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수놓은 최상급 베니스 레이스를 연상시키는 문장들은 오직 프루스트만의 것이며 이 문장들의 페이지를 지나 책의 끝으로 향하는 길은 프루스트를 경험하는 산책이며 이후로도 만들어내지 못한 체험이 된다.
p515
우리 늙은 하녀가 내 눈에 드러내기 전에 감싸고 있던 천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풀어 헤치는 그 수천 년 지난 화려한 미라의 향기로운 황금빛 옷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듯 그토록 아득해 보였다.
2편 #꽃핀소녀들의그늘에서 는 상류층 사교계에서 이루어진 소녀들과의 환담과 소풍, 더불어 허구적 인물인 작가와 모네가 확실한 인상파 화가 엘스티르를 등장시켜 프루스트의 예술과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을 선보인다.
p111
각기 다른 방향, 다른 시간에서 온 듯한 태양 광선이 벽 모서리를 부수고, 해변이 반사된 유리문 옆 서랍장 위로 들길에 핀 꽃과 같은 알록달록한 제단을 설치하고, 언제라도 날아갈 준비를 마친 겹쳐진 빛은 흔들거리는 따뜻한 날개를 칸막이벽에 머물게 하고, 태양이 포도밭을 꽃 줄처럼 장식하는 작은 마당 창문 앞에는 시골풍 사각형 양탄자를 목욕탕처럼 따뜻하게 덥히고, 안락의자의 실크 꽃무늬를 하나하나 드러내면서 가장자리 장식 줄을 떼어 내는 듯 보이면서 가구 장식의 매력과 복잡성을 더하는 그런 시각에, 내가 산책을 가려고 옷을 갈아입으러 가기에 앞서 잠시 지나는 방은, 바깥 광선의 다양한 빛을 분해하는 프리즘 같기도 하고, 또는 내가 맛보려 하는 낮의 꿀물이 분리되고 흩어지면서 취하게 하는 모습이 뚜렷한 꿀벌 통 같기도 하고, 또는 은빛 광선과 장미꽃잎의 파닥거림 속에 녹아든 희망의 정원 같기도 했다.
소녀들 보다는 ‘온통 금빛으로 빛나는(p151)’ 남성에 대한 묘사가 더 정성스레 느껴지는 프루스트의 동성애 정체성은 이번에 나온 7, 8권에서 자세하게 그려진것 같은데, 프루스트 글은 확실히 인상파적인 회화와 음악의 특징을 가졌으며, 교묘한 테크닉으로 세공되어 덧붙여진 허구의 이데아는 하나의 세계를 더욱 세련되고 견고하게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