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원래 어려운 것이다.

출간일 2000년 12월 2일

인생은 원래 어려운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데미안을 인생의 책으로 꼽는다.  데미안을 지금껏 세 번은 읽어본 것 같은데, 단 한 번도 인생의 책이라고 느끼지를 못했다. 다만,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쉽지 않다는 것 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나, 느끼지 못했던 것을 책을 읽으면서 알았던 것이 아니다. 사실, 책에서 말하는 내용은 평소에 생각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펼쳐나갔다는 것이 신선했고, 그것을 카인이나 아벨과 같은 신화에 대입한 것도 신기했고. 그리고 10대 때 읽고, 작년에 읽고,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느껴졌던 것은 확실히 조금씩은 차이가 있었다. 더 확실히 와 닿았던 것은 가장 최근에 읽은 이 시기. 시기에 따라 책이 달리 읽힌다는데, 확실히 알겠다.

몇 번이나 읽어도 언제나 기억에 남는 구절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카인과 아벨로 대비되는 종교와 이단의 차이이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종교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많이 없지만, 소위 말하는 ‘이단’은 부정적이고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참 이단이라는 집단이 많다는 생각도 함께. 데미안이 말하는 카인의 정의를 보자면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부르는 집단도 그들만의 신념이 명확하다. 카인을 악으로 칭하는 이유는 그들이 옳지 않아서가 아니라, 카인을 인정하게 되면 그들의 존재이유인 유일신 하느님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존재가치를 부정당하기에 카인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보이는 것대로가 아니라, 뒤틀어서 깊이 생각을 해보면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서 더 흥미로웠다. 흑과 백, 선과 악처럼 이등분적인 사고가 만연한 이 세계에서 과연 이등분으로만 생각을 하고 한쪽만을 바라보는 것이 옳은 지에 대해 다시금 자각을 하게 되었다. 머릿 속으로 알고만 있는 것보다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온전하게, 그리고 완전하고 완벽하게 바라보려면 허용된 착한 세계 뿐 아니라 금지된 다른 면도 동시에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데미안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사실, 누구든 이런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실생활에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나도 마찬가지이고. 정말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부분까지도 이등분적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두 번 째는 싱클레어와 나는 닮은 점이 많다. 동경하는 것이 있다면, 그곳으로의 동경심이 있을 때 삶이 피폐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점이 그렇다. 싱클레어에겐 데미안이 그랬고, 베아트리체가 그랬다. 그리고 피스토리우스와 데미안의 어머니가 그랬다. 조언자이자, 동경을 했던 존재인 사람들이 있어서 삶에서 방황을 하지 않고, 무엇인가에 집중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싱클레어도 책에서 말하듯, 데미안이 멀어지고 난 그 자리에는 자신을 잃고 방황하는 스스로가 있었고, 그 뒤에 찾아온 베아트리체로 인해서 다시 스스로를 찾았다고. 어떤 종류의 것이든, 목표가 있다는 것이 한 사람을 잃거나 혹은 살리거나 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공감한다. 목표를 가지고 그것에 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발전시키는지는 데미안만 읽어도 명확하다. 이런 면에서 데미안은 어쩌면 축복받은 인간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도와줄 수 있고, 언제나 영감을 줄 수 있는 지인들이 많았다는 점이 그렇다. 온전히 나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도 그렇게 발전할 수 있었겠지. 목표가 있다면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위의 환경에 휩쓸리는 그 모습이 나랑 같다. 그래서 더 싱클레어에게 정이 간다. 나랑 닮아서.

가장 연민이 가고 이해가 되었던 인물은 바로 피스토리우스다. 데미안은 그를 겁쟁이라고 비난했지만, 난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3포 세대라는 요즘의 세대는 자신의 의지보다 현실이라는 이유로, 혹은 부모님의 기대라는 이유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그들 개인의 탓이라기보다는 사회의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는 탓이다. 데미안의 시대적 배경 속에 나오는 무리를 짓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듯이 말이다. 그 시대의 무리를 짓던 사람들은 무리를 지음으로써 두려움을 잊고자 했고, 무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고 했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똑같다고 생각을 한다. 안정적이라고 규정지어진 무리 속에 나라는 사람을 넣는 것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서 많은 젊은 사람들이 같은 것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옳지 않다거나, 나쁘다고 말 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데미안에 나오는 피스토리우스와 그들이 닮았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금과는 다른 종교를 만들고 그 종교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지만, 사실 자신이 기존의 종교 어느 작은 곳이라도, (그것이 오르간 반주자 일지라도) 몸담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것을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혼자 한다고 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아서, 꿈은 꾸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겁쟁이인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데미안의 구시대적인, 그래서 골동품냄새가 나는 생각이라는 비난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겠지. 이시대의 수많은 사람이 그러듯.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인정을 하고 마는 것이겠다. 인정이라도 하면 다행이려나. 그래서 나쁘자고 비난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그들이 만족을 얻는 다른 방법이라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존중을 해줘야하니까.

가장 씁쓸하면서도 기억에 남았던 마지막은 삶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고, 자신 이외의 누구도 삶을 결정해 줄 수도 없을뿐더러, 그 책임도 온전히 본인이 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헤세가 다시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허황된 거짓말로 자신의 위기를 자신이 만들었던 어릴 적 싱클레어도 그렇고, 앞 뒤 생각하지 않고 내뱉어버린 말에 자신도 그리고 피스토리우스도 상처받았을 때도 그렇고. 그리고 이 책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도 그렇고. 정말로 당연한 말이지만, 요즘은 잊고 지냈다. 체념과 회피와 포기로 일관했던 것이 사실이라서, 엄청 양심이 찔린다. 보이는 길보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난 항상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 같다. 너의 그런 생각은 정말 겁쟁이같은 생각이라고. 정말 원하고자 한다면, 그 길은 당연하게도 어려운 길인 것이고, 세상에 쉬운 것은 없다고. 그러니 생각 고쳐먹으라고.

데미안은 파울료 코엘로의 「연금술사」와 비슷하다. 원하는 것을 향해 가고자 한다면 그길로 가야하는 것이라고. 중간에 더 쉬워보이는 길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안주한다고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말을 헤세도 같이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굉장히 양심에 찔린다.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다고 해서 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나를 보며. 이렇게 대단한 작가들도 온전하게 자신에게 집중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이렇게 대작을 통해서 말 하고 있는데, 너무 쉽게 봤구나 싶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을 한다‘는데, 투쟁을 해야지 싶다. 좀 더 노력을 하고, 집중을 하고, 방법을 찾고. 어렵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그것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겠다. 왜 나만 어려울까? 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스스로를 열등감의 세계로 넣기 이전에,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거기서부터 출발을 한다면 그 과정은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르리라고 본다.

옮긴이의 말에도 20대를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면, 좀 더 자신에게 집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테니 말이다. 내가 20대에 이 책을 읽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땐 그 시기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살았으니, 지금에 와서 다시 읽은 데미안이 나에겐 더 와 닿는다. 길가의 가로수 나뭇잎처럼 그렇게 흔들리고 있다면, 이 책이 조금은 바람은 멎게 해주지 않을까 싶다. 바람을 불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노력할거다. 이 책은 어쨌든 언제든 인생에서 방황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봐도 좋을 명작이다.

+ 이 책을 읽으려는 다른 사람들에겐 꼭 민음사에서 출판한 책을 추천한다. 다른 출판사는 조금 말이 어렵다. 다 읽고 또 읽어도 이해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