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인

로베르트 무질 | 옮김 강명구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0년 4월 3일 | ISBN 978-89-374-2967-5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3x188 · 136쪽 | 가격 9,800원

시리즈 쏜살문고 | 분야 쏜살문고

책소개

어쩌면 수수께끼, 차라리 신비에 다다른 이야기
가끔씩 선하고 때때로 짓궂은, 기묘하고 무심한 운명의 실타래

살다 보면 계속 이대로 갈지 아니면 방향을 바꿀지 망설여지는 순간처럼 눈에 띄게 주춤할 때가 있다. 그런 시기에는 불행에 빠지기 쉽다. -「그리지아」에서

고양이는 모든 사람의 고통을 대신하고 있었다. 고양이의 순교가 시작되었다. “신이 인간이 될 수 있다면 고양이도 될 수 있어요.” -「포르투갈 여인」에서

통카는 일상적인 언어로 말하지 않고 삶 전체를 담은 언어로 말했기 때문에 남들이 어리석고 둔감하다고 여겨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통카」에서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로베르트 무질.” -밀란 쿤데라

편집자 리뷰

헤르만 브로흐,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와 더불어 현대 독일 문학의 기념비적 작가이자 “독일어로 쓰인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 평가받는 『특성 없는 남자』의 저자, 독보적인 문학 세계와 파격적이 서술 기법으로 오늘날까지 꾸준히 연구되는 문제적 소설가, 로베르트 무질의 연작 소설집 『세 여인』이 민음사 쏜살 문고로 출간됐다. 1880년 오스트리아 소도시에서 태어나, 격동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무너져 가는 과거 질서와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현대 문명의 분류(奔流)를 또렷이 목격하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새로운 과학 기술과 인간 이성, 끝없이 발전해 나아가는 자본주의의 지배 아래 성장해야 했던 로베르트 무질은, 당대의 흐름과 영합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영혼이었다. 무질은 출세와 안정적인 삶을 바라던 부모의 권유에 따라 군사 학교에 입학하지만 구태(舊態)의 ‘올바른 시민성’만을 강요하는, 이른바 존재의 다양성을 말살하고 오로지 순응과 복종을 강압하는 교육 체계에 적응하지 못한다. 경직되고 관습적인 ‘시민 계급 이데올로기’에 염증을 느낀 무질은 결국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기술 학교에 들어가서 기계 공학, 수학 등을 익히지만, 이 또한 그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었다. 마침내 자기 정체성에 눈을 뜬 무질은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하고, 자신이 느끼는 주체의 위기와 시대적 불안을 심도 있게 탐구하고자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역사는 진보를 향해 질주하는 증기 기관차인가, 인간 존재는 단일하고 평면적인 주체로 통합될 수 있는가, 우리 이성을 신뢰해도 되는가, 과학 기술이 이 세계의 수수께끼를 전부 해명해 줄 수 있을까? 로베르트 무질의 ‘혼란’은 그가 쓴 작품 속에 오롯이 남아 있다.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경고대로 ‘서양의 몰락’을 실감하던 무질은, 도금된 듯 눈부시게 발전하는 유럽 사회 이면에 자리한 부조리와 그 증상으로서 나타난 세계 대전, 대공황 등을 몸소 체험하며 시민 사회가 천연덕스럽게 웅변하는 모든 미래상이 실상 허구나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예감한다. 데뷔작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필생의 대작이자 ‘20세기 최고의 독일 문학’으로 선정된 『특성 없는 남자』에 이르기까지, 무질은 ‘나 그리고 세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일관되게 제기하며 현대 문명과 그 수라장 속에 자리한 인간 존재를 집요하게 궁구한다. 『세 여인』에 수록된 세 편의 작품 또한 동일한 주제 의식을 공유한다. 애초에 ‘연작’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들은 아니지만, 혼란과 불안에 시달리는 인간 군상을, 무질만의 독특한 문체와 서사 구조를 통해 보여 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공통성을 지닌다. 「그리지아」의 주인공 ‘호모(인간)’는 숨 막히는 시민 계급 이데올로기를 의심하며 원시 공동체 사회를 방불하게 하는 어느 산악 마을로 찾아든다. 호모는 그곳에서 새로운 열정, 대자연의 부름, 참된 깨달음을 얻고, 환멸 가득한 지난날을 잊고 지우려 하지만, 짓궂은 운명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중세 봉건제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포르투갈 여인」은, 오로지 전쟁에 굶주린 케텐 영주의 삶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리고 현대 대도시를 무대로 하는 「통카」는, 이성을 중시하는 주인공 ‘아무개’와 ‘단편적인 언어로는 아무것도 표현할 줄 모르는’ 통카의 위태로운 관계를 보여 줌으로써 오늘날 인간 존재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조화’를 담담하게 촉구한다.
로베르트 무질의 작품은, 마치 인생처럼 미리 답을 준비해 두지 않은 질문의 연속이다. 그는 명확한 해답을 들려주는 대신에 물음에 물음을 거듭한다. 책은 여기서 끝나지만, 이제 당신(독자)의 삶이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재촉하고 있다고, 일러 주려는 듯이.

