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에 도전했다가 방대한 양과 지루함에 질려 몇 번을 포기하곤 그 시대(로 추정되는) 일본 문학을 피해왔다. 라쇼몬도 이름부터가 그런 느낌이 들어 잠시 기웃거리긴 했으나 읽을 생각은 않던 책이었는데(설국도..), 어쩌다 설국이 눈에 띄어 함께 빌렸다. 아 근데 이 책 재밌다. 단편이 열 편 이상 모여 묶였다. 중간에 살짝 힘들 뻔했으나 무난히 넘겼다. 우화 같은 느낌인데 여럿 어디서 본 듯한 내용에 과연 이 작가는 유명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 무엇보다 아직 그 무렵의 저는 갓파가 쓰는 말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부모 입장만 생각하는 것은 이상하잖아요. 아무래도 너무 제멋대로니까요.”
그 대신 인간 쪽에서 보자면, 사실 갓파의 출산만큼 이상한 것도 없습니다. 실제로 나는 얼마 후에, 배그의 아내가 아이 낳는 것을 배그의 집까지 구경하러 갔습니다. 갓파도 아이를 낳는 것은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의사라든가 산파 등의 도움을 받아 출산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을 때가 되면 아버지는 전화라도 걸듯이 어머니의 생식기에 입을 대고 “너, 이 세상에 태어날지 말지, 잘 생각해서 대답해.”하고 큰 소리로 묻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테이블 위에 있던 소독용 물약으로 양치를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의 배 속에 있던 아이는 약간 조심스럽게 조그만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첫째로 아버지 유전인 정신병만으로도 힘들고요. 게다가 저는 갓파라는 존재가 나쁘다고 믿으니까요.”[p232_갓파]
– 예술이란 다른 무엇의 지배도 받지 않는, 예술을 위한 예술일 뿐이며, 따라서 모름지기 예술가라고 하면 무엇보다 먼저 선악을 초월한 초인이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굳이 토크 한 마리의 의견은 아니었습니다.[p236_갓파]
가장 마음에 들었던 편은 ‘갓파’다.
웬만한 모든 편이 재밌었는데 갓파는 신박했다(그 시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갓파를 통해 비판하려는 게 많은데 읽다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하며 읽기에 재미가 있다). 만화에서만 보던 귀여운 갓파와 실제 묘사되는 축축한 갓파와의 괴리는 이미 충격받은 바 있어 대충 알고 있었으나 류노스케의 갓파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를 기반으로 한 사실인지 그의 상상인지 간에 참 재밌게 읽었다.
작가는 여러 단편들에 재치를 담았다. ‘코’에서 코 큰 큰스님의 욕망과 걱정거리, 질투 등 인간의 얄팍한 모습을 비웃으면서 동시에 웃음을 유발한다. 그 웃음 뒤는 자기반성이다. ‘코’나 ‘두자춘’이나 ‘거미줄’이나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였다.
이 책의 제목인 ‘라쇼몬’은 헤이안 시대 수도 교토의 성문을 이른다. 남대문 같은 거랄까. 인간이 악을 품는 과정, 자기합리화를 하게 되는 과정, 자기합리화를 통해 악을 정당화하는 과정이 ‘라쇼몬’에 실렸다. 삽시간에 물들던 하인은 어떻게 됐을까.
그리고 역시나 묘한 분위기의 작품이 여럿 이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지옥변’을 새벽에 읽을 땐 분명 눈을 감으면 당장에라도 지옥변이 나오는 악몽을 꿀 것 같았다. 제 딸을 끔찍이도 사랑하고 아끼는 한 화가의 예술적 열정을 기괴하게, 끔찍하게도 그려놔 눈 앞에 보이는 듯했다. 애통을 능가하는 예술로의 갈망은 재능일까?(예술지상주의)
한편, 반갑게도 ‘묘한 이야기’ 중간에 가나자와에서 처음 알게 되었던 이즈미 쿄카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갓파 같은 요괴가 나온다거나 묘하게 기괴한 일본 특유의 느낌이 가득하다. 재밌게 읽었다.
– 뭐, 사내를 죽이는 것쯤이야, (중략) 다만 나는 죽일 때 허리에 찬 칼을 쓰지만 당신들은 칼은 쓰지 않고 그저 권력으로 죽이고 돈으로 죽이고 여차하면 위해 주는 척하는 말만으로도 죽이죠. 그러면 피는 흐르지 않고, 사내는 멀쩡하게 살아 있지, 하지만 그래도 죽인 겁니다.[p211_덤불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