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대중적으로 익히 알려진 소설, <무진기행>이다. 주인공 ‘나’는 제약회사의 임원이며, 휴식 차에 ‘무진’으로 내려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많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소설인 ‘무진기행’은 음울하면서도 독특한 문체로, 발간 후 54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순천, 김승옥만의 무진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무진이 있는 거죠” 바야흐로 작년, 순천만 갈대들이 풍요롭게 손 흔드는 그 날에, 나는 순천 명소 갈대밭 안에 위치한 순천 문학관에서 우연히 김승옥을 만났다. 그는 많이 늙어 있었다. 실어증과 뇌졸중을 앓은 전력으로 귀와 입은 말썽이고, 허리는 구부정해 있었다. 충분히 그럴만한 세월이었다. 맞잡은 그의 손은 투박했으나 글을 쓰는 근육만큼은 인상 깊었고 그의 눈은 여전히 맑은 빛이 가시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풍요로운 얼굴을 띠고 있었다. 그의 분위기는 순천의 갈대와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격식 있으면서도 강인한 모습. 그의 베이지색 삼베 양복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그는 일본에서 출생했으나, 태어나자마자 순천에서 생활했다. 그에게 순천이 어떤 의미일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는 여수순천사건과 아버지와 여동생의 죽음 등 파란만장한 유년기 시절을 견뎠다. 김승옥에게 순천은 어렸을 적 우울이 고여서 썩은 우물이다. 그는 순천, 즉 무진이 도처에 널려 있는 도시이자, 일상에 밀려 변방으로 쫓겨난 아득한 도시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문학을 순수하게 사랑하던 소년, 글 하나만으로 서울로 올라간 청년에게 무진, 곧 순천은 자신의 어두운 시절을 유일하게 위로받을 수 있는 마취제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무진기행, 그 전설의 시작은 안개
소설 속 ‘나’는 무진에 내려오면서 많은 일을 자행한다. 그에게 무진은 비도덕의 탯줄이다. 유부남임에도 무진의 처녀 하인숙과 잠자리를 가지고, 술집 여자의 자살 시체를 보며 엉뚱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이 모든 비도덕적 악행은 안개가 스며들면 잠잠해진다. 이 안개는 한국 예술사에 있어서 잊혀서는 안 될 기념비와 같다. 이 소설이 사랑받는 요소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에서도 무진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안개를 사용한다. 수많은 문학에서 쓰이고 있는 ‘오마주(hommage)’의 객체이다. 김승옥은 이 소설에 안개를 등장시킴으로서 도덕과 비도덕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있다. 도시를 감싸는 안개는 음침을 덮는 또 다른 ‘음침’이다. 비도덕을 감싸는 안개는 이불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독자들도 소설 속에서 사건의 공범이 되며, 점차 주인공의 심리에 동조하게 된다.
◆공간의 완벽한 대비
주인공 ‘나’의 주 활동지인 ‘서울’은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이다. 김승옥은 자신의 작품 <서울 1964년 겨울>에서도 서울을 ‘욕망의 도시’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서울은 정말이지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응고되어 있다.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끊임없는 타자검열과 규제가 존재하는 곳이다. 반면, 가상의 도시 ‘무진’은 무계획적 공간이다. 서울과는 꽤 상반돼 있으며, ‘몽환적’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붕 뜬 느낌을 가진다.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처녀와 잠자리를 가지는 일,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보는 일이 마치 무진의 일상인 것 마냥 묘사한다. 일상적인 대화에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진다. 비도덕적 욕구가 해소되는 곳이자, 꿈같은 곳. 도시 무진에서는 서울에서 용납되지 않는 발칙한 사건들이 핑퐁처럼 오고간다.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나’는 전보를 받는다. “27일 회의 참석 필요, 급 상경 바람 영” 그는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무진에 남겨진 하인숙을 위한 편지를 쓴다.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하며, 언젠가 그녀에게 서울의 햇빛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한다. 읽어보다가, 찢어버리고선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소설의 여기서 끝이 난다. 자신의 죄를 소리 없이 고해성사한다. 그렇다, 그는 무진을 떠나고 있다. 서울에 도착하지도 않고, 무진을 완전히 떠나지도 않은 과도기 속에서 그는 적당한 죄책감만 짜낸다. “소설이란 추체험의 기록···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의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일뿐” 김승옥은 사실 이 소설의 첫 자를 쓰기도 전에 자신의 무기력과 한계를 고백했다. 무진기행은 어쩌면 그런 사건의 추적일 뿐일지도 모르겠다. 환상 같고 꿈같지만 무채색의 행진이었던 무진에서의 2박 3일. 작가 김승옥은 우리 인간 속에 잠재되어 있는 악이라는 존재와 먼저 싸운 선구자다. 그런 의미에서 무진기행은 달력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멈춰진 시간이다. 우리네 마음 속 발칙함과 악행이 인정되는 곳. 과거 우리의 암울한 시절과 감정 모두 그대로인 그 곳으로. 그 곳만이 무진으로서 존재한다. 김승옥이 준 미션을 완수해야 한다. 우리는 서울이라는 경쟁적 삶의 표상만 이행할 것이 아니라, 한번쯤 각자만의 무진으로 왕복티켓을 끊어 자신의 자아를 찾는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