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사랑하고 삶의 진실을 탐구했던 위대한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들려주는 걷기의 다섯 가지 색채
내가 말하는 걷기는 환자가 일정 시간에 약을 먹듯이 하는 운동, 즉 아령이나 의자 운동과는 전혀 다르다. 걷기는 하루 종일 걸리는 일이며 모험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생태주의, 비폭력 저항 운동, 현대 물질문명 비판의 선구자이자
진정한 자유와 인간의 양심을 옹호했던 초월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다양한 면모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다
나는 자연의 입장에서 한마디 하고 싶다. 나는 지금 문명에서 말하는 단순한 자유나 문화와는 전혀 다른 절대적 자유와 야성을 옹호하려고 한다. 인간을 단지 사회 구성원이나 자연의 거주자로 보지 않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거나 인간 자체가 자연이라 말하려고 한다. 이런 말이 너무 극단적으로 들린다면 문명을 옹호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목사, 학교 운영진 그리고 여러분 모두가 문명을 옹호할 것이다. -본문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초월주의자, 시인이자 산문가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걷기와 산책, 여행을 주제로 집필한 다섯 편의 에세이를 엮은 『달빛 속을 걷다』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1817년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태어나, 교직 생활을 거쳐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에 대항해 자발적 아웃사이더로서 억압적인 국가 체제와 배금주의를 초월하고자 했던 ‘진정한 자유인’ 소로가 남긴 이 다섯 편의 에세이에는, 이제껏 『월든』의 저자로만 알려졌던 그의 다채로운 면모와 웅숭깊은 사유가 가득 담겨 있다.
소로는 평생의 친구이자 초월주의를 함께 주도하였던 랠프 월도 에머슨과 동일한 이상을 공유하였으나,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위대한 실험’을 몸소 실천하는 행동가로서 큰 족적을 남겼다. 2년 2개월 2일 동안 월든 호숫가에 머물며, 완전한 자유와 자족적인 생활을 직접 성취해 보인 『월든』을 비롯해, 부당한 국가 권력에 저항해 투옥까지 불사하며 써 내려간 『시민 불복종』, 세속적인 부와 덧없는 명예를 경계하며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솔직하게 반추한 『원칙 없는 삶』에 이르기까지 소로의 사상과 작품은 그의 삶과 경험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달빛 속을 걷다』에 수록된 다섯 편의 작품들도 소로의 섬세한 관찰, 투철한 탐구, 거침없는 모험심을 그대로 반영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자연과 매번 아름다운 풍경과 사색의 계기를 제공해 주는 계절의 변천, 신의 지문이 깃들어 있는 동식물의 경이로운 생태, 그 모든 것에서 취할 수 있는 감동과 깨달음을, 소로는 생생하고 수려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속삭인다. 더불어 사회 혁명과 의식 전환이 횃불과 유혈로만 가능한 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늘 마주하는 자연을 세심히 관찰하고, 심지어 별다른 생각 없이 나선 산책을 통해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매우 설득력 있게 이야기해 준다. 소로의 글이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사랑받는 건 어쩌면 이런 이유, 즉 이토록 ‘고요하고 일상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일러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야 멋진 항해가 시작됐다!”(소로의 마지막 말)
자립적이고 자족적인 참된 자유를 찾아 한평생 모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들려주는 걷기의 기술
몇 년 전 우연히 달빛 속을 걸었는데, 깊은 감동을 받았다. 좀 더 자주 밤 산책을 하면서 자연의 다양한 면모를 알고 싶어졌고, 그 후로 종종 밤 산책에 나섰다. 분명히 밤은 낮보다 더 새롭고 덜 세속적이다. 나는 밤의 안색을 살피는 정도였다. 덧문 사이로 달을 봤을 뿐이다. 왜 그때 조금이라도 더 달빛 속을 걷지 않았을까?
