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자주 듣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윤리적이고 유익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들을 때 마다 급발진한다. 특히 아동이나 청소년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다루는 편을 들을 때 너무 화가 나서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그런데 그만큼 두분 합이 너무 좋고 재미있고 범죄영화를 오락적으로 소비하지 않아서, 불편하면서도 불편하지 않게 들을 수 있다.
1. 나는 미성년자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관대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구체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막연히 나의 14세 즈음의 모습을 떠올리며,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미성년자의 범죄를 성인 범죄자의 그것과 같은 선상에서 처벌하는 게 옳지 않다고 느꼈다. 또한 그 나이대의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의 문제인데, 미성년 범죄자’만’ 엄벌에 처하는 게 결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범죄를 저지르는 미성년자가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쫓아가다보면 결국 이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는 점에서 엄벌주의는 결코 해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방송을 들으면서 미성년자의 범죄 행위에 대한 엄벌주의가 왜 피상적인 대책이며 실효성이 없는 방안인지 구체적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미성년자의 범죄의 배경에는 늘 학대하고 방임하는 가정이 있다는 것, 학대하고 방임하는 보호자와 아이를 떨어트려 놓지 않고 친권을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고, 가정에서 나와 재교육 재사회화 할 수 있는 시설과 쉼터가 턱없이 부족하고, 이런 시설들을 만드는 정책은 인기있는 정책이 아니기 때문에(왜냐하면 학대 피해자는 미성년자라 유권자가 아님) 늘 뒤로 밀려난다는 것, 사회는 저출생이 문제라며 온갖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정책을 쏟아내는데 막상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잘 키우려는 것에 대한 정책 없다는 것, 가정과 학교에서 외면당한 아이들을 교화하고 잘 돌보려는 시도 대신 엄벌주의로 낙인찍어 버리는 일이 개인과 사회에게 치명적이라는 것, 그런데 미성년자들의 범죄에 대한 기사가 오르내릴 때 마다 ‘성인과 똑같이 처벌해라’ ‘어리다는게 무슨 권력이냐’ ‘저런 애들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 등의 댓글’만’ 여론으로 인식하고 엄벌주의를 다시 정책으로 들이민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벌하면 미성년자 범죄자는 형을 마치고 나와서 성인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 더 재미있던 사실은, 1998년 외환위기 때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그 가정에 있던 아이들이 지금의 성인 범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형사 미성년자 연령은 14세에서 13세로 낮춰졌다.
2. 범죄의 타깃이 되기 가장 쉬운 집단은 여자아이들이다. 방송에서도 10대나 그 이하의 여자아이들이 피해자로 등장하는 영화에 대해서 많이 다루는데 들으면서 정말 화딱지가 나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듣고 있는 이유는 나 뿐만 아니라 방송 진행하고 있는 두 사람도 같이 화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생각보다 범죄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이 주변에 많을 것이다. 멀리 있는 타인의 삶이라 잘 모를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던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여성 청소년에 대한 범죄를 다룰 때, 간혹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상황판단을 못 했더라면 , 운이 안 좋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이 방송을 들으면서 계속 하게 된다.
3. 또 유심해서 들었던 부분은 가스라이팅이나 사이비 종교처럼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고 장악하는 범죄 유형. 고등학생 때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를 읽고 옴진리교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왜 도쿄대까지 나온 똑똑한 사람들이 그런 허무맹랑한 종말론을 믿는 사이비에 빠지는지 궁금해 했던 거 같다. 지금은 자신이 처한 고통을 종교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어떻게 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이비에 덫에 빠진다는 게 참 안타깝고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신천지에 빠지는 많은 수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한편, 내가 피해자들처럼 취약한 상황에 놓였다면 나에게 접근하는 사이비 신도들을 완강하게 쳐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그래서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젊은 사람들을 떠올리면 광신도라는 이미지보다 의지할 곳 없고 여리고 세상 물정 모르는 모습이 더 연상된다.
가스라이팅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무섭다. 범죄라고 특정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일어나고, 은밀하고 교묘하게 파고드는 목소리이기 때문에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 할 수도 있다. 한 인간의 취약한 점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성인인 나는 스스로의 취약성을 어떻게 관리하고 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수정-이다혜 두 사람의 합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아서 듣지 않고 있었던 시간이 길었는데, 막상 듣고 나니까 두 분의 케미가 너무 신선하고 재밌었다. 이수정 교수가 내놓는 전문가의 통찰과, 허점을 파고드는 이다혜 기자의 질문이 마치 잘 짜여진 쇼를 보는 것 같다. 이다혜 기자는 범죄학 전공자도 아닌데 거의 모든 사건을 알고 있다;; 정말 정말 박학다식하고, 무엇보다 감탄한 부분은 엄청나게 긴 문장을 쉬지않고 한 번에 말하는데도 청취자가 듣기에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설득력있게 말한다는 것이다. 차분하고 높은 목소리로 긴 문장을 한 호흡에 말하는 이다혜 기자와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툭툭 내뱉듯이 단문으로 말하는 이수정 교수, 둘의 목소리의 합이 굉장히 잘 맞는다. 이다혜 기자의 지식 수집벽에 가까워 보이는 박학다식함 뿐만 아니라 모든 사건과 피해자에게 깊게 공감하는 모습도 굉장히 인상깊었다. 기자님의 SNS를 보면 사람이 참 강하면서도 여린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성격이 높은 공감능력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여리다고 무조건 공감능력이 좋다는 건 아니다).물론 이다혜 기자가 여성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