■ 책 속에서

이상하게도 꽃이 만발한 숲 주변 초원의 이미지가 그의 흥분된 감정과 결합되어 있었다. 미래를 동경하면서도 자신이 이 아네모네와 물망초, 난초, 용담과 멋진 녹갈색의 승아 사이에서 죽은 채로 누워 있게 되리라는 예감을 느꼈다. 그는 이끼 위에 몸을 쭉 뻗고 누워서 “어떻게 너를 저 너머로 데려가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긴장이 풀리기 직전의 미소 지은 얼굴처럼 몸은 굳어 피로해졌다. 지금껏 자신이 현실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인간이 스스로를 다른 모든 인간들과 다른 존재로 느끼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인 일이 있을까?
수많은 존재들 가운데 하나가 자신의 몸과 내면에 종속된 듯 느껴지는 것, 그래서 그 존재의 배고픔과 피곤함, 청각과 시각이 자신의 육체와 밀접하게 이어지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인 일이 있을까? (……) 모든 세속적인 생각들은 자취를 감추고 권태나 부정(不貞)의 가능성도 사라졌다. 잠깐의 경솔함 때문에 영원을 희생시킬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처음으로 사랑이 숭고한 성사(聖事)라고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삶을 이렇게 고독하게 바꾸어 놓은 신의 섭리를 인식했다. 발아래 금은보화로 가득한 대지가 이제는 세속적인 보물이 아니라 그에게 배정된 마법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리지아」에서

그에게 익숙한 생활은 전략이나 정치적 기만, 분노와 살생이었다! 모든 사건은 이전에 일어난 다른 사건 때문에 일어난다. 주교는 금화를 믿었고 케텐 영주는 귀족들의 저항 정신을 믿었다. 명령은 분명하다. 이런 삶은 명백하고 확고부동하다. 갑옷이 밀려났을 때 목덜미 아래를 창으로 찌르는 일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거다!’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삶은 달만큼이나 멀고 낯설다. 케텐 영주는 그 낯선 삶을 내심 사랑했다. 규칙이나 재정 운영, 부의 축적에는 흥미가 없었다. 다른 나라의 영토를 빼앗으려고 몇 년째 싸우고 있지만 그가 갈망하는 것은 승리를 통한 평화가 아니었다. 진정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 케텐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꽃이 만발한 들판을 달리다가 말이 반항하고 요동치면 박차를 가해 말을 달래며 달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럴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자기와는 다른 삶을 모른다 해도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으며, 죽고 사는 일은 다 마찬가지니 말이다. 이런 삶은, 가만 들여다보면 불속으로 살그머니 들어가는 일, 꿈을 꿔서 뻣뻣해진 몸을 일으켜 뒤돌아봤을 때 사라져 버리는 것들을 부정하고 몰아내 버렸다. 케텐 영주는 자신에게 온갖 짓을 저지르게 하는 주교를 생각할 때면 뒤엉킨 실타래처럼 마음이 뒤죽박죽이었다. 이것을 풀 수 있는 방법은 기적뿐이었다. -「포르투갈 여인」

사물들에 관해 말하자면, 사물 자체보다도 사물이 틀림없이 거기 있다는 믿음이 더 중요했다. 세상을 세간의 눈이 아닌 자기 시각으로 보면, 세계는 밤하늘의 별처럼 슬프게 서로 떨어져 살아가는 무의미한 낱낱으로 분리된다. 창밖을 내다보기만 해도 갑자기 저 아래에서 대기하는 마부의 세계 속으로 길을 지나가던 공무원의 세계가 비집고 들어왔고, 거리는 조각나고, 구역질 나는 것들로 뒤죽박죽 뒤섞였으며, 세계 긍정과 자기 신뢰라는 궤도의 구심점에도 혼란이 생겼다. 이 모든 분리와 혼란 상태는 위도 아래도 없는 세상을 똑바로 걸어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욕망과 지식과 감정이 실타래처럼 뒤엉켰다. 그런데 우리는 실마리를 놓칠 때에야 비로소 그것을 깨닫곤 한다. 혹시 진실의 실마리가 아닌 다른 것을 통해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까? 냉정한 겉치레가 그를 다른 모든 것과 분리시키는 순간, 통카는 동화 이상의 존재였다. 그녀는 거의 하나의 소명과 같은 존재였다. -「통카」에서

목차

그리지아
포르투갈 여인
통카
옮긴이의 말

작가 소개

로베르트 무질

1880년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집안의 권유로 아이젠슈타트 초급 군사 학교, 빈 사관 학교에서 수학하였으나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기계 공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브륀 공과 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기술 분야 역시 적성에 맞지 않아서 다시 철학을 공부하고자 베를린 대학교에 들어간다. 1908년 에른스트 마흐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지만 교수직 대신 문학에 뜻을 두고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길을 선택한다. 1905년부터 20세기 문학의 기념비적 대작 『특성 없는 남자』의 초안을 쓰기 시작한다. 그 뒤로 『합일』, 『세 여인』, 『생전 유고』 등을 출간하며, 이성적 언어와 초월적 신비의 세계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1923년 클라이스트 문학상, 1924년 빈 예술상을 수상하고, 1930년 마침내 『특성 없는 남자』 첫 권을 펴낸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압제가 거세지자 스위스로 망명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하던 『특성 없는 남자』를 결국 끝맺지 못한 채 1942년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강명구 옮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여성 체험과 자아 인식: R. Musil의 『세 여인』 연구」로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로베르트 무질의 『세 여인』, 울리히 플렌츠도르프의 『젊은 W의 새로운 슬픔』, 요하네스 얀젠의 『오페라』, 모니카 그뤼벨의 『유대교』 등이 있고, 그 밖에도 『아이들이 묻고 노벨상 수상자들이 답한다』, 『네 안의 적을 길들여라』, 『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미래의 권력』 등 여러 권을 공역했다.

독자 리뷰

독자 평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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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처음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계속 읽다보니 이 작가 책을 더읽어보고싶은 마음이 듭니다 단편이지만 많은생각과 다시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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