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에 써내려간 글이 좋은 글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물론 한번에 써내려가도 고치는 건 수십 수백번이 되어야한다는 전제조건이필요하다. 나의 경우는 쓰는 동안 무척 낑낑 거리며 힘들었거나, 여러번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글이 결국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모양새를 갖추곤 했다. 이만하면 되겠지 하고 쓰는 글은 반드시 부끄러운 글이 되고 만다. 나의 경우, 쓰면서 얼마나 막막하고 길을 잃었느냐가 결국, 층을 만들었던 것 같다. 패스츄리의 층처럼, 그렇게 쓰는 동안의 어려움은 켜켜이 기꺼운 버터가 되어주었다.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 이야기는 좀체 질리지 않는다. 작가마다 하는 이야기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런 것이 재미있다. 표현도 다르고 문체도 다르고, 내게 와닿는 부분들이 다 다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에게서는, 그녀의 뚝뚝 떨어지는 고독이 내 맘에 똑똑 닿았다.
내게는 몇시간이고 전화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던 시간들도, 제발 좀 혼자 있고 싶다고 기도하던 시간들도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보면, 그 지긋지긋한 고독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 고독이 없었을 때, 부족했을 때 관계가 삐그덕 거리거나 내가 흔들렸다. 글을 쓸 수 없었다.
글을 쓸 수 없으면, 나는 자주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했다. 글을 쓸 수 없으면, 내가 아닌, 더 완벽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 것만 같다. 내가 나를 견딜 수가 없어졌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고독과 의혹.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을 읽고서 노트에 적었다.
고독과 친해지고 의혹을 두려워하지 말기.
나는 의혹이 생기는 순간을 잘 못견디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문제인가 생각했다. 이제는 그럴 것이 아니라 글을 써야겠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의혹, 그것은 곧 쓰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