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이 천천히

알리스는 작은 것 하나하나 섬세하게 이야기해준다. 마치 알리스와 내가 함께 있는 것처럼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알리스와 인연이 있는 다섯남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왜 죽었는지 언제 죽었는지 보다 누가 죽었는가가.. 더.. 뭐랄까.. ‘누가’ 라는 말에 담긴 느낌이 뭐라고 표현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 나를 떠날 때 그 사람이 왜 떠났을까보다 그 사람이 이제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더 뼈저리게 다가올 때가 있다. 죽음도 그러하지 않을까….

책을 읽는 내내 누군가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다섯남자가 알리스와는 어떤 관계였을까.. 알리스에게 이 남자들은 어떤 의미였을까를 더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그리고 자신의 삶이 소중했다는 것 모두가 느껴가며 알리스의 이야기를 따라갔다. 그러나 애써 담담한척 했던 알리스가 최근까지 자신의 연인이었던 라이몬트를 떠나보내면서는 더욱더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꼭 말해주지 않아도 될 듯 한 이야기를 ‘난 괜찮아’라며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알리스의 옆에서 차 한잔 마시며 그냥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슬프면 펑펑 울어버리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미햐의 여행가방을 찾아가지 않는 마야, ‘금방 돌아올게’라는 콘라트의 글을 붙여놓았었던 로테, 말테의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던 프리드리히,  리하르트의 곁을 항상 지킨 마르가레테, 라이몬트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알리스. 라이몬트를 떠나보내고 있는 알리스의 모습이 마야, 로테, 프리드리히, 마르가레테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을까.

한 가지 물건을 보고 그 물건과 얽힌 추억을 떠올릴 때 이랬었나? 저랬었나? 하는 고민이 들때가 있다. 그 사람을 추억하며 기억하고 또 내 삶을 살아가는 동안 또 다시 그 추억은 새로운 감정으로 돌아온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그 이미지, 추억, 사랑 등은 살아가는 동안 알리스를 채워줄 것이다. 그리고 흐릿해지는 기억만큼 또 새로운사람과 알리스 자신이 그 빈자리를 또 채워갈 것이다.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는 사라지지 않은채로 말이다.