후행동
참고 문헌
지난 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