생각에 잠겨 달빛 속을 걷는 사람은 달빛만으로도 만족하고 그 빛은 그의 내면의 빛과 잘 어울린다. 달빛이 햇빛만큼 강하거나 밝지는 않지만 비치는 빛의 양이나 지상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만 가지고 달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달빛을 받으며 걷는 시인은 달빛의 영향을 받은 생각의 흐름을 의식한다. 나는 이런 생각의 흐름을 일상적인 산만한 생각들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밤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는 걸 이해해 달라고 부탁한다. 나의 생각을 대낮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본문에서
『달빛 속을 걷다』에는 표제작을 필두로, 「걷기」, 「가을의 색」, 「겨울 산책」, 「하일랜드 등대로」가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먼저,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낮의 세계’와 대비를 이루는 명상적이고 정신적이 ‘밤의 세계’를 다룬 「달빛 속을 걷다」에는 한평생 소로가 탐구하였던 대자연의 위대한 잠재성, 그것을 발견해 내야만 하는 당위성이 시적인 문체로 담겨 있다. 소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규격화된 삶을 대변하는 낮만을 찬양하며 밤의 어둠과 모호성을 두려워하고 멸시하지만, 실상 밤이야말로 (낮에 비해 ‘실용적’이지는 않을 수 있지만) 우리 정신의 심오한 영역과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의 잠재력까지 일깨워 준다고 설파한다. “밤의 하늘은 검지 않고 푸르며, 낮을 품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대목만 보더라도 소로의 심중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이어지는 「걷기」에서는, 소로의 강도 높은 문명 비판을 시작으로 속되고 천박한 세태에 대한 저항이자 실천으로서의 ‘걷기’가 다채로운 예와 함께 다루어진다. 소로는 진정한 ‘걷기’, 즉 자연과의 참된 ‘교감’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스스로 십자군이 되어 맞서 싸우겠다고(“걷는 동안 우리는 성지를 지키는 십자군이 된다.”) 의연히 다짐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걷기’는, 우리가 물질 너머의 세계를 내다볼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간단하며 중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가을의 색」과 「겨울 산책」에서는 각기 다른 계절의 정경이, 병풍처럼 세밀한 묘사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소로는 「가을의 색」에서, 미국의 가을을 수놓은 다종다양한 초목들을 들여다보며 신세계(미국)의 가능성을 전망하고, 무용한 것의 유용함을 역설하며, 한낱 미물에게도 저마다 생명력과 인간이 숙고해 볼 만한 진귀한 가르침이 있음(“가장 보잘것없는 식물이라도 충실하게 관찰하면 머지않아 독특한 가을의 색을 띨 것이다.”)을 알려 준다. 그리고 「겨울 산책」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겨울은 ‘죽음과 침묵의 계절’(“달력에 겨울은 바람과 진눈깨비를 맞으면서 외투를 여미는 노인으로 그려져 있지만, 겨울은 명랑한 벌목꾼이나 혈기 왕성한 젊은이처럼 보인다.”)이 아니라 주장하며 얼어붙은 대지 아래 엄연히 존재하는 생명의 강렬한 약동을 하나하나 지적해 보여 준다. 그런 한편 소로는 엄혹한 계절이기도 한 겨울을 관조하며,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 하는 바를 열심히 새겨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끝으로 조금은 이색적인 「하일랜드 등대로」에선, 소로가 지닌 ‘자연 과학자’로서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험난하고 녹록하지 않은 바닷가 환경에 겨우겨우 적응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같은 해안을 바라보더라도 이방인과 주민의 관점은 서로 아주 다르다. 이방인은 폭풍우 치는 바다를 찬양한다. 그러나 주민은 그 장면을 보면서 가까운 친척의 조난을 떠올린다.”)가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만만하지 않은 등대 운영과 그것에 의지해 항해하는 뱃사람들의 애환, 이들의 생존에 무관심한 정부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소로의 가치관과 관심사가 한데 어우러진 작품이기도 하다.
『달빛 속을 걷다』에 실린 다섯 편의 작품들은 얼핏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싶지만, ‘실천’을 중시한 소로의 입장을 공통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서의 ‘걷기’를 통해 인생과 세계를 변혁할 수 있다고, 하다못해 우리가 허투루 지나쳐 버리는 자연의 참모습(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소로의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제 잠시 시간을 내서, 소로가 일러 준 ‘걷기의 기술’을 길잡이 삼아 산책에 나서 보는 건 어떨까.
달빛 속을 걷다
걷기
가을의 색
겨울 산책
하일랜드 등대로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