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히 쌓여만 가는 책들을 이제야 정리했다. 책과 그동안 멀리 했다는 말이겠지. 그냥 책장에 꼽혀 있는 건데 정리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중에 한구절이다. 책도 마찬가지 같다, 내가 책을 찾아야서 읽어야 비로서 책이 된다. 책장에 꼽혀만 있다면 책은 단순 장식물이다. 책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정리하면서 보물을 발견했다. 2010년에 사서 쟁여 둔 책. 어느덧 5년이라 시간동안 꼭꼭 숨어 있었다. 제목이 특이해서 책을 잡아서 읽기 시작하였는데 정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다음날이 월요일이여서 일찍 출근해야됨에도 불구하고 새벽3시까지 책을 읽었다.
30살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은 책을 참 좋아한다. 어릴적부터 책을 참 좋아했다. (추운 방에서 홀로 책을 읽으면서 지내도 누구보다 행복할 자신이 있다. 이 세상 어떤 누구보다도 행복한 표정으로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걸 알고 있으므로 나머지는 의미 없다고 여긴다. 가질 수 있을 때까지 미루거나 참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내게 없이도 되는 것이다. p115) 책을 읽는 행위에서 진심으로 행복을 느낀 주인공은 공부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 책만 읽는다. 대학을 졸얼할 때도 취업때문에 고민하지 않는다. (인생에는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포기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p236) 맞다.인생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주인공에게는 책을 읽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이기에 취업을 하지 않는다. 일을 하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지기에 일을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백수로 살고 있다. 아버지의 집에서 살며 아버지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유일하게 들어가는 돈은 책을 사는 돈. 오직 그 돈을 위해서 일은 한다. 최대한 머리를 쓰지 않는 단순알바로만.
꿈을 가져야한다. 열정을 가져야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여한다는 무수한 이야기와 오지랖이 넘쳐나는 우리나라에서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고 산다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도 집에서 놀면서 책만 읽는 인생을 살겠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자식의 인생이 부모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자식이 살고 싶은 인생으로 살게 하는 부모님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 어렵지는 않다. 주인공의 아버지처럼, 나의 어머니처럼. 난 길지는 않았지만 20대의 몇달을 책만 읽으면서 보낸적이 있다. 그 시간은 나에게 삶을 살아가는 교훈을 주었다. 그 시절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담배 몇 개비와 커피, 너와 나 그리고 5달러뿐이다(영화-청춘스케치)’ 라는 저 대사처럼 나에게는 스물세살 때도, 그리고 지금도 필요한 건 몇 권의 책과 그것을 살 수 있는 약간의 돈뿐이다. 그때도 지금도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는 나 자신이 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은 그렇게 되고야 말겠다. p200) 그 시절 난 사람들의 시선보다는 나 자신의 시선이 중요했다.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했다. 그런데 지금의 난 나 다운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열정을 가져야한다고 스스로에게 미래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아직 내 인생의 반도 오지 않았는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만을 생각하여 초조해 하고 있어서 현실을 즐기지 못했다. 이대로는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다.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평생 해야 할 일이고 평생 즐겨야 할 일이다. 조급해한다면 계속할 수도 없고 이 일의 참다운 의미를 읽어버리는 게 될 것이다. 어차피 미래 따윈 현재보다 중요한 것 없었다. 쓰고 있는 지금 행복하다면, 읽고 있는 지금 행복하다면 그걸로도 완벽한 것 아닐까. p280 현실을 보니 참 즐겁기 시작했다. 책을 더 많이 읽기 시작했고 사람들을 더 즐겁게 만난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잠시 놓기로 했다. 정말 책에는 답이 있다. 책 속에서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집을 짓고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귀환한다. 인간의 모든 순간이 그 속에 담겨 있었다. 내가 읽어온 책들은 너무 길고 너무 많다. 그러나 나는 그 허무를 사랑한다. 그 수많은 허무의 갈피들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인생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p294-295 그리고 한동안 멀리해서 아직까지는 조금 어색하지만 다시 허무의 갈피속으로 들어가 볼려고 한다. 아직 인생이 도착을 할려면 멀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충전이라는 걸 알았다. 책과 떠나는 마음의 충전을 해봐야겠다. 체념하지 않고 비관하지 않으며 좀 더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인생에 처음 순간이란 반복되고, 언제나 누구에게나 있는 경험에 불과하다. 처음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내게 중요한 것은 마지막이다. 나는 그 마지막을 위해 그의 여행에 동행하는 것이다. p304 그리고 이제는 무슨 책을 읽든 그가 생각난다.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꾼다. 버릴 수 있는 것들을 버린다. 잊을 수 있는 것들을 잊는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고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잊을수 없는 것들이 있다. p313
난 한동안 이 책이 많이 생각이 할 것이다. 그리고 연말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1년동안 내 자신이 얼마나 충전했는지를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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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스칼 키나르 – 떠도는 그림자들
2. 파트릭 모리아노 -잃어버린 거리
3. 에단호크 – 웬즈데이
4. 레몽 장 – 책 읽어주는 여자
-> 책속에 나오는 책들이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가 가지전에 읽어야지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