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일 2000년 12월 2일

이 책을 읽으면서,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그 심오한 사색으로 고민하던 주인공과 ‘호밀밭의 파수꾼’의 방황하는 청소년 그리고 우주와 인간의 비밀의 문을 열어주던 ‘시크릿’이 함께 어우러져 적당히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조나 내용으로 보자면,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가 밝혔듯, 무의미와 혼란, 착란과 꿈의 맛이 난다. 재미와 흥미를 끄는 듯하면서도 모호하고 어지러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뜯어본다면, 구절구절 눈길과 가슴을 끄는 대목들이 많이 나온다. 아무래도 이 책이 유명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방들 중에 암컷이 하나 있으면 밤에 이 암컷에게로 수나방들이 날아오는데, 그것도 여러 시간 떨어진 곳에서 오는 거야...... 몇 킬로미터 밖에서부터 이 모든 수컷들은 그 지역에 있는 단 하나의 암컷을 감지하고 추적해 오는 거야...... 수컷들에게 그런 예민한 코가 있는 것은 다만, 스스로를 그렇게 조련시켰기 때문인 거야.]

이 나방 이야기에서 데미안은 제 6감에 대해 언급했는데, 시크릿의 주제이기도 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불변의 진리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주인공 싱클레어가 에바부인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는 장면에서 보면 그도 결국엔 이 6감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말이 될 것 같다.

 

 

[그가 나를 천재적인 멋들어진 녀석이라고 불렀을 때는 그 말이 감미로운 독주처럼 영혼 속으로 번졌다.]

하숙집의 나이 많은 학생 알폰스 벡을 만나며 싱클레어는 그렇게 어두운 세계로 조금씩 빠져들게 되는데, ‘감미로운 독주’란 표현이 딱 떨어진 표현이 될 것 같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싱클레어가 피스토리우스와 사이가 애매해지면서 깨달은 사실이 바로, 좋은 운명을 타고나길 바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고 그리고 그 운명을 완전히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것이었다.

헤르만 헤세, 그가 그토록 깨고 싶어 하던 알이란 결국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