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끔찍한 것을 보기 싫어한다.

 

길을 가다가 동물의 사체같은 지저분한 것을 보면 인상을 찌뿌리고…

 

영화에서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고개를 돌린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것들은 단순히 우리의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 안에는 동물의 사체나 영화의 잔인한 장면보다 더 끔찍한 것들이 들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고개를 돌린다.

 

조용히 덮어 둔다.

 

그리고 말한다.

 

인간은 아릅답다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은 평화롭다고…

 

 

 

 

 

 

오랫만에 파리대왕을 읽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중학생 때였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형이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왔다.

 

당시 15세기 표류기라는 만화가 한참 유행할 때여서 그런 종류의 모험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이 소설을 읽었다.

 

어린나이에 읽으면서 내내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아이들이 변해가는지…

 

잭과 동료들은 왜 사이먼과 돼지(등장인물 중의 한 명의 별명, 실제 이름은 나오지 않음)를 죽이고, 랠프를 죽이려고 한느지…

 

그들은 왜 얼굴에 칠을 하고 미쳐서 춤을 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었다.

 

 

 

오랫만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내면의 끔찍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에서야 지난 이 소설이 이해가 된다.

 

이 소설이 이해가 간다는 것이 기쁘기보다는 슬프다.

 

그동안 내가 끔찍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할만큼의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이니…

 

 

 

 

소설은 아무런 배경 설명없이 무인도에서 랠프와 돼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외떤 섬에 불시착했다.

 

그들은 우연히 소라를 발견하고 랠프가 그것을 힘차게 분다.

 

그리고 흩어졌던 아이들이 모인다.

 

아이들은 소라의 권위에 복종하고 자연스럽게 랠프를 대장으로 뽑는다.

 

비교적 나이가 든 아이들의 모임인 성가대를 이끌던 잭만이 자신이 대장으로 뽑히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는다.

 

그 후 랠프와 잭은 사사건건 대립한다.

 

랠프는 문명사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봉화를 피우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오두막을 짓는 것이다.

 

반면 잭은 사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모두들에게 고기를 먹여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두 사람의 우선순위의 차이에 오는 대림으로 보인다.

 

그러나 랠프가 유지하려는 봉화와 오두막은 인간의 문명, 이성에 대한 마지막 끈이다.

 

잭은 인간 내면에 있는 광기와 살인, 피의 욕구를 추구한다.

 

 

 

처음에는 랠프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무질서하지만 나름대로 그들이 만든 규칙에 복종하고, 랠프를 신뢰한다.

 

그런 랠프를 못마땅히 여긴 잭은 무리를 뛰쳐나가고…

 

나이든 아이들은 잭을 따라나간다.

 

그리고 그들은 점점 더 집단 광기에 휩쌓이게 된다.

 

맷돼지를 살육하고 피와 광기, 축제에 휩쌓이던 그들은…

 

처음으로 사이먼을 죽이며 인간을 죽인다.

 

그다음엔 랠프의 친구인 돼지를…

 

그리고 마지막에 랠프를 죽이기 위해 집단 몰이를 한다.

 

 

 

 

 

 

 

소설은 내내 그들을 공포에 몰어넣는 짐승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사실 그 짐승은 그들이 만들어 낸 허상이다.

 

그들이 짐승이라고 생각하고, 봉화를 올리기를 멈추었던 그것은…

 

사실은 짐승이 아닌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군인의 시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안 후에도 여전히 짐승을 두려워한다.

 

짐승은 그들이 만들어 낸 허상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 안에 존재하는 피와 광기와 살인의 괴물이었다.

 

 

 

소설에서는 그 짐승을 ‘파리대왕’이라고 말한다.

 

잭과 그 일행이 맷돼지를 죽이고 그 머리를 짐승에게 바치기 위해 막대게 메달아 놓았는데…

 

그 머리에 파리들이 꼬이면서 마치 파리의 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파리대왕을 마주친 사이먼과 랠프는 그 짐승이 인간의 내면에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 같은 짐승을 너희들이 사냥을 해서 죽일 수 잇다고 생가하다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야! 넌 그것을 알고 있지? 내가  너희들의 일부라는 것을,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란 말이야, 왜 모든 것이 틀려먹었는가, 왜 모든 것이 지금처럼 돼버렸는가 하면 모두 내  탓인 거야(P214)”

 

 

 

 

 

이 책은 고도의 상징을 사용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과 문명을 상징하는 소라…

 

파괴와 살육을 상징하는 짐승…

 

결국 그 대결에서 파괴와 살육이 짐승이 승리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의 압권은 마지막장면이다.

 

아이들의 집단 몰이를 당하여 해변까지 쫓겨 온 랠프가 구출을 하러 온 해군장교를 마주친 것이다.

 

다시금 문명과 마주친 것이다.

 

피투성이가 되어 살기위해 도망치던 랠프와 랠프를 죽이기 위해 온 몸에 진흙을 바르고 나무 창을 가지고 쫓던 아이들이 이성과 마주친  것이다.

 

그리고 랠프와 아이들은 소리 내어 운다.

 

무엇때문에 울었을까?

 

무엇이 서러워서 그렇게 울었을까?

 

 

 

 

 

 

 

 

 

마지막으로 이 책의 뒷부분에는 번역자와 E.L.엡스타인이 쓴 책에 대한 해설이 나와 있다.

 

번역자의 해설에서는 특히 인물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있다.

 

엡스타인은 인간 내면의 악마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소설을 더 깊게 이해해 주는 좋은 글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