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의 분위기와 흐름을 어느정도의 예상하며 책장을 넘겼던 나는 <병 속에 든 원고>를 첫 편으로 읽으며 큰 혼란에 빠졌다. 우선, 내가 상상하던 공포소설이 아니었고, 두번째로 묘사가 너무 세세하고 길어서 읽어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 느낌은 <타원형 초상화> 부터 조금씩 사라졌는데, 포가 단순히 그로테스크하고 음습한 소설만 쓰는 작가는 아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검은고양이>가 현대 공포물의 원형과도 같은 작품이라 가장 친숙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이나 <아몬티야도 술통>처럼 놀라운 수준의 과학적 지식과 상상력이 글감이 되었다는 점, <군중 속의 사람>이나 <윌리엄 윌슨>이 인간의 심리를 내밀하게 묘사해내고 있다는 점 등에서 포의 작품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애석할 정도였다.
포의 작품은 1800년대 초에 쓰여졌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참신하고 독특하다. 묘사력과 문장력도 대단한데(처음에는 읽어나가는데 장애물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이야 시각적 자료를 쉽게 구하거나 활용할 수 있기에 상상속에 있는 것들을 실체화시키는데 큰 어려움이 없지만, 삽화조차 넣기 어려웠던 그 시대에는 글만으로도 독자들이 소설 속 배경을 그려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의 묘사가 그토록 자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게 또 포 작품의 정체성이기도 할 것이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은 <군중속의 사람>, <깡충 개구리, 혹은 사슬에 묶인 여덟 마리의 오랑우탄>, <소용돌이 속으로>를 꼽겠다. 루팡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뒤팽이 등장하는 추리소설 <도둑맞은 편지>는 내 취향이 아니었기에 가장 별로였다.
포의 인생은 꽤나 기구했는데, 양아버지와의 불화, 아내와의 사별, 약혼자와의 파혼, 경제적 궁핍, 대학 중퇴 등의 사건들이 그의 작품 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것이다. 특히 그는 소설가로서의 꿈이 있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편집자, 문학평론가 등의 일을 병행했기에 단편을 주로 썼고, 장편은 없다. 포가 경제적으로 부유해 전업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걸작이 나왔을지,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무쪼록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중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인 것 같아 고전문학에 도전하고 있다면 추천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