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7시가 되면 집을 나서지만 몆년 전까지는 출근 전 아침을 먹으며 인간극장을 봤다. 다양하고 특별한 사람들의 삶을 보는 건 꽤나 흥미로웠다. 그런데 시청하다 가끔 맘 속에 잘못된 생각을 품을 때가 있었다. ‘왜 저렇게 살까?’, ‘저렇게 가난한데 애들은 왜 많이 낳았을까?’
타인의 삶에 내 기준으로 만들어진 잣대를 들이대는 건 위험한 행위인데 말이다. 더욱이 ‘나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니 다행이야’ 라고 안도하며 리모콘을 끄고 나선 잠시 뒤 나라는 사람이 싫어지기도 했다.
<면도날>은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로 일단 재미있다. 또 서머싯 몸이 작중 화자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이야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인간 존재가 무엇인지 그 모호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래리의 여정과 더불어 래리 주변 인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차대전 후 전우의 죽음을 지켜본 래리는 이후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었다. 웃고 떠들던, 따뜻했던 친구가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로 변하는 걸 목도한 래리는,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찾기로 한다. 래리는 약혼자였던 이자벨과 헤어지고 광산, 농장, 수도원, 인도로 가 해답을 알아내려 했다.
이자벨은 래리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충실히 사랑할 수’는 있으나 ‘열정적인 사랑’은 부족한 사람이었다. 이자벨은 쇼윈도가 즐비한 거리를 걸으며 멋진 옷과 보석을 손에 쥐는 삶이 중요했기에 모든 걸 버리고 래리를 택할 수 없었다.
엘리엇은 사회적 신분에 따라 사람을 사귀는 사람이었다. 죽는 순간까지 사교계 초대장에 연연해하는 속물근성에 사로잡힌 남자였다. 시인의 기질이 풍부했던 소피는 사고로 남편과 아기를 잃자 이를 견디지 못해 타락하며 스스로를 지옥에 가뒀다. 래리와 잠깐 동거하기도 했던 수잔은 녹록지 않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구책을 찾으며 이어갔다.
서머싯 몸은 글 말미에 평범한 대중은 성공담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인물의 삶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500여쪽에 달하는 긴 글을 읽고도 확언할 수 없다. 다만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다양한 인간의 삶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어떤 인물과 닮아 있는가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내가 안타까워 했던 인물은 이자벨과 소피였다. 자신의 직감은 맞다고 확신하던 이자벨, 래리의 여자관계에 대해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믿었던 그녀는 욕망과 질투에 사로잡혀 소피와 래리의 결혼을 무산시켰다. 또 소피의 예민한 감수성은 순식간에 쉽게 깨지는 그릇으로 변모했다.
오늘 이 책을 읽으러 간 단골 커피집에서 사장님 턱에 붙여진 밴드를 보며 면도날에 베여 아팠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 약한 나는 각종 살인사건이 난무하는 ‘그것이 알고싶다’도 못 보는데 하필 등장인물 소피도 칼날에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정작 소피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은 갈수록 예뻐지는 이자벨 아닌가.
사람을 살리려는 수술이나 외양을 꾸미는 데 얇은 칼날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면도날은 예리한 흉기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어가며 마음의 일부가 베이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 아픔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나라고 엘리엇의 속물근성이 없을까, 나는 이자벨처럼 교묘하게 다른 이를 궁지로 몰고 간 일이 없었나, 자학하는 내 모습의 일부는 소피와 닮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