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뚜껑]을 잘 닫고 올 여름은 충분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은 나의 20대를 적잖히 채워주었다.
나는 대부분 책을 고3때부터 읽기 시작하였는데
책의 즐거움을 알기 시작한 후부터
일본 소설에 빠져지냈었다.
그 중 하나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것.
나이들어 그녀의 책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오래된 친구의 소식같은 기분이 들기때문이다.

이번 신간 제목을 보고
책 표지도 보고 별로 끌리지 않은 채로 그냥 궁금한 정도.
서점에서 책을 펼쳐 한두절 읽어보기만 했어도 그런 궁금증은 없었을 텐데.
인터넷서점에서 보기만 하기엔 뭔가 부족했던 터에
이웃블로거님의 추천으로 장바구니에 담아보았다.

지금 영화로 나왔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책을 먼저보고 영화를 보면 더 좋을 거 같아 읽기시작했다.

 

바다에는 정말 뚜껑이 있을까.
나만의 바다에는 뚜껑이 정말 존재한다.

나에게 바다는 여름에 살짝 열렸다가 가을에 닫혔다가
겨울에 겨울바다라는 이름으로 아예 문을 열어젖힌다.
그리고 다시 봄에는 뚜껑이 닫혀버리는.
여름과 겨울에만 존재하는 바다
그것도 여름보다 겨울이 더 커다랗게 다가오는 바다.
분명히 봄과 가을에는 바다의 존재를 잊고 사니
바다의 뚜껑은 존재한다.

아이가 태어나 이제 함께 가족여행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을때는
그 존재의 크기가 바뀌었다.
지난 여름에 따뜻한 나라의 바다를 여러차례 느끼고
우리 가족의 추억을 남긴 여름의 바다는
그 크기가 아주 컸다.
또 다시 가을이 되어 바다의 뚜껑은 닫혔고,
올 겨울에는 여름의 바다보다는 아무래도 작은 거 같다.

바다의 뚜껑을 잠시 닫아두기.

책속으로 들어가서.
마리와 하지메는 사실 엄마끼리 아는 사이의 딸들이다.
둘은 이번 여름에 만나 함께 엄마의 고향에 와서 지내게 되는데.
일본 남쪽 지방의 바닷가에서 마리는 빙수가게를 차리게 되고,
하지메는 그해 사랑하는 할머니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마음을 추스리러 마리네 집으로 와서 지낸다.
어릴적 할머니와 함께 화상을 입은 하지메는 평생 화상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픔이 있는 여자이고.
마리는 어릴적 번화하고 아름다웠던 고향동네가
점점 으스러져가는 것이 아쉬워
자신이 바닷가 마을의 작은 변화가 될까 하는 마음으로 꿋꿋이
빙수가게를 한다.

하지메가 빙수가게를 도와주면서 함께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두 여자는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열어가고.
평생지기로 서로에게 힘이되는 사이가 된다.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중간까지는
마리의 고향땅의 부실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이 참으로 질질끌고
지겹기까지 했는데
곳곳에서 자연을 읽어내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문득 나 어릴적 방학이면 놀러갔던 큰집 시골동네도 생각나고
영화 ‘안경’의 한적한 바닷가마을도 생각나고
점점 소설속으로
두여자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두 여자가 매일 그 매력을 박박 긁어서
느꼈던 여름바다의 뚜껑은
좋은 마무리로 잘 닫혀지고
각자 삶에 대한 희망이 더해져
뿌듯함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마음속 잔잔하게 파고드는
슬로라이프 영화가 될 거 같아 기대가 크다.

남쪽 나라의 따뜻한 바닷가도 가고싶을테고
무엇보다도 마리가 파는 빙수가 너무나 먹고 싶을테지

그러니까 최후의 보루는 최대한 튼튼하고 지나치게 어둡지 않고 대지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편이 좋겠지. 게다가 생각해 보면 아이를 낳는 것도, 엄청나게 깊고 어두운 일이니까. 여자는 진실에 관해서는 그 경험으로 충분한지도 모르지. 나머지는 소박한 즐거움으로 하루하루 일상을 꾸려 나갈 수 있게 만들어진 걸 거야, 아마.

p.94

남자와 여자의 다름에 대해 마리와 하지메가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무언가 집중하면 남자는 점점 깊고 어두운 걸 추구하며 남자와 여자가 종류가 다를뿐
서로 깊고 남자의 무한한 추구의 바탕은 부인이나 어머니같은 튼튼한 보루가 있기에 가능하다는 말.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역시 아이를 낳은 어머니라는 것을 생각하며
그녀도 아이를 낳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구나 싶은 구절도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저 문장이 참 공감이 되었다.

이렇듯 그녀의 소설속에 녹아든 작가의 생각들이 참으로 좋았다.
자연에의 경의와 소박한 행복들까지도.

영화는 꼭 보는 걸로.
또 궁